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영렬 조기석 저명한 항일영렬 명록에 입선
우리 주 영렬 조기석이 퇴역군인사무부에서 네번째로 발부한 저명한 항일 영렬, 영웅 군체 명록에 입선했다.
조기석은 1904년 조선 함경북도에서 태여나 1911년에 연길현으로 이주했다. 1929년, 연길현세린하학교 교원으로 있을 때 교원, 학생과 군중을 조직해 반일시위행진을 펼치며 강렬한 반항정신을 보였다. 1930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조기석은 혁명의 도리를 보다 착실하게 배우고 당을 위해 일심전력으로 사업했다. 1931년 8월, 그는 중공연길구위 서기로 부임했고 같은 해 가을 농민들을 인솔해 기세 드높은 ‘추수투쟁’을 펼쳤다. 1932년 3월 20일, 조기석은 대중들을 이끌고 마반산 오암동에서 친일분자 공개재판대회를 소집했다.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일본 괴뢰군이 마반산 오암동 등 곳에서 토벌을 감행했고 북산촌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조기석 등 11명이 체포되였다. 일본침략자의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기석은 시종 당의 기밀을 엄수했다. 같은 해 4월 27일, 일본군은 조기석을 기관총으로 소사하여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조기석은 불과 28살의 나이에 장렬하게 희생했다.
장굉위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林洪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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