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벽이 열리면
잠에 설친 거리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가며
깨끗이 쓸어낸다
케케묵은 어제의 옛말들
간밤이 놀다가
새벽이 오는 소리 듣고서
창황히 도망가며
흘려버린 비릿한 냄새마저
해가 가고 일월이 바뀌여
조금씩 닳아버린
보기 좋던 훤칠한 키 그리고
아까운 살점들
오늘도 이른새벽
두 주먹 부르쥐고 달려나와
깨끗이 쓸어낸다
한뼘 남은 작달막한 몽당비로
세월이 흘러도
나이밖에 가진 것 하나 없고
되는 대로 생겼는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까울 것 없다네
잘생긴 사람은
얼굴에 주름살 생길가
돈 많은 사람은
버리고 가기가 아까워
마음 놓지 못하지만
늦가을 나무처럼 헐벗어
당장에 떠난대도
빈주먹만 남았으니 무엇을
시름놓지 못할가
흘러라 세월아 줄기차게
단풍처럼 붉게 타다
때가 되면 꽃처럼 웃으며
뒤 안 보고 달려가게
상현달
이지러진 엄마의 손거울이
백양나무 가지 사이
엇비듬히 걸리여있습니다
눈 가시고 자세히 살펴보면
자애로운 미소 짓고
마주보며 웃는 엄마 보입니다
금방 퍼온 샘치물에 머리 씻고
거울에 마주앉아
머리 빗던 옛날의 모습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에 새겨둔
변할 줄 모르는 엄마 모습
오늘따라 보고 싶어 쳐다보며
나직이 홀로 불러
외로움을 달래여봅니다
달밤의 피리소리
어둠 속에 잠긴 별들
초롱초롱 밝은 눈 반짝이고
외로움의 바다에서
노 저으며 서쪽으로 가는 쪽배
구름 속을 누비는데
어데선가 들려오는 부엉이
구슬픈 울음소리
어슴푸레 달빛을 눌러쓰고
조으는 촌락들
달콤하게 고요를 삼키는데
잠들 줄 모르는 피리소리
간간이 들려온다
때론 낮게 때론 높게
꿈속을 누비며 쉬임없이
흐르는 내물처럼
자화상
거울을 마주하고 서기 싫다
신사옷 챙겨 입고
거리에 나서서 걸으면
허술한 녀자들이
꼬리 물고 뒤따르던 멋진 사내
어데로 도망가고
늦가을 언호박 볼 때처럼
기분이 잡쳐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다
훌렁 벗은 번들이마
가을 끝낸 눈 덮인 밭이랑
차라리 눈감고
념불이나 하고 말지 무엇하려
거울은 마주봐
오랜 옛말
쌀독에 거미줄 얼기설기
가난을 수놓던
동년의 이야기 떠올리면
엄마가 생각난다
낮이면 땡볕 아래 기음 매며
땀동이 쏟다가도
밤마다 등잔불 아래에서
밤을 패던 우리 엄마
밤낮으로 손발이 놀 새 없이
시간을 쪼개 써도
허기진 가난을 못 이겨
등이 굽은 우리 엄마
엄마가 떠나간 지 오라도
옛말은 살아남아
추억의 쪽문 열면 어둠 열고
물처럼 쏟아진다
벼파도
농민들의 피땀 먹고 자라나
저렇게도 잘 컸나
너넘실 춤을 추는 황금파도
살진 땅을 꺼지운다
거짓 없는 땅이기에 해마다
은혜를 보답한다
소박한 농민들의 마음에
기쁨이 술렁인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심어가는 추억의 멜로디
노래가 여물어 속까지
선률이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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