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깃든, 오래된 것의 가치 □ 리련화

2024-01-25 15:37:41

산 지 꽤 되는 프라이팬도 새것으로 바꿀겸 묵은해를 보내며 주방에 새롭게 ‘식구’도 보탤겸 인터넷쇼핑몰에서 남비랑 그릇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은 코팅도 건강에 안 좋고 해서 다소 관리가 힘들더라도 이제는 오래 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나 무쇠 쪽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지 말거라. 엄마가 하나 줄게.”

갖고 싶던 브랜드의 무쇠솥이 이미 마음속에 우렷이 자리하고 있던 터라 엄마가 주겠다고 하니 별로 시답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창고 제일 구석에서 꺼내준 그것은 생각 밖에도 유명브랜드의 스테인리스 남비였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쓰고 놔뒀는가고 물으니 나에게 물려주려고 아껴뒀다고 한다.

엄마두 참, 그때그때 새로운 양식에 새로운 류행이 나오는데. 라고 하기엔 중후한 느낌의 묵직한 남비는 내 마음에 딱 들었다. 흡족해서 그제야 엄마네 집 찬장을 둘러보았더니 옛날엔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잔꽃무늬가 새겨진 그릇들이 새삼 예쁘게 안겨온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던하고 심플한 것보다는 어느샌가 무게감이 있고 중후한 느낌의 디자인이 점점 좋아지나 보다.

그릇들에 담긴 추억도 새록새록 돋아난다. 저 큰 국그릇엔 늘 귤을 담았었지, 저건 동생이 자기 밥공기로 하겠다고 우겨서 늘 동생 차지였지…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 머리속의 창고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들이 또르르 달려나온다.

녀자의 마지막 사치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그릇진렬장을 갖춘 친구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도 갖추고 싶지만 그러기엔 진렬장을 채울 그릇들이 아직 너무 빈약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들이고 싶지는 않다. 갖추기 위해 갖추는 것보다는 사연이 담긴 물건이 좋다. 집에 장식화를 걸지 못하는 리유도 그것 때문이다. 상업적으로 프린트해낸 그림은 싫다. 그래서 우리 집의 벽은 사연이 깃든 작품을 기다리며 아직도 휑하니 품을 열어두고 있다.

많지 않은 나의 그릇중 보물 1호는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커피잔 세트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생전에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으나, 내가 너무 비싼 거라 미안한 마음에 괜히 극구 사양을 했더니 “그래, 이런 잔꽃무늬를 젊은이들은 싫어할 수도 있겠구나.”하며 나의 마음을 오해하는 바람에 가지지 못했던 것이였다. 그러다가 썩 후에 시댁에서 우연히 오랜 시간 찬장 구석에 외로이 앉아있는 녀석들을 보고 후회가 갈마들어 렴치 불구하고 안아왔다. 영국풍의 엔틱한 느낌이 다분한 커피잔은 물결무늬가 잔 전체를 감싸듯이 회오리처럼 퍼져있고 거기에 덩쿨과 자잘한 잎사귀를 페인팅 기법으로 가득 채워넣었다. 시어머니께서 나를 생각하며 샀을 법한 그 커피잔을 보면 언제나 쾌활하고 따뜻했던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브랜드의 커피잔들은 중고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많게는 수십년 전에 생산되였고 이미 단종된 것들도 많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살림살이는 점점 늘어가지만 정작 잘 산 물건은 몇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정리하고 버리고 비워낸다. 새것 대로 있는 물건도 싫증 나서 버리고 입을 만한 옷도 류행이 지났다고 버리며 어떤 것은 심지어 왜 샀는지도 모른다. 산처럼 쌓인 버릴 물건들, 그것들을 장만하느라 퍼지른 돈은 또 얼마일가.

쉽게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잘 산 물건이였다면 쉽게 버리지 못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면 그걸 만드는 사람들도 쉽게 만들 것이고 쉽게 망가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쉽게 사고 쉽게 망가뜨리고 쉽게 버리게 되겠지.

이사할 때마다 싹 다 버리고 싹 다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대대로서 전해지는 가보는 있었을 법하나 잘 찾아보기 어렵다. 시대가 너무 급속도로 발전했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도 한몫한 듯싶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물건보다는 단단하고 오래 갈 수 있는 것들로 장만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딸내미가 우리 집에 왔다가 이것도 저것도 욕심 내서 다 달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평생주부’의 최고의 영광 아닐가. 그때가 되면 물건마다에 깃든 사연도 첨부해서 함께 딸내미에게 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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