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세월
더하기에 더하기만 하며 살아왔다
모든 것을 움켜쥔 이 몸
가진 것들 넘쳐났지만
어느 하나 놓기 아쉬워했다
지천명에야 문득 깨닫게 된 삶
모두를 버리기로 했다
먼저 거짓과 허영을 버렸다
명예와 과욕 증오와 질투를 버렸다
아집과 편견 비애와 한숨
고독과 슬픔 모두를 던져버렸다
가볍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덜기의 손 잡으며 가만히 속삭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봄바람
노란 개나리 피여나는 소리
연분홍 치마저고리 떨쳐입는 진달래 웃음소리
꽃망울 터뜨리며 깔깔대는 버들개지
깍깍깍 까치가 우짖는 소리
사과배꽃이 흰드레스 갈아입는 소리
가만히 귀 기울이면
화음으로 들려오는 저 소리
산과 들 골짜기를 휘돌아나오는
신비롭기 그지없는 봄의 합창소리
작은 소리소리들이 합쳐서
저렇듯 우아하고 감미로운 소리들을
이루는 순간 드디여 찾아낸
아름답고 경쾌한 이 합창소리를
이끌어내는 멋진 설계사
그대 봄바람
라일락과 도서관
그리워
하도나 님 그리워
산 넘고 바다 건너
불원천리 달려왔습니다
연보라 웨딩드레스 입고
외씨버선 받쳐 신고
다소곳 아미 숙이고 선
5월의 신부
책 읽던 신랑은
문을 박차고 달려나왔습니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향기에
눈은 젖어들고
생의 환희로 넘쳐나
금방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
그 향기에 취해 코를 벌름거리다
신랑은 와락 신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날 둘은 사랑에 울다가
그만 하나로 되여버렸습니다
복수초
2월의 언덕 너머
백설 속에 빠금이 얼굴 내밀고
봄을 흔들어 깨우며 노랗게 웃는 너
바람도 가던 길 멈춘다
너를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심장 울리고
너를 포옹하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벅찰 줄이야
너만 사랑하는 남자이고 싶다
내 심장에 널 깊숙이 새겨넣으며
네 령혼과 함께 숨 쉬는 님이 되고 싶다
백설과 윙크하며
아름답게 피여나는 2월의 신부여
국화
천자만홍 속에 네 모습 어데 가고
찬서리 내린 가을날
홀로 피였느냐
벼슬자리 팽개치고 한생을 널 노래하며
전원에 묻혀 산 도연명
그의 분신이자 은일의 표상인 너
시인의 국화사랑 오늘도 나를 울리나니
─오두미(五斗米)의 하찮은 록봉 때문에
향리 소인에게 허리 굽힐손가
오늘도 내 령혼 통째로 흔들어놓는
빛나는 말씀이여
국화야 너 아느냐
오늘도 도연명은 네가 그리워
천상에서 국화술 마시면서
널 굽어보며 웃음 짓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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