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기 (외 4수)□ 백진숙

2024-06-14 07:28:50

수십년 세월

더하기에 더하기만 하며 살아왔다


모든 것을 움켜쥔 이 몸

가진 것들 넘쳐났지만

어느 하나 놓기 아쉬워했다

지천명에야 문득 깨닫게 된 삶

모두를  버리기로 했다


먼저 거짓과 허영을 버렸다

명예와 과욕 증오와 질투를 버렸다

아집과 편견 비애와 한숨

고독과 슬픔 모두를 던져버렸다


가볍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덜기의 손 잡으며 가만히 속삭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봄바람


노란 개나리 피여나는 소리

연분홍 치마저고리 떨쳐입는 진달래 웃음소리

꽃망울 터뜨리며 깔깔대는 버들개지

깍깍깍 까치가 우짖는 소리

사과배꽃이 흰드레스 갈아입는 소리


가만히 귀 기울이면

화음으로 들려오는 저 소리

산과 들 골짜기를 휘돌아나오는

신비롭기 그지없는 봄의 합창소리


작은 소리소리들이 합쳐서

저렇듯 우아하고 감미로운 소리들을

이루는 순간 드디여 찾아낸


아름답고 경쾌한 이 합창소리를

이끌어내는 멋진 설계사

그대 봄바람


라일락과 도서관


그리워

하도나 님 그리워

산 넘고 바다 건너

불원천리 달려왔습니다


연보라 웨딩드레스 입고

외씨버선 받쳐 신고

다소곳 아미 숙이고 선

5월의 신부


책 읽던 신랑은

문을 박차고 달려나왔습니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향기에

눈은 젖어들고

생의 환희로 넘쳐나

금방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


그 향기에 취해 코를 벌름거리다

신랑은 와락 신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날 둘은 사랑에 울다가

그만 하나로 되여버렸습니다



복수초


2월의 언덕 너머

백설 속에 빠금이 얼굴 내밀고

봄을 흔들어 깨우며 노랗게 웃는 너

바람도 가던 길 멈춘다


너를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심장 울리고

너를 포옹하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벅찰 줄이야


너만 사랑하는 남자이고 싶다

내 심장에 널 깊숙이 새겨넣으며

네 령혼과 함께 숨 쉬는 님이 되고 싶다

백설과 윙크하며

아름답게 피여나는 2월의 신부여


국화


천자만홍 속에 네 모습 어데 가고

찬서리 내린 가을날

홀로 피였느냐


벼슬자리 팽개치고 한생을 널 노래하며

전원에 묻혀 산 도연명

그의 분신이자 은일의 표상인 너

시인의 국화사랑 오늘도 나를 울리나니


─오두미(五斗米)의 하찮은 록봉 때문에

향리 소인에게 허리 굽힐손가

오늘도 내 령혼 통째로 흔들어놓는

빛나는 말씀이여


국화야 너 아느냐

오늘도 도연명은 네가 그리워

천상에서 국화술 마시면서

  널 굽어보며 웃음 짓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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