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는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가을에서 1989년 가을까지 3년간 유럽을 려행하는 동안 문학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 삶의 기록이다.

1986년 하루키는 지쳐있었다. 거미줄처럼 짜인 강연과 원고 청탁도 문제지만 자신이 이 생활을 끊을 수 없으며 이렇게 성큼 마흔줄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나이를 먹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하지 않은 채 그 나이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강박관념, 이것이 어느 날 아침 그가 서둘러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리유이다.
3년간 그리스의 외딴섬과 로마의 겨울을 지내며 기록한 이 려행에세이는 사실 ‘려행’의 기록이라기보다 ‘생활’의 기록에 가깝다. 려행에세이니 낯선 곳의 풍경을 담고 있을 터이지만 뜨내기 려행자의 기록과는 달리 시장과 거리 언저리에서 작가가 직접 만나고 겪은 유럽과 유럽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이 시간 동안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를 유지해나가는데 그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통해 하루키의 명작 《상실의 시대》가 탄생했으니 그의 휴식은 진정 달콤했을 것이다.
저자는 마흔이 되도록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조와 강박을 려행으로 극복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하루키 특유의 유머와 자유로운 문체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와 스릴, 유럽에서의 하루하루는 깜짝 놀랄 광경과 아연한 경험을 하루키에게 선사했다. 그리스와 이딸리아, 영국에 이르기까지의 려정을 하루키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걸작 려행에세이이다.
총 14장으로 구성되여있는 이 책은 이딸리아의 로마, 그리스의 아테네와 여러 섬들을 려행하며 유럽인들의 일상 속에 하루키 자신의 삶이 녹아들어 ‘서로 같음’과 ‘서로 다름’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고집과 사랑 그리고 그의 인생관까지 속속들이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려행기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하루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북’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마치 가슴 훈훈한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장면마다 왜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는지, 또《댄스 댄스 댄스》에서 ‘나’는 왜 하와이를 찾아 떠났는지 그 리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바로 하루키만의 위트 넘치는 문체이다. 하루키 문학의 진수를 맛보려면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는 속설을 그대로 반증이라도 하는 듯하다.
“하기야 토요일, 일요일이라 해도 우리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일본에 있을 때도 그다지 관계가 없었지만 그리스의 섬에 오고 나니 더더욱 상관없는 일이 되여버렸다. 화요일이 수요일이 되든 목요일이 월요일이 되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난로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마감날도 없고 텔레비죤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세상에는 종종 그런 것들이 있다. 동기가 뚜렷하고 외관이 훌륭한 만큼 실패했을 경우에는 더욱 비참해보이는 것들이.”…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하루키의 문학과 인생, 소설 쓰기에 대한 느낌, 정리한 삶의 이야기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어느 날, 아득히 먼곳에서 들려온 북소리에 이끌려 시작된 낯선 세계로의 려행, 하루키는 려행중에 두편의 장편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발표했다. 려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넘어 세계적인 인기 작가로 떠오른다.
저자는 작품에서 려행은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문장도 유려해 잘 읽히고 그렇게 두껍지도 않아 읽기 좋다. 깊어가는 가을,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먼 북소리》 이 책을 하루키의 열성팬 그리고 유럽을 려행하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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