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한테 용돈을 드렸더니 엄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이번 음력설에 쓸 세배돈이 생겼구나.”
“아니, 이건 엄마가 좋아하시는 걸 사 드시라고 그래요. 엄마는 이제는 그런 돈 쓰지 않아도 돼요.”
“글쎄 네 마음은 알 만한데 내 할미로서 어찌 가만있겠니?”
이전에 엄마는 이렇게 해마다 자식들이 평소에 드리는 용돈을 쓰지 않고 건사해두었다가 음력설을 쇨 때면 손군들한테 주다가 증손들이 있게 되자 또 세배돈을 모은다.
엄마는 한달 로임이 2천원도 안된다. 그럼에도 할머니라는 그 의무감으로 이 몇년간 세명의 증손한테 각각 2백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번 음력설에는 증손마다 백원을 더 보태서 준다고 한다. 왜 그러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이 이러했다.
“지금 세월에 3백원도 많지 않아. 나가서 들어보니 세배돈도 올라가더구나. 나도 돈 벌러 한국에 갔다가 왔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푸짐히 주겠는데 안되는구나.”
엄마의 이 말을 들으니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난해 음력설을 쇤 후 친구와 전화를 할 때 그 친구는 음력설에 세배돈만 해도 3천원이나 소비했다고 한다.
“한달에 월급 2천원을 타면서 그렇게 많이 쓰고는 어떻게 살아요?”
나의 물음에 친구의 대답이 이러했다.
“남편이 하도 외국에 가 벌어온 돈이 좀 있었길래 그렇지. 지금 2백원쯤은 얼굴이 뜨거워서 어디 내밀겠소? 또 지금 애들은 고만한 돈은 만족하지 않는다오.”
그 친구의 말을 듣노라니 나는 오래전에 유치원에 다니는 한 친척집 아이한테 내가 세배돈 백원을 주었을 때 그 친척이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되려 아이가 고까짓 돈으로 뭘 사는가 하고 말했던 사연을 전했다. 그때 내 월급은 6백원 정도였는데 그래도 내 딴엔 마음 크게 먹고 내민 돈인데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못 듣고 원망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하강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출국바람이 불면서부터 어른들이 세배돈에 통이 크게 노는 경우가 많다. 설이면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한테 천원, 지어는 더 크게 내미는 일도 비일비재이다.
소학교에 다니는 애가 한국에 간 삼촌한테서 세배돈 5천원을 받았다니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이렇게 크게 노니 애들도 돈에 눈이 어두워지고 있고 그 요구도 점점 더 상승선을 긋고 있다. 아직 소학교 학생인데 모은 세배돈이 만원 정도 된다는 얘기는 그저 귀등으로 지나칠 일이 아니였다.
세배돈은 전통적으로 ‘복을 나눈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오늘날에는 일종의 의무적 소비행위로 변질되여있다.
부모나 조부모가 세배돈을 줄 때 느끼는 부담감, 아이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원래 갖고 있던 아름다운 전통의 상실을 반영한다. 세배돈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라 ‘의무’, ‘투자’ 혹은 ‘돈 수자의 과시’로 되고 있다.
아이들은 세배돈을 받으며 ‘노력 없이 돈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을 돈에 대한 소비사고에 물젖게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할머니는 손군이 넷이나 있는데 해마다 설이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손군들한테 재미나는 동화책이나 이야기책을 사서 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군들이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였지만 차츰 습관이 되였는지 후에는 서로 누구한테 더 재미있는 책이 차례졌는가를 비긴다고 한다. 그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돈이 없어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니였다. 아이들한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습관을 키워주고 또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여 보다 총명하고 보다 세상을 많이 아는 아이로 키우려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가 싶다.
음력설 후 아이들이 만나자마자 서로 세배돈에 대해 묻는 걸 많이 들어왔다.
“너 이번에 돈 얼마나 가졌니? 난 2천원 벌었어.”
“고까짓거야? 난 3천원.”
이제 겨우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머리속에 벌써부터 돈에 대한 욕구가 커가고 있다. 공부보다 돈과 더 가까이 하려고 한다.
유태인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할 경우 물건 대신 돈을 주는 행위 따위는 결코 하지 않는단다. 선물 대신 돈을 준다는 것은 결국 ‘이 돈으로 무엇이든 네 마음대로 사 가져라’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무성의한 태도는 애정이 부족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세배가 ‘장수를 기원하고 존경을 표하는 의식’이였으나 오늘날은 ‘세배돈을 받기 위한 절’로 전락했는데 다시금 그제날의 그 의미를 되찾을 수 없을가 생각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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