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에게 가야금은 이제 단순한 연주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과거와 미래를 련결 짓는 거대한 정신적 가교이다. "
무대 우에서 고운 빛갈의 전통복장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가야금 연주자, 은은한 조명 아래로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한폭의 수묵화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윽고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움직이며 손끝이 머무는 순간마다 섬세하면서도 애절하다가 이내 대지를 울리는 호방한 선률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연변가무단 2급 연주자이자 가야금예술 성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인 김영(44세)씨의 무대는 언제나 이렇게 청중을 압도하는 분위기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우아하게 서정적인 선률을 만들어내는 연주자의 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의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있었고 그 속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고스란히 배여있었다. 수려한 얼굴과는 너무나 다른, 그야말로 ‘형편없는’ 손이였다.
“이 굳은살의 두께 만큼 제가 가야금을 사랑해온 시간이 증명되는 것 같아서 전 제 손이 참 좋습니다.”

2025년 '상해의 봄' 국제 음악축제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김영.
◆가야금과의 운명적인 만남
23현 가야금을 주전공으로 한 김영은 처음부터 가야금을 탔던 것은 아니였다. 그녀의 음악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는 언제나 예술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김영은 늘 음악과 함께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유난히 흥이 넘치고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분이였다. 그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로 발을 들인 김영이 처음 마주한 악기는 손풍금이였다. 바람집을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풍성한 소리에 매료된 꼬마는 손풍금을 타며 음악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그러던 1992년, 김영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당시 11살이던 소녀는 김성삼 선생을 만나게 된다. 김성삼 선생은 2012년에 가야금예술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으로 되였다.
“선생님을 처음 뵙고 가야금소리를 듣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손풍금이 바람을 불어넣어 정형화된 소리를 내는 악기라면 가야금은 인간의 거친 숨결과 감정이 현의 떨림을 통해 그대로 투과되는 악기였죠. 나무울림통을 거쳐 나오는 그 깊고 은은한 소리는 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김영은 그렇게 스승 김성삼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가야금의 현을 타기 시작했다. 서양식 건반 우를 부드럽게 날아다니던 손가락은 이제 거친 명주실과 마주해야 했다. 뜯고 튕기고 누르고 흔드는 가야금 연주의 기초를 배우며 여린 손가락 끝은 피로 물들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연변예술학교 소학반에서 시작된 스승과의 인연은 석사연구생 과정까지 무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단하게 이어졌다.
김영에게 있어서 김성삼 선생은 전통음악에 대한 리해와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올곧은 성품을 심어준 등대 같은 분이였다.
“가야금은 말이죠, 다른 악기와 달라서 오롯이 맨살로 줄을 뜯고 튕겨야 하는 악기예요. 명주실의 거친 마찰을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비로소 가장 명쾌한 소리가 나거든요.”ㄷ
손가락의 감각으로 연주를 하는 것을 김영은 큰 자부심으로 간직한다. 그것은 아픔을 온전히 견뎌내고 그 고통을 딛고 수없이 갈고닦아야만 좋은 소리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국내외 무대에서 예술기량 발휘
학업을 마친 김영은 연변가무단에 정식으로 입단하여 전문 연주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내외 수많은 무대로 예술령역을 넓혀갔다. 김영는 자신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무대로 2025년에 개최된 ‘상해의 봄’ 국제음악축제를 꼽았다.
‘상해의 봄’ 국제음악축제는 전세계의 음악가들과 오케스트라, 현대음악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음악적 기량을 겨루고 교류하는 글로벌 예술무대이다. 이 국제적인 축제에서 김영씨는 당당히 가야금 독주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올라섰을 때의 그 떨림과 중압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많은 외국인 관객들과 음악전문가들이 숨죽이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죠. 저는 제 거친 손끝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로 가야금의 우아하고도 강인한 기상을 아낌없이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명주실을 강하게 튕기며 장중한 가락을 뽑아내자 객석에서는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야금 독주가 지닌 독특한 음색은 기타 현악기와는 다른 서정적이면서도 력동적인 울림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영의 무대에서의 성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국가대극원, 인민대회당에서도 여러차례 독주무대를 펼치며 자신의 진가를 립증했다.
특히 그녀가 관현악단과 협연하거나 독주로 선보인 〈옹헤야〉나 〈바다의 노래〉 같은 곡들은 전통의 숨결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까지 곁들여 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았다. 웅장한 국가대극원에서 울려퍼진 김영의 가야금 선률은 민족음악의 자산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당당하게 증명해보였다.
김영의 공로는 가야금의 위상을 높인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문화및관광부로부터 지역사회의 문화발전과 전통문화 보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국 문화및관광분야 선진사업일군’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이 상은 문화및관광부가 최초로 기층을 대상으로 수여한 종합표창장이다. 우리 나라의 문화, 예술, 관광 산업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예이기에 심사과정 또한 까다롭다. 김영은 연변에서 유일하게 이 상을 받아안은 예술인이다.
◆무형문화유산의 명맥 전승
시대를 담아내며 명맥을 지켜온 민족의 가락을 익히고 지키며 계승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후대양성과 전통교육에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심혈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의 손을 거쳐간 제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그녀는 연변가무단 전승기지는 물론 안도현조선족학교에 가야금연주팀을 설립하여 매주 김성삼 선생과 함께 학생들을 직접 지도했으며 2022년과 2025년에는 성급, 주급 가야금예술반에서 가야금 연주를 가르쳤다.
또 중앙음악학원과 중앙민족대학 등 대학에 초청받아 무형문화유산에 관한 특강과 예술 교류를 진행하며 조선족 전통음악의 깊이를 학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녀가 연변의 변두리 학교까지 직접 찾아가는 리유는 김성삼 선생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의 맥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넘겨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 때문이다.
“가야금의 연주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악기에 담긴 력사와 뿌리를 모른다면 그것은 령혼 없는 기계적인 소리에 불과하다고 늘 제자들에게 말해줍니다. ‘뿌리를 알아야 미래가 있다’는 것이 제 확고한 철학입니다. 가야금의 력사적 배경과 그 안에 서린 정서를 깊이 리해해야 줄 하나를 뜯더라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진정한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김영은 음악에 대한 리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리고 삶의 경험이 쌓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깊어진다고 고백했다.
“20대와 30대에는 어떻게든 기술을 더 과시하고 더 빠르고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에 치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수많은 삶의 굴곡을 겪고 전승인이란 신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제는 가야금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음악의 깊이는 결국 연주자의 나이와 삶의 깊이에 비례하더군요.”
그녀에게 가야금은 이제 단순한 연주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거대한 정신적 가교이다. 가야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의 눈빛은 깊고 고요했으며 그 속에는 애틋함이 묻어있었다.
◆거친 손끝이 그려내는 가야금의 미래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에 김영의 가야금 연주는 오래 남는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 전통을 이어받은 계승자이자 전통을 다시 태여나게 하는 창조자로서의 그녀는 진정한 전승이란 력사 속에 갇힌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련습실 창밖으로 붉은 저녁노을이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은은한 노을빛이 그녀의 거칠고 투박한 손등 우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 모습은 무대 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가야금은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에게 가야금은 ‘거울’이자 제 자신입니다. 가야금 줄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불안하면 소리도 떨리고 제 마음에 욕심이 차있으면 소리도 날카로워집니다. 제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이 23현 우에 투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야금을 탄다는 것은 매 순간 제 마음을 닦아내는 수행과도 같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금 앞에 단정히 앉았다. 이윽고 그녀의 손가락이 명주실을 지그시 누르고 튕기자 깊고 묵직한 가락이 련습실의 공기를 가르며 흘러나왔다.
음과 음 사이, 소리가 잠시 멈춘 그 여백의 순간에도 가야금의 울림통은 미세하게 떨리며 긴 잔향을 남겼다. 그 잔향은 가야금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녀의 인생과 닮아있었다. 무대 우의 화려한 조명은 꺼지더라도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선률과 전통을 향한 뜨거운 집념은 끝없는 울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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