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요가 갔다. 세속의 오곡잡량을 먹지 않고 이슬만 먹으며 사랑 앞에 자신의 전부를 던져 산화해가던 남재녀모의 사랑군들로 로맨스의 전당을 구축했던 사랑의 ‘조물주’ 그 경요가 갔다.
소설가이자 씨나리오 작가인 경요는 1938년 사천성 성도에서 태여나 11세 때 부모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창밖(窗外)》, 《금잔화(金盏花)》, 《안개비연가(情深深雨濛濛)》,《나는 구름이여라(我是一片云)》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며 대만은 물론 대륙에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로서 ‘멜로물의 녀왕’,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우미한 미칭으로 수억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경요는 이러한 작품을 각색한 영화로 1971년과 1975년 각각 제9회, 제12회 대만 금마상, 우수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은 영화, 드라마로 각색되였다. 그중 《환주거거》 등 드라마는 궁중드라마 열풍을 일으키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 동남아 등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림청하, 조미, 림심여, 범빙빙 등 많은 스타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서 이름을 알렸다. 대만에서 ‘로맨스의 녀왕’으로 문명을 날리던 유명작가와 대륙 변강오지의 작은 문인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으련만 사실 나와 경요 사이에는 남다른 ‘살밭은’ 이야기가 있다. 신문사에서 문예기자로 뛰던 시절에 나는 처음 경요를 접했다. 80년대말, 어느 개인 책방에서 경요의 책을 다른 책에 끼여 억다지로 판매한다기에 비평보도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경요란 대체 어떤 ‘신선’일가 하는 호기심에 그의 책을 기어이 읽으려 했지만 연길의 여러 서점에서도 그의 책은 ‘락양의 지가’를 올리며 다 팔려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보름 정도 기다려 드디여 그의 책을 사들었다. 그렇게 내가 맨처음 읽은 경요의 책은 《달도 몽롱, 새도 몽롱(月朦胧鸟朦胧)》이였다. 얼마 안되여 이 작품을 각색한 드라마가 텔레비죤에서 방영되였고 그 주제곡도 항간에서 류행곡으로 퍼져나갔다. 카세트 록음테프로 그 노래를 몇번이고 되풀이해 들었는지 모른다. 소설 속 년령대를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금방 좌적인 철쇄에서 벗어난 우리들의 금고된 사랑의 관념을 부수며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또한 이 작품을 각색한 드라마 때문에 모두들은 림청하라는 당대 대만의 톱배우를 알게 되였다.
어떤 장력에 끌린 듯 나는 당시 출시된 경요의 거의 전부의 작품을 읽었다. 지금도 그때 읽었던 소설 제목들이 선연해 한부 한부 죄다 외워낼 수 있다.
그리고 가난으로 생활이 곤고하던 그 시절에 경요의 작품은 내가 생존해나가는 절실한 밑바탕이 되였다. 가난에 쫓겨 고민하던 나머지 책상을 반경으로 여태 돌아쳤던 나는 책방을 차리기로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그나마 독서를 했다. 80년대말, 당시 연변주법원 부근에 ‘쉑스피어 책방’을 차렸다. 그때 그 책방에 우리 문단의 거의 모든 문인들이 다녀갔었다. 이미 만권에 달하는 책들을 소장했기에 손쉽게 책방을 꾸릴 수 있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책을 뽑아서 책방을 차리면서 그 책들이 아까워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때 온 세상은 김용의 무협지와 경요의 로맨스에 심취되여있었다. 서점가에는 김용과 경요의 책코너가 가장 현요한 위치에 코너를 이루었고 텔레비죤에서도 매일이고 검을 번뜩이는 영웅들의 강호 이야기와 사랑 때문에 흘린 가인들의 눈물로 넘쳐났다. 그러한 풍토에서 몇년 내내 나의 책방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책은 김용과 경요였다. 한번 빌리는 데 50전, 나는 큰 마음먹고 경요의 40여권의 시리즈 3질을 사 번갈아가며 세를 주었다. 하지만 그 120여권의 책도 애독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이 되자 경요의 책들은 그야말로 보풀이 나달나달 원표지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였다. 그중의 몇권을 나는 지금도 애모쁘게 간직해두고 있다.
친모에 이어 양모에게마저 버림을 받고 책외에는 지어 전기밥솥, 세탁기마저 없이 내내 협착한 세방살이를 했던 내게서, 경요의 책들이 무원조한 나의 살림을 유지하게 해준 담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나는 몽몽한 운무(《烟雨濛濛》) 속에 행운초(《幸运草》)와 자주빛 조개(《紫贝壳》)를 주을 수 있었고 불타버린 천당(《失火的天堂》)에서 다시 채색의 노을(《彩云飞》)을 향해 갈매기처럼(《海鸥飞处》) 나래칠 수 있었다.
신문사 시절 나는 또 문예편집부 동인들과 함께 경요의 여러부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었다. 그때 문예부간의 맨아래 단에 일년씩 번역, 련재된 경요의 작품들은 《타올라라, 불새(燃烧吧,火鸟)》와 《금잔화(金盏花)》였다.
돌이켜보면 모든 사랑에는 아름다움의 서사가 녹아들어있다. 사랑은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고 있다. 사랑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속성을 가지고도 있으며 그 다양성 때문에 우리 작가들의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어쩌구려 요즘 세월은 사랑이라는 판타지마저 물질에 둔화되고 순수하게 향유하려 하지 않는 황페한 현실이 돼버렸다.
사랑이라는 표현을 입 밖에 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근대와는 달리 지금의 현대문화가 안고 있는 외곡된 사랑은 실의를 자아내게 한다. 따라서 그 가치도 이젠 싸구려 같은 것이 돼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한때 경요의 사랑주의 작품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랑이 돈으로 쉽게 환산되고 있는 요즘 또 일회용 속찬같이 흔해빠진 사랑에 실망한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서 권위와 귀천에도 두려움 없이 맞서고 지어 자기의 한몸도 서슴없이 불사르는 불멸의 사랑, 숭고한 사랑이 다시 그리워지고 있다. 현대인들이 옛스럽고 촌스러움이 지닌 ‘따스함’의 사랑을 갈망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은 현대와 현대문화가 상실한 따스함과 안정감을 옛적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되찾고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춘향과 리몽룡이, 량산백과 축영대가, 백랑자와 허선이,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지칠 줄 모르고 읽히고 리메이크 되고 있는 것이다.
경요의 대표작중 한부인 《금잔화》에서 이 꽃의 꽃말은 인내, 지킴, 고통, 망각, 고결함, 구원이라고 한다. 경요는 일탈적인 사랑으로 인한 세속의 비난 속에 창작을 동력으로, 사랑으로 엮은 70여부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바로 그러한 인내의 창작생애를 살아오며 고통 우에 고결한 사랑의 상아탑을 구축해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더는 추월 못할 지고무상한 사랑의 경전을 남기고 떠난 경요를 추모한다. 다시 경요의 사랑이야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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