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의 본보기 민족의 기둥 마본재

2025-06-24 09:01:18

그가 이끄는 대오를 모택동 동지는 ‘백전백승의 회민지대’라고 칭찬했다. 항일전쟁시기, 그는 부대를 인솔하여 기중평원, 발해연안, 하북─산동─하남 적후전장을 전전하면서 크고 작은 전투 870여차를 치러 일본군과 괴뢰군 3만 6700여명을 섬멸하고 ‘적후 항일보루’를 건설하여 일본침략자들의 날뛰는 기세를 호되게 타격했다.

그가 바로 마본재로서 1902년 하북성 헌현의 빈곤한 회족 농민 가정에서 태여났다. 7.7사변 후, 일본침략군이 화북을 침략하자 마본재는 중화를 보위하기 위해 청장년들을 조직하여 일본침략자에 저항할 것을 맹세했다. 1938년 1월, 마본재는 회민항일의용대를 조직했다.

“총을 들고 고향을 지키자!” 그는 회족동포들에게 큰소리로 호소하면서 그들의 항일열정을 불러일으켰다. 1938년 3월, 그는 대오를 이끌고 기중항일근거지의 중요구역인 하북 하간에 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하북유격군에 가입했으며 회민교도대로 편입되여 다른 한갈래 회족 항일무장과 함께 팔로군 기중군구 회민교도총대로 합병했다. 1938년 10월, 마본재는 정식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입당신청서에서 “나는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위대한 중국공산당에게 바치고 회족 해방과 전체 중화민족의 해방을 위해 분투하는 위업에 바치겠다.”고 적었다.

일찍 군대에 투신한 경력은 마본재의 탁월한 군사소양을 단련시켰다. 1939년 7월, 마본재는 팔로군 기중군구 회민지대 사령원으로 있으면서 교량을 폭파하고 도로를 파괴했으며 매복공격을 조직하여 여러차례 일본군과 괴뢰군을 타격했다.

1940년초, 기중평원의 투쟁형세는 준엄했다. 마본재는 명령을 받고 부대를 인솔하여 심현 남부(지금의 하북성 형수시 심주시)의 항일근거지를 보위하고 선후하여 30여차례 작전하여 국면을 타개하고 대중들의 항전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전역 가운데서 1940년의 강장(지금의 하북성 형수시 도성구) 매복전은 특히 유명하다. 마본재 부대는 형수성 북쪽의 매복권에 은페해있다가 적군의 차량 행렬이 천천히 들어서자 마본재의 사격명령과 함께 전사들이 맹호처럼 용감하게 출격했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일본군과 괴뢰군 80여명을 섬멸하고 대량의 무기를 로획했다.

1943년, 팔공교(지금의 하남성 복양시) 전투에서 그는 새로운 전술을 전개했다. 회민지대는 예리한 칼날처럼 적군 본부로 직진했으며 전투가 시작되자 함성소리와 총포소리가 뒤엉키고 불빛이 밤하늘을 붉게 비추었다. 혁명전사들은 일거에 팔공교를 공략했으며 회민지대는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항일부대로 소문이 퍼졌다.

마본재는 전장의 용맹한 장수였을 뿐만 아니라 확고한 신앙과 고상한 품격을 지닌 민족영웅이였다. 1941년, 일본군은 마본재를 항복시키기 위해 그의 어머니 백문관을 잡아갔다. 백문관은 죽을지언정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단식으로 순국했다. 어머니의 장렬한 희생은 마본재를 매우 비통하게 했지만 끝까지 항전하려는 그의 결심도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위대한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계속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맹세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적과 용감히 싸우는 힘으로 바꾸어 회민지대를 계속 이끌고 일본군과 사투를 벌렸다.

오래동안 지속된 전투와 강도 높은 사업으로 마본재는 피로가 쌓여 병이 도졌으며 1944년 2월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항일영웅 마본재를 기념하기 위해 헌현 본재회족향 본재동촌은 기념관을 설립하고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마본재기념관 북쪽에 있는 마본재기념관 주건물과 남쪽에 있는 마본재모자렬사릉원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전국 애국주의교양 시범기지’, ‘전국 민족단결진보 교양기지’인 마본재기념관은 청명절, 국경절 등 중요한 명절이 되면 영렬을 추모하러 온 많은 대중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현재까지 루계로 300여만명에 달하는 관람객을 접대하여 홍색문화를 전파하는 중요한 진지로 되였다.

마본재기념관 관장 하광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념관은 2024년 9월부터 승격개조를 진행했는데 현재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마본재의 전투이야기를 수집, 확인하여 그의 빛나는 사적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중화의 아들딸들이 용감하게 전진하도록 격려하게 할 것이다.

  신화사 기자 백림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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