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시신동소학교 리홍교 교원은 31년간 교육 일선에 머물며 한결같은 초심으로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당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를 위해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원의 사명을 오롯이 실천하면서 충성과 책임 그리고 사랑으로 새시대 인민교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원이라면 항상 앞장서서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이는 리홍교 교원이 평소 늘 입에 담는 말이자 그가 한결같이 지켜온 행동 규범이다. 그는 제일먼저 자신의 수업부터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하고 다듬었다. 그는 수업을 준비할 때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으로 교재를 반복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면서 교안 내용을 정성껏 다듬었고 아이들의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새 교육 과정 표준을 깊이있게 연구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많은 명강의를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수업체계를 단단히 다진 뒤에도 그는 결코 자만하거나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좋은 교육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모든 동료 교원이 함께 성장해야 더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 속에서 깊이 체감해왔다. 학년조 조장으로서 그는 청년 교원들의 인솔자가 되여 교안 작성의 작은 요령부터 수업 분위기를 틀어쥐는 노하우, 학급을 따뜻하게 운영하는 방법, 학부모와 마음을 나누는 소통방식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경험을 아낌없이 전수해주며 청년 교원들의 빠른 성장을 이끌었다. 그의 노력으로 학년조 전체는 서로 돕고 앞다투어 진보하며 학교에서 가장 응집력이 강한 우수집단으로 거듭났다.
한편 생활상에서의 리홍교는 효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어려운 순간에도 스스로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강인한 사람이다. 몇년 전 전 시 교원 국가급 연수로 그가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쓰러져 연변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가지 무거운 책임이 한꺼번에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지만 그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낮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연수업무를 정밀하게 처리하고 시범수업을 맡아 동료 교원들에게 모범을 보였으며 하루 일과를 마친 뒤에는 어둑해진 길을 따라 70여킬로메터를 달려 병원으로 가 어머니를 돌보고는 다음날 새벽에 다시 차를 몰고 학교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이어진 피로로 인해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곤이 묻어났지만 그는 ‘절대 아이들의 학업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맡은 수업을 한번도 빼놓지 않았다.
리홍교 교원은 31년이라는 긴 세월을 당의 교육사업에 바쳤다. 세속적인 화려함을 모두 내려놓고 ‘당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를 위해 인재를 양성한다’는 초심을 한결같이 지켜온 그는 계속하여 평범한 교단에서 새시대 당원 교원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전해연 기자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