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그 고독한 파티□ 리련화

2023-04-14 09:35:02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내 주변에는 집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술이란 모임이 있을 때만 마시는 나와 달리 그들은 집에서 자그마한 술상을 차려놓고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아서 놀랐다.

저녁 아홉시쯤 되면 친구들이 있는 위챗 그룹방에 맥주 한잔을 즐기는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벼운 안주가 아니라 제법 구색을 갖춰 이것저것 한상 차려놓고 지친 하루의 피곤을 푼다며 한컵 시원하게 따악 들이키면서 그 묘미를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자랑하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속에는 녀성의 비례가 적지 않다. 일을 그만두고 전직주부로 아이를 보는 엄마들은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한 뒤끝의 탈진을 맥주 한잔과 함께 마셔버리고, 대도시의 빡센 리듬을 매일 소화해야 하는 커리어우먼들도 지친 하루를 맥주 한잔과 넘겨버린다.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우울해도, 특별한 날이라서 또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라도 그들은 병마개를 딴다.

적당히 마시고는 술상거두매와 함께 하루 일과를 깨끗이 정리하고 마무리하며 비워진 마음으로 래일 또다시 주어질 스케줄을  준비한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하루 피로를 푸는 보약 같은 시간이고 하루를 견뎌낸 자신에 대한 축하의 시간일 수도 있다.

맥주의 종류도 어찌나 다양한지 처음 보는 것들이 많다. 요즘은 인터넷쇼핑이 용이한 시대라서 그런지 국내외 별의별 맥주들이 집집의 식탁에 어렵지 않게 오르고 있다. 우리 국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브랜드를 제외하고 일본 맥주, 한국 맥주, 독일 맥주, 벨찌끄 맥주, 과떼말라에 호주산까지 겨끔내기로 처음 보는 맥주를 올린다. 어떤 이들은 수제맥주가게에서 갓 짜낸 신선한 수제맥주를 배달시켜 마시기도 한다. 가격대도 500밀리리터 용량에 몇원부터 몇십원까지, 지어 어떤 맥주매니아들은 IPA맥주 회원권을 끊고 다달이 보내주는 신선한 맥주를 즐기기도 한다.

단체 술자리에서는 맥주의 맛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면 혼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분위기보다 맛이다. 혼술의 안주도 간단하게는 명태쪼가리나 과자쪼가리로부터 거창하게는 훈제족발, 오리 목, 매운 닭발, 양꼬치에 곱창전골까지 취향별로 다양하다. 연길 하면 또 ‘안주의 고장’ 아니던가, 학창시절 저녁자습 때마다 간식을 갖춰주던 어머니의 배려가 무색할 정도로 연길은 배달비 10~15원 정도면 술군들을 위해 심야까지 자유롭게 배달이 가능한 가게가 많다.

모임이 있으면  술을 꽤 마시지만, 오히려 집에서는 술을 한방울도 안 마시는 나로서는 그들의 혼술이 놀랍다. 아마 그 친구들도 혼술을 안 하는 내가 놀라울 수 있겠다. 밖에서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코로나기간 장시간 술자리가 없었어도 전혀 술이 고프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집에서 술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면 ‘아, 나는 맥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좋아서 마신 거였구나. 저 친구들은 진짜 맥주를 즐길 줄 아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단순히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맥주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맥주에 대한 연박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맥주의 제조 과정, 맥주의 력사, 맥주와 음식의 조합 등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그런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부단히 시도하면서 각각의 맥주가 가진 맛과 향을 경험하고 분석하고, 매니아끼리 서로 교류하면서 맥주를 즐긴다.

성격도, 직업도, 처경도 다 다르지만 저녁이 되면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섬주섬 안주를 차리고 랭장고에서 미리 차겁게 얼려둔 맥주를 척 꺼내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오랜 술력사 속에 련마한 재간으로 뻥! 하고 멋지게 병마개를 딴다. 마치 어떤 의식을 준비하듯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혼술을 즐기는 그들이지만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지 그룹방에 맥주 사진을 올리며 모두의 구미를 자극한다. 가끔씩은 짧게 영상통화를 틀고 함께 즐기기도 한다. ‘따로 또 함께’라, 묘한 반전이다. 외국에서는 혼술족들을 위한 혼술가게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의 혼술은 청승맞아 싫고, 북적이는 곳에서 즐기는 혼술이라니 ‘함께 또 따로’이다. 역시 모순으로 점철된 재미있는 현상이다.

독일에서는 맥주를 건배할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한다. 권력싸움이 심했던 중세기에 맥주에 독을 타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 때문에 건배를 할 때 상대의 눈보다는 잔을 더 살폈던 것, 그래서 오늘날 술잔을 부딪칠 때 상대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자신감이나 정직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되였다고 한다. 이처럼 맥주는 단순한 음료의 차원을 넘어서 파생된 여러가지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이고 락천적인 성격이 많다고 한다. 나는 맥주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서 맥주를 마시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민감하게 날을 곤두세웠던 자신을 맥주로 알딸딸하게, 둥글둥글하게 깎을 줄 아는 사람이고, 타협과 양보로 세상을 느긋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난득호도(难得糊涂)’의 세상에서 그들은 맥주로 자신의 팽팽했던 신경줄을 느슨하게 풀고 자신을 다독인다.

혼술, 그 고독한 파티를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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