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류서연

2023-02-03 09:32:32

겨울은 고독의 계절이고 그리움의 계절이며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나그네는 가장  쓸쓸하고 외롭고 초라해보이는 것 같지만 또한 가장 여유롭고 행복하고 뜨겁다. 그래서일가  겨울이면 나는 늘 겨울나그네가 되여 상상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겨울이면 나는 겨울나그네가 되고 싶다. 겨울나그네가 되여 바위산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모든 근심과 시름, 번민과 고독, 무거운 삶의 갑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심정으로 나만의 풍요로운 마음의 행복을 맛보며  바람처럼 구름처럼 무작정 떠다니고 싶다. 겨울나그네가 되여 겨울렬차를 타고 흔들흔들거리며 여우작작하게 주위의 풍경을 구경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무엇인가 확인해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새로운 나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비우고 무소유가 되여 속세를 떠나 어느 작은 산촌마을의 려인숙에 머물면서 새하얀 겨울의 풍경에 젖어들어 느긋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나무잎을 다 떨어뜨린 앙상한 겨울나무와 산촌의 삭막한 겨울의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신성한 자연의 숨결을 나만의 숨결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

대지를 하얗게 뒤덮은 눈을 바라보며 산촌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격정에 넘쳐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 덮히고/ 만리에 눈 날리네…” 라고 읊어보기도 하고 밤바람소리가 겨울밤을 달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서 순환처럼 와닿는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찬란한 봄과 다시 만나는 일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겨울의 아침을 맞아 싱그럽고 구수한 된장국에 밥을 말아 후룩후룩 먹고는 강가에 서서 온 몸으로 오고 가는 찬바람을 맞으며 인간의 삶의 무수한 모습들이 강에 길게 드러누워 얼음 아래로 소리없이 흐르는 조용한 겨울 강의 모습을 그려보며 끝없는 평화와 고요에 잠기고 싶다. 그 순간 만큼은 자기를 잊고 그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흐르는 뜨거운 입김으로 사랑의 불을 지펴 겨울의 산촌과 뜨거운 키스를 하고 싶고 꽁꽁 닫겨있던 내 작은 가슴을 활짝 열고 산과 바람과 나무와 만나 뜨겁고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아, 그것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가슴 뛰는 일인가?

겨울이면 나는 겨울나그네가 되여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며  삶의 다양한 맛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누가 굳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계절은 해마다 어김없이 순환한다. 이는 엄연한 자연의 순리이다. 사계절에서 겨울 만큼 조용한 모습으로 추위와 적막, 시련과 슬픔, 멈춤과 죽음이 무엇인가를 아픔으로 만나는 계절도 없으리라. 겨울이면 모든 것은 죽은 듯이 보인다. 대지는 그대로 죽음과 절망을 품고 추위 속에 우둘우둘 떨고 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동식물들은 어두운 땅 밑에서 추위와 아픔을 견뎌낸다. 겨울은 그야말로 긴 인고의 시간이다. 차거운 겨울의 땅 밑에서 혹한과 아픔을 인내하였기에 저 산너머에서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삼라만상은 힘차게 기지개를 펴며 눈들을 뜬다. 대지는 또다시 산뜻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녹아내린 강물은 찰랑찰랑 신나게 넘쳐흐르며 해님은 얼굴에 발그레 홍조를 띤다.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겨울이 잉태한 싱싱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겨울이면 나는 늘 겨울나그네가 되고 싶다. 굳이 갈 곳을 정해놓지 않고 가슴에 뜨거움을 품고 생명의 불씨로 숨쉬고 있는 것을 갈망하며 어디든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없이 찾아가고 싶다. 자유분방하게 그 누구한테도 얽매이지 않고 싶다. 이제라도 사랑하고 싶으면 화끈하게 사랑을 하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음껏 떡이 되게 마시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고 싶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며 숨쉬는 생명으로 뜨거움을 나누고 싶다. 내 마음에 깊이깊이 잠자고 있던  활화산이 사랑의 불꽃으로 피여나게 하고 싶다. 그리고  행복의 늪에 풍덩 빠지고 싶다.

겨울이면 나는 겨울나그네가 되고 싶다. 겨울나그네가 머무는 곳에는 인생의 성찰과 관조가 있다. 이 시각 나는 겨울나그네가 되여 겨울의 허허벌판에 서서 60년 내 인생을 돌아보며  내 생활의 궤적을 더듬어본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왔는가? 깊은 회의에 잠기기도 하고 유감에 잠기기도 한다. 30여년을 가정에 얽매이고 직장일에 몸이 묶이여 아이를 키우랴, 출근을 하랴, 담임을 하랴 매일 똑같은 일만 되풀이하며 기계적으로 버겁고 힘든 삶을 살아온 나의 인생은 너무 평범하고 따분하여 화려한 색채도 그렇다 할 멋진 풍경도 없었다. 그래도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내가 키워낸 훌륭한 제자들이 방방곡곡에 있다는 것이다. 세인을 놀래우는 업적은 없어도 사회에서 자기의 몫을 훌륭히 감당하는 제자들이 있어 내 인생은 평범하였지만 그래도  가치가 있는 인생이다…

그렇게 30년을 묵묵히 교육사업에 내 모든 정열을 바쳐 일해오다가 퇴직하여 제2인생을 맞이한 내 마음은 한껏 부풀었다. 당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즐겁고 다채롭고 보람찬 삶을 살려고 오만가지 계획을 다 세웠웠다. 취미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문학공부도 하고 쓰고 싶은 수필도 쓰면서 담담하게 여유롭게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 인생은 생각만해도 폼나는 인생이였다.

하지만 생활은 만화같이 나를 희롱하였다. 아니 생활은 요지경이였다. 그런 내 인생이 스스로도 너무 한심하고 싫었다. 겉으로는 명랑한 척 씩씩한 척 하면서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때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였고 수시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고의 겨울을 이겨내야 화창하고 찬란한 봄을 맞을 수 있다는 한가닥 삶의 희망이 나를 잡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를 악물고 꿋꿋이 내 앞에 닥친 시련을 이겨나가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내 인생이 너무 버겁고 힘들고 아파서 인생의 고해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나는 더욱더 간절히 겨울나그네가 되여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며 집시처럼 살고 싶은 것이 아닐가…

겨울이면 겨울나그네가 되여 겨울의 아픔과 절망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랑과 희망을 찾아보고 싶다. 기꺼이 겨울나그네가 되여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차겁고 매서운 겨울의 혹한이 나무가지를 마구 울리고 령하의 기온에 모든 것이 떵떵 얼어붙고 생명이 죽어가도 겨울나그네는 재생의 희망을 안고 절망을 딛고 서서 겨울의 풍경을 바라볼 줄 알기에 겨울의 엄한을,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의연한 마음으로 자연과 한몸이 되여 겨울의 언덕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생명의 숨결을 느끼며 초록빛 꿈을 꾼다. 그런 겨울나그네가 되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고 무한한 생명의 환희일가?

  겨울이면 나는 겨울나그네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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