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흥촌에서 우리는 항일구국의 치렬했던 력사를 되새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홍색정신의 전승과 더불어 발전하는 향촌의 새로운 시대상을 만날 수 있다."
중공동만특위원회 옛터.
홍색유전자는 정지된 력사적 표본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신적 혈맥이다.
연길시 조양천진 태흥촌은 홍색자원을 발굴하여 잠든 력사를 깨우고 홍색유전자의 전승을 시대를 뛰여넘는 발전의 동력으로 전화시켜 로혁명근거지의 향촌진흥에 생동한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동만의 불씨: 영원히 색바래지 않는 홍색기억
태흥촌은 홍색요소와 민족특색이 조화롭게 결부되여 더욱 특별한 것 같다. 마을로 들어서는 남쪽 입구에는 ‘중국소수민족특색마을’이란 비석이 세워져있고 북쪽 입구에는 ‘태흥홍색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이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정연하게 줄지어선 주택들은 민족특색이 다분하고 일부 담장에는 홍색력사를 배경으로 한 벽화도 그려져있다. 민속풍정을 감상하고 홍색요소들을 찾아보며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의 동쪽어구에서 눈에 띄는 ‘옛집’을 마주하게 된다.
마을 북쪽 입구에 세워진 비석.
6000평방메터에 달하는 마당에 전통 조선족 초가집 3채와 외양간, 우물, 정자 등이 건설되여있는데 이는 중공동만특별위원회(아래 중공동만특위) 옛터를 그대로 복구한 곳이다. ‘중공동만특위 옛터’라고 씌여진 초가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1930년 10월 10일 료여원을 포함한 7명의 지도자가 회의에 참가해 중공동만특별위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는 모습이 밀랍인형의 형태로 생동하게 복원되여있다.
중공동만특위원회 옛터 내부 모습.
중공동만특별위원회는 설립된 후 선후하여 6개 현위원회, 19개 구위원회, 148개 당지부를 관할하면서 연변 여러민족 인민의 반제반봉건투쟁의 지도적 핵심으로 되였다. 설립된 해에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동만의 4개 현을 령도해 ‘추수폭동’을 일으켜 일본침략자와 친일주구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안겼고 대중을 령도하여 혁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신속히 규모를 발전시켜 당원이 총 636명으로 그 수가 동북 당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9.18사변’ 이후에는 항일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선후하여 10여개의 항일유격대를 조직했으며 항일근거지 건설의 서막을 열었다. 1933년 중공중앙이 동북에서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고 모든 항일력량을 단합할 것을 주장하면서 동만에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이 창설되였고 각 현의 유격대들은 산하의 퇀으로 개편되였다. 치렬한 전투 속에서 유격대는 전투력이 날로 강해졌고 10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한 항일무장통일전선의 중견력량으로 되였다.
1936년 7월, 동만과 남만 당조직이 합병되여 중공남만성위원회를 구성하고 항일련군 제1군과 제2군을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으로 통합하면서 중공동만특위는 력사적 사명을 끝마쳤다. 6년 동안 중공동만특위는 료여원, 동장영, 위증민 등 3명의 서기를 거치면서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해 일본침략자들과 간고한 투쟁을 벌여 전국 항전에 힘있게 협력하고 중국항일전쟁과 세계반파쑈전쟁의 승리를 위해 중대한 기여와 희생을 했다.
◆정신의 전승: 새시대에 전달된 홍색 계주봉
태흥촌은 태흥홍색마을 프로젝트가 완공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애국주의교양, 당사교양, 홍색관광, 견학체험을 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태흥촌을 방문한 날 마을의 광장 중심에 세워진 ‘기치’ 조각 앞에서는 여러명의 청년들이 가슴에 당휘장을 달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전강연을 하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 대형 홍색 주제 ‘기치’ 조각은 태흥촌의 상직적인 조형물이다. 정면은 당기이고 뒤면은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군기인데 조각의 총길이는 10.10메터로 중공동만특별위원회가 1930년 10월 10일에 설립되였음을 상징하고 두께는 2.8메터로 연변지역에서 중국공산당이 1928년부터 당사업을 전개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형 홍색 주제 ‘기치’ 조각.
광장 남쪽의 벽면에는 또 15폭의 벽화가 그려져있는데 연변에서의 맑스레닌주의 전파, 약수동쏘베트정부 설립, 중공동만특위 설립, ‘연길작탄’과 손원금, 연길감옥 탈옥투쟁 등 력사사실들을 순서에 따라 생동하게 그려내 해설원의 해설을 들으며 차례로 감상하다 보면 그 시기의 파란만장한 모습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이다.
15폭의 벽화.
태흥촌을 찾는다면 꼭 들리게 되는 전시관이 있다. 중공동만특위 혁명전시관이다. 이 전시관은 총 4개 부분으로 나누어 중공동만특위가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을 령도하여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도모한 위대한 업적과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이 중공동만특위의 령도 아래 걸어온 간고한 려정, 연변의 여러 민족 아들딸들이 중공동만특위의 령도 아래 중화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이바지한 거대한 공헌과 희생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 혁명전시관 전시청.
태흥촌 향촌진흥 전문 사업일군이자 해설원인 리창은 “관광 성수기가 되면 태흥촌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홍색교양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기관 사업일군들이 주를 이루고 중화민족공동체의식 확고히 수립 견학기지로 되면서 견학을 오는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 관광단체들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지난해에만 홍색교양차 360개 단체에서 2만 8000여명이 다녀가고 2021년부터 지금까지 총 19만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알려주었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 혁명전시관 전시청.
태흥촌 제1서기 김경문은 “홍색문화를 더 잘 전승하고 중공동만특위의 력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데 취지를 두고 홍생 교양과 관광의 형식을 혁신하는 면에서 여러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 여러 홍색관광 명소를 참관하고 여러 곳의 경험들을 학습하면서 상황극 추가, 특색수업 설치 등 다양한 형식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공동만특별위원회 혁명전시관 전시청.
◆진흥의 열쇠: 홍색 엔진으로 향촌진흥 견인
태흥촌을 둘러보면 민족특색이 돋보이는 민박들이 줄지어있는가 하면 현대풍으로 장식된 개인 민박들도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꼬치구이, 편의점 등 상가들도 여느 촌보다 현저히 많은 모습이다. 드넓은 논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 남쪽 면에서는 새로운 민박과 향촌커피숍이 건설중이다.
김경문 서기는 “태흥촌의 홍색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기타 산업도 활성화되고 있다. 촌에는 총 28개의 특색 민박이 건설되여있는데 민박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현재 촌과 협력한 관광기업에서 9개의 독립식 2층 별장 민박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촌민들도 자기의 집을 민박 또는 식당으로 개조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태흥촌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농작물의 판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터놓았다.
태흥촌 특색 민박.
민박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한 농가락 마당에서 림영철(64세) 로인을 만났다. 그는 태흥촌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촌민이였는데 동생이 운영하는 농가락에서 일손을 돕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태흥촌의 촌민으로서 뿌듯하다. 우리 지역의 력사가 잘 발굴되고 전승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좋고 우리 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촌민들이 더 부유해지고 환경이 더 아름다워져서 기쁘다.”
외지에 갔던 촌민들도 많이 돌아오고 싶어한다면서 촌의 자랑을 늘여놓는 로인의 얼굴에는 행복한 기색이 력력했다.
90여년 전, 인민들의 행복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항일전사들은 치렬한 투쟁을 이어오면서 이 땅을 지켜냈다. 오늘날의 태흥촌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념원의 실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 전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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