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력설□ 원홍범

2026-05-29 10:14:46

오스트랄리아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온화한 기온으로 일년 내내 꽃이 피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꿀을 모으는 꿀벌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리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랄리아의 대부분 지역에는 뚜렷한 사계절이 존재하기보다는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며 다양한 식물들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운다. 일년 내내 꽃이 피여나는 환경은 유럽인들이 처음 이 땅을 발견했을 때 양봉업의 천국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19세기 유럽 양봉업자들은 이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고저 유럽에서 가장 뛰여난 품종으로 알려진 꿀벌을 오스트랄리아로 가져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벌들은 엄청난 속도로 꿀을 생산했고 양봉업자들의 기대를 훨씬 뛰여넘는 성과를 보였다. 양봉업자들은 마침내 리상적인 작업환경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락관적 전망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한때 엄청나게 활동적이던 벌들은 서서히 움직임을 줄였고 결국 벌집 주변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벌들은 더 이상 먼거리를 날아다니지 않았으며 벌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꽃이 1년중 어느 시기만 피였다가 지고 만다면 꽃이 피지 않는 시기를 위해 꿀을 모아야 하지만 1년 내내 꽃이 피여있으니 벌들은 힘들여 꿀을 모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게을러진 오스트랄리아 벌들은 꿀을 모으지 않게 되였던 것이다.

부지런함의 상징인 벌도 삶의 목표가 사라지게 되면서 라태하게 된다. 목표의식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편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그 편의가 가져오는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풍요와 안정은 새로운 종류의 위기를 낳을 수 있다.

바로 목적의 위기이다. 과거 인류의 력사가 기아, 질병, 전쟁 같은 명확한 위협과의 싸움으로 점철되였다면 현대문명은 이러한 외적을 상당부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왜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모호해졌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거대한 서사가 사라진 자리를 개인의 행복 추구나 소비와 같은 다소 분산되고 일시적인 목표들로 채우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사회적 징후로 나타난다.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는 ‘목적지 상실감’과 ‘탈진동기’ 현상이 하나의 례이다. 모든 것이 충족되여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느낌 또는 노력의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현대 정신의 중요한 과제가 되였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쟁 압력이 약화된 독점기업이나 보상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조직은 종종 혁신의 동력을 잃고 관료화의 늪에 빠지군 한다.

현대기술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발전은 이 풍요의 력설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미래에 육체적, 정신적 로동의 상당 부분이 기계에 의해 대체된다면 인간의 역할과 목적은 무엇이 되여야 할가? 우리는 수동적으로 풍요의 함정에 빠져드는 오스트랄리아의 벌이 되지 않기 위해 능동적으로 ‘인공적 도전’을 창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도전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의미 창출을 위한 인간 정신의 고유한 능력을 발현하기 위한 도전이 되여야 한다.

  인공지능기술이 가져다주는 풍요는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가 풍요 속에서 어떤 목적을 창조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자신의 정신에 ‘거울’을 심어야 한다. 거울은 자신을 보는 도구이다. 사람은 거울을 통해 얼굴의 형태와 얼굴에 묻은 더러움을 찾아낼 수도, 거울을 통해 외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쉬이 알 수 없는, 표정에 나타나 있는 내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거울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외모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성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를, 이웃을, 사물을,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비춰주는 좋은 거울을 가진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잠에서 깨여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임무는 생존의 노예도, 풍요의 포로도 아닌 스스로 목적을 설계하고 창조하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남는 것이 아닐가 싶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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