잎새 하나 (외 1수)□ 허명훈
저녁 달빛이 차겁게
창가에 내리고
독을 품은 서북풍은
창문을 두드리는데
기러기는 떼를 지어
남으로 밤길을 재촉한다
뜰에 있는 사과나무도
모두 옷을 벗었는데
가을 숙제 남은 잎새 하나
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려있네
맛이 간 입새에
무서리만 하얗다.
아직도 미완성
서쪽 하늘에
붉게 타는 저녁노을이 숨을 몰아 쉬며
지평선을 넘는다
나도 살다가 빈 배로 떠나가는 날
노을 진 저 지평선을 넘을 텐데…
인생의 가을에 살고 있는 나에게
아직도 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풀어야 하는데
화살같이 지나는 세월 무정하다.
내 삶이 빛이 아니라도 좋다
내 삶이 산처럼 무겁지 않아도 좋다
다만 아주 작은 흔적 하나라도 남기며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
비온 뒤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를 좇고
해살 따뜻한 봄날
만화방초의 향기에 취해
꽃가지만 붙들고 살지는 않았는지
내 인생의 가을에
한번쯤 참답게 되돌아볼 시간
흐르는 인생 강물에 비춰본
나는 아직도 미완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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