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과 생사를 함께 한 항일영웅 살사준

2025-08-01 08:54:45

복주시 중심의 안태강변의 조용한 골목 안에 위치한 주자방 22호 살씨가문 대원은 세상의 변천을 많이 겪었다. 붉은 칠로 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청에는 살씨가문 선렬들의 초상화가 눈에 안겨왔다. 우리 나라 근대 해군 명장인 살진빙의 초상화 옆에는 그의 조카손자인 해군 항일영웅 살사준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한척의 중산함 모형, 살사준 개인 도장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유리장 안에 간직되여 그에 대한 영원한 추모를 담고 있으며 ‘무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살씨가문의 가풍을 칭송하고 있다.

살사준은 일명 살본준이라고도 하며 자는 익중이다. 1895년에 복건성정부 민현(오늘의 복주시 시내구역)의 안문 살씨가문에서 태여났다. 해군 가문의 영향을 받아 그는 어릴 때부터 중일 갑오해전의 치욕을 씻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형제들에게 “강국에 있어서 해안 방어가 긴박하며 충성과 용맹은 국가를 보위하는 데 구현되여야 한다. 우리 형제는 해군에 적합하고 이 또한 우리 민족 무덕의 전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해군이 되여 나라에 보답하려는 씨앗은 오래전에 심어졌다. 살사준은 연태해군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중국 해군에 복무했다. 강정, 건안 두 함선의 부함장과 공승, 청천, 순승, 위승 등 항선의 함장, 해군 민하경비사령부 부관 처장, 해군 제1함대 사령부 참모 등을 력임했다.

순승호 함장으로 있을 때 살사준은 내하포함을 거느리고 상해에서 복건에 이르는 해역을 순시함으로써 중국의 내하포함의 해역순시 전례를 창조했다. 그는 ‘해군으로서 반드시 근면하고 충성하고 용맹해야 하며 앞장서기에 힘써야 한다.’는 좌우명으로 늘 자신을 채찍질했다.

1935년, 살사준은 중산함 대리 함장으로 위촉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중산함 제13대 함장으로 정식 임명되였다.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한 후 살사준은 1938년 6월 무한회전에 참가하여 부대를 이끌고 장강 수역에서 수뢰 설치 및 운송 임무를 수행하며 여러차례의 전투를 겪었다. 그해 10월, 일본군이 점차 무한으로 진격하자 중산함은 명령을 받고 무한 금구로 이동하여 항로를 봉쇄했다.

10월 24일, 일본군이 대거 출동하여 중산함을 습격했다. 살사준은 전사들을 지휘하여 맹렬히 반격하고 여러차례 적의 공격을 물리쳤으며 적기 3대를 격추하고 몇시간 동안 치렬한 전투를 벌렸다. 그날 오후, 일본군은 다시 6대의 폭격기를 파견하여 중산함을 공격했다. 공중 비행기의 보호가 부족하여 고군분투하던 중산함은 렬세에 처하게 되였다. 치렬한 전투중에 폭탄이 함체 좌현에 맞아 키조종기가 통제를 잃었고 이후 함교 우측에 명중하여 불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불행히도 살사준은 폭격으로 인해 두 다리를 잃고 피바다에 쓰러졌으며 전사들의 사상도 엄중했다. 전사들은 그를 삼판 우로 호송하여 군함을 떠나려 했지만 살사준은 철수를 거부하고 군함과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갑판에 앉아 중산함이 침몰할 때까지 적을 죽여야 한다며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았으며 향년 43세 나이로 장렬히 순국했다.

이번 전역에서 중산함은 총 25명의 전사자와 2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이는 항일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군함이다. 살사준은 항일전쟁 시기에 전사한 가장 높은 직함의 해군 장관으로 되였다.

조상들이 살았던 저택의 대청에 서서 살씨가문 후손들은 어른들이 들려준 한 장면을 회상했다. 살사준이 장렬히 희생된 소식이 복주 살씨 집으로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깊은 슬픔을 느꼈다. 살씨가문 대원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정계, 해군계 및 친척과 이웃들이 애도하러 찾아왔다.

해군사 학자인 진열은 “당시 중국 해군과 일본 해군의 실력은 큰 차이가 있었지만 살사준을 비롯한 많은 중산함 전사들은 용감하게 적과 맞서 싸웠고 ‘죽을지언정 기개를 굽히지 않는다.’는 중국 해군 군인들의 애국심과 사명감을 보여주었으며 항일전쟁의 어려운 시각에 국민을 고무시키는 눈부신 별빛이 되였다.”고 말했다.

중산함이 침몰된 지 반세기가 넘어 전체적으로 인양하여 복원한 후 무한시중산함박물관에 보존함으로써 후손들이 첨앙하도록 했다. 복주 삼산릉원에 고향사람들이 중산함 복주 출신의 항일 장병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매년 청명절에는 렬사들의 후손과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이곳에 와 그들을 추모한다.

  기념비 옆 청동조각상은 살사준을 비롯한 장병들이 일본 침략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던 비장한 순간을 담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에게 력사를 명기하고 항일전쟁 정신을 계승하도록 항상 상기시키고 있다. 신화사 기자 등천천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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