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내 인생의 봄날”□ 허명훈

2023-03-31 09:01:33

이제부터 내 인생의 봄날은 시작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책보기와 글쓰기가 취미였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를 마치면 <홍루몽>, <수호전>, <서유기> 등은 물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안나 까레니나>, <목걸이> 등 외국의 명작을 열심히 찾아 읽었고 작문도 곧잘 써서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교내는 물론 현과 시에서 열린 글짓기 콩클에서 크고 작은 상장을 여러 번 받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문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고된 생산대로동에 몸이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저녁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면 하루의 피로도, 힘든 것도 모두 잊고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쓴 수필과 수기, 시 몇십편을  흑룡강신문과 흑룡강방송,연변라지오방송, 도라지, 송화강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몇해를 제외하고는 현실 속 삶이라는 채찍이 늘 나를 후려쳤다. 25살에 결혼을 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가정의 생계와 생활유지를 위해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바쁘게 살았고 상품경제와 시장경제의 치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남이 걸을 때 나는 뛰고 남이 뛸 때 나는 날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늘 자신을 다그쳤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며 마치 스피드시대 단거리 선수처럼 언제 한번 좌우와 뒤를 돌아볼 새 없이 줄곧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리다 보니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새 60의 문턱을 넘게 되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버리고 대신 세월이 준 흰 머리카락이 살아온 세월 만큼 수가 많아졌다. 이제야 오랜 세월 동안 단단히 동여매고 살던 생각과 가슴을 열어 빚어내고 싶은 글 보따리를 풀어볼 여유가 생겼다.

바쁘게 살던 지난 세월, 그래도 책을 보거나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은 잊을 수가 없어 서재에 앉아 몇번이나 펜을 들고 싶었지만 가정의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기 때문에 뼈아픔을 절감하면서 잊고 살았다. 어쩌다 어렵사리 수필 소재나 시 령감이 떠 올라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언제 한번 편안하게 글을 쓸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소재도 령감도 언녕 까마귀 고기를 먹고 난 후였다.

몇십년 만에 먼지가 쌓일 대로 쌓인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젊었을 때 채 쓰지 못한 수필과 시들이 마음 한구석이 찡하고 저리게 다가온다. 내 나이 60의 문턱을 넘어 이제는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심과 그동안 내가 걸머쥐였던 모든 끈과 무게를 내려놓았다. 아들과 딸들도 모두 내 품을 떠나 자기들의 둥지를 만들었으며 자기들의 삶에 충실하고 열심히들 살고 있어 가정의 짐도 내려놓은 셈이다. 그리고 내 마음과 령혼에 있던 불필요한 오물과 찌꺼기들도 흘러가는 물에 미련없이 던져버리고 어렵게 내 인생의 봄을 맞아 이제야 마음 놓고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쓰게 되였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 만큼 아름다운 추억과 나를 스쳐간 인연, 사연이 있어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글감이 있지만 한편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 사유와 령감이 많이 무뎌지고 펜도 무뎌져 글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 진척은 없고 마음만 앞서다 보니 어렵게 써놓은 글은 내가 봐도 탐탁치 않다. 투고를 하려고 해도 꼭 어떤 승부에서 지고 난 것 처럼 기분이 언짢고 찜찜하다. 그러나 조급해하기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차분한 마음과 자세로 더 많은 책을 읽고 부단히 쓰고 또 쓰다 보면 나중에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풀리듯 농익은 수필이나 시가 해볕을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신심을 가져본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을 건강도 챙기고 여러가지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기면서 살 것이다. 오직 앞만 보고 힘들게 달려온 내 인생, 60이 청춘이라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나이다. 비록 찬란한 앞날에 대한 약속은 없어도 내가 묵묵히 엮어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보석 같은 즐거움과 기쁨, 행복을 발견하고 거기에 만족을 느낀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숙제라고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든 현재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내 남은 인생 숙제를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내 인생의 퍼즐도 바야흐로 수려한 한폭의 멋진 그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이가 있지만 자기 인생을 사는데는 나이가 없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서재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면서 나의 존재를 알리는 빛나는 하루를 엮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봄날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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