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가시는군요□ 김영능
-고 림원춘 선생님 가시는 길에

2023-02-10 09:30:31

한세기 백세 시대라 하는데

구십고개 언덕도 오르지 않으시고

기어코 그 길을 가시는군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여

여덟번 반 강산을 바꾸셨다고

욕심을 버리시고 가시는가요


다섯그루 장편 나무를 심으시고

십이편 중편 줄기를 키우시고

구십여떨기 단편 꽃을 피우시고


민족자치 자랑스러운 연변의 땅에

장백의 얼 탐스러운 열매 익히시고

천지의 혼 짙은 향기 그윽히 풍기시고


아글타글 거액의 지페를 모금하시여

문인과 문단활동을 부추겨주시고

백일장과 장학금에도 선납했네요


드넓은 이마 고랑 깊은 주름밭

한세상 한철 구슬땀 삶의 농사

후회 없이 풍작을 이루셨다고


훤칠한 체격 미남의 풍채

굽힐 줄 모르는 사나이 기상

머리 우 은발기발 나붓기네요


그래도 아직은 너무도 이르시네요

붓대는 아직도 곧고 꿋꿋한데

먹물은 아직도 차고 넘치는데


산귀신을 그제 풀어놓으시고

산사람을 어제 키워놓으시고

산자식은* 겨우 발걸음 떼셨는데


연변대학 문학사 종소리

민족대학 문학사 옹달샘

어떻게 울리고 솟아 넘칠가요


소설의 미인송 어떻게 심을가요

수필의 민들레 어떻게 날릴가요

시의 진달래는 어떻게 피울가요


만나면 반갑다 품어주시고

사주신 보신탕 목이 메던 그 맛을

어떻게 가슴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가요


산(山)사람 찾아 모시고 넘나들던

가파른 산비탈 정정하시던 그 모습

어떻게 꿈속에서 만나뵐 수 있을가요

고달픈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침상에서 힘겹게 집필하시던 존안

어떻게 닮아 배워 따라갈 수 있을가요


동불사댁 후손들 번신하였고

옥천동댁 루명을 벗은 지 옛날

살 만한 세상이라 성수들 나셨는데


안방툰 몽당바지 마다바이는

몽당치마 마다매들을 따라서

기어코 그 길을 빨리도 가시는군요


무엇이 그렇게 급하시나요

이승이 그렇게 미련 없으신가요

저승이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열두형제 가난 속에서 태여나

열두고개 칠십리 고난의 등교길

열두번 큰 수술  고비를 넘으시고도


기어코 그 길을 가시려면요

즐기시던 낚시대도 가지고 가시여

은하수에 북두칠성도 낚으시고요


그렇게 기어코 가시려면요

오십사호 문건도 가지고 가시여

김칠십님*과 마주 한판 뜨시고요


안방툰 고향집 천년 나무는

속을 태우고 상처 투성이래도

아직도 푸른 잎새 무성한데


진정한 작가에게는

스타트선만 있을 뿐

라스트선은 없다 하셨으니


하늘 동네 문학사에 합류하시여

앞에 가신 벗님네와 손을 잡으시고

문학의 푸른 세상을 열어놓으십시오


천지여 폭포의 통곡소리 낮추시라

해란강이여 여울목 흐느낌소리 그치시라

부르하통하 소용돌이 한탄소리 멈추시라


기어코 가시는 님이시라면

소월의 진달래 한아름 뿌려드리오니

즈려밟으시며 부디 강녕히 가시옵서서.


* 산자식 ㅡ장편소설 《산귀신》, 《산사람》 3부곡에서 《산자식》 집필은 시작하고 완성 못했음.


  *김칠십 ㅡ고 김응준 시인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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