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성 혜주시 혜동현 남호공원에는 혜동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얼마 전 혜동현 백화진 종합문화소는 소학생들을 조직하여 이곳에 와 렬사들을 첨앙했다.
해빛이 울창한 숲을 통과하여 기념비 우에 빛을 뿌렸다. “팽태농은 적들의 앞뒤 협공에도 불구하고 적의 주의를 끌며 밖으로 돌진하려 했으나 여러발의 총알을 맞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여덟살의 고서아가 큰 소리로 비문을 읽었다. 수십년을 넘어 혁명 선배들의 장렬한 사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팽태농의 본명은 팽태이고 1915년에 광동성 혜양현 백망화 와당촌(지금의 혜주시 혜동현 백화진 황당촌 와당촌소조)에서 태여났다. 어릴 적부터 그는 진보적인 사상을 접했고 1931년에 평산 청룡담 향촌사범학교에 입학했다. 9.18사변 후 그는 진보적 사상을 가진 동학들과 항일선전대를 구성하고 평산, 백망화 등지에서 항일선전활동을 했다. 후에 그는 광주 교외 룡안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종종 농촌에 가 사회조사를 했고 조사자료를 향항 《대중일보》와 광주 《주강일보》에 게재하여 국민당 당국의 암흑한 통치를 폭로했다.
1937년초에 팽태농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7.7사변 직후 그는 혜주신문에 <동강의 부모 형제자매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여 동강의 아들딸들에게 단결하여 일본의 침략에 맞설 것을 호소했다. 1938년 상반기, 팽태농은 혜주에서 민중교육관의 엄호하에 공장과 학교 등지에 심입하여 여러명을 당원으로 발전시켰다. 같은 해 5월, 중공 혜주 중심지부가 설립되였고 팽태농이 지부 서기로 임명되여 혜양 학생 항적련합회를 공동으로 조직하여 구국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6월, 팽태농은 중공광동성 동강 림시사업위원회 서기로 임명되였다.
1938년 여름, 팽태농은 민중교육관 관원 신분으로 혜양 아동항일구국 간부 양성반 설립을 주도하며 참여했다. 열혈 청년들은 거리에서 정열적으로 연설하고 항일구국 노래를 가르치며 십자정, 동신교두, 평호문 등지에서 유명한 연극 <당신의 채찍을 내려놓아라>를 공연하여 대중들이 단합하여 함께 항일하도록 인도했다. 1938년 8월 13일, 팽태농이 주관한 반소비 항전 만화전이 전시되였고 <아기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등 100여점의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
1938년 10월, 일본군이 대아만에 상륙한 후 팽태농 등은 박라로 철수하여 박라 전시사업단을 설립하고 사업단의 명의로 황마파 중공 지방조직과 련계를 취하여 황마파 항일자위단 대대를 중공 령도 아래의 항일무장으로 개조했다. 같은 해 12월, 일본군이 잠시 혜주에서 철수한 뒤 팽태농은 광동 청년 항일선봉대 동강구대를 도와 혜양 항일선봉대와 항일선봉대 혜주판사처를 조직하여 혜주에 비밀련락 지점을 설립하고 벽보 《모두 보아라》를 출판하여 생동감 있고 리해하기 쉬운 대중 언어로 항일 도리를 선전했다. 동시에 동강 화교귀향봉사단 및 국민혁명군 제7전구 정공대, 군민협력소 등과 함께 중산기념당에서 항일연극을 공연하여 동강 량안의 항일구국 운동을 고조에로 이끌었다.
1940년초, 중공동강특위의 지시에 따라 팽태농과 그의 안해 하려금은 자금신지소학교로 가 야간학교와 녀성 식자반은 개설하여 대중항일을 발동했다. 12월, 그는 팽태동이란 가명으로 화평현에서 중공 화동구위 사업을 책임졌으며 1941년 7월에 중공 동강후동특위 선전간부로 전임되였고 이듬해에 광동 인민항일유격대로 전근되였다.
1943년 3월 3일, 간첩의 밀고로 인해 광동 인민항일유격대 항9대대 정훈실 주둔지가 일본군에 의해 포위되였다. 동지들의 돌파를 엄호하다가 팽태농은 불행히도 총에 맞아 향년 28세 나이로 희생되였다.
2015년 8월, 팽태농은 민정부가 발표한 제2진의 600명 유명한 항일영웅 및 영웅집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팽태농의 고향에서 그의 사적은 사람들에게 깊이 기억되고 있다. 황당촌은 촌간부 방문, 좌담회 개최 등을 통해 팽태농의 이야기를 수집했으며 매년 촌 당원대회에서는 그의 사적을 되새김과 동시에 ‘꼬마 해설원’ 대오를 구성하여 아이들의 마음에 붉은 씨앗을 뿌렸다.
백화진 황당촌당위 서기 진한권은 현재 팽태농 생가를 보수하기 위한 자금 준비를 마련할 계획이며 더 넓은 범위에서 팽태농이 앞장서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정신을 선전하고 이를 정신적 기반으로 삼아 홍색마을 건설에 힘을 부여하고 대대로 전승하는 과정에 향촌건설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화사 기자 정락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