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잇는 전통, 판소리로 여는 래일

2026-11-06 09:11:22

"젊은 시절에는 단단한 공력과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소리를 추구했다면 지금은 인생의 굴곡과 깊은 서정이 배여있는 '무르익은 소리'를 지향한다. "


중국 곡예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2년에 한번씩 평의되는 ‘중국곡예 모란상’은 전국의 내노라하는 쟁쟁한 소리군과 희극인들이 사력을 다해 기량을 겨루는 무대이다.

이 뜨거운 승부의 현장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종목으로 등재된 조선족판소리예술 성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이자 연변의 ‘종달새’로 불리우는 최려령(44세)이 제8회 중국곡예 모란상 ‘신인특별상’ 수상에 이어 여섯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좌절과 아쉬움 속에서도 소리판을 떠나지 않았던 그녀의 집념은 마침내 제14회 중국곡예 모란상 ‘연기상’이라는 눈부신 결실로 피여났다. 결승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 같았던 그 엄혹한 검증의 시간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제14회 중국곡예 모란상 무대에 오른 최려령, 강화 부부. 

◆소리판에서 만난 동지

무대 우 조명이 낮게 깔리고 적막이 흐르면 소리군의 단전에서 끌어올린 첫 음성이 공기를 가른다. 그녀의 소리는 거칠면서도 웅장하고 애절하면서도 옹골찼으며 이내 관객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최려령이 직접 대본을 쓰고 주연까지 맡은 《신혼 첫날밤의 소동》이다. 7분 12초의 분량으로 짜여진 이 작품은 조선족 고유의 혼례풍속이 지닌 정겹고도 경쾌한 풍경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구성해냈다.

공연 초반부터 최려령의 소리는 잦은모리와 휘모리의 질주하는 장단을 여유롭게 타고 넘으며 무대의 막을 연다. 신혼 첫날밤, 친지들과 이웃들이 모여 축복을 나누는 장면에서 터져나오는 유쾌한 소동과 소박한 인정이 그녀의 소리를 통해 립체적으로 재현된다.

이어 중반부에 들어서면 한층 다채로운 생동감이 펼쳐진다. 설장구의 경쾌한 장단과 탈춤의 해학적인 춤사위가 소리군의 소리와 톱이바퀴처럼 맞물리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촘촘한 구성은 후반부에 이르러 폭발적인 에너지로 승화된다. 소리군의 거친 숨결과 가슴을 뚫는 통성이 관객의 감성을 일깨울 때 객석에서는 참았던 추임새와 폭발적인 갈채가 터져나온다.

전통의 골격 우에 현대적 해학과 감성을 더한 7분 12초의 무대는 판소리가 오늘날에도 얼마나 흥미진진한 대중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해 보였다. 그녀에게 이번 무대가 유독 깊고 뜨거운 감동으로 남은 리유는 그 화려한 무대에 오르기까지 뒤에서 묵묵히 그녀를 받쳐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급 무형문화유산 종목으로 등재된 조선족창극예술 성급 무형문화유산 대표 전승인으로 활약중인 남편 강화는 그녀와 함께 전통음악의 길을 차곡차곡 걸어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 또 가장 엄격한 눈으로 서로의 음악을 비평하고 다듬어주는 예술적 동지이다.

이번 《신혼 첫날밤의 소동》에서는 남편이 함께 무대에 올라 그녀의 주인공 연기를 더욱 빛나게 받쳐주었다. 무대 우에서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예술장인이 되였다. 인터뷰중 최려령은 무대 우에서 남편과의 눈빛 교감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고백했다.

“무대에서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호흡을 맞출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울컥 치밀어오르며 뭉클해집니다. 같은 전통음악을 바라보고 같은 고단함과 열정을 공유해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눈빛이거든요.”

최려령 못지않게 남편 강화의 전통음악에 대한 사랑 또한 남다르다. 그는 집 한쪽 공간에 전문적인 록음장비와 음향시스템을 갖추어놓고 안해가 소리를 련습할 때마다 직접 마이크를 잡고 모든 록음작업을 도맡아한다.

강화는 작품의 한 대목, 한 음정까지 섬세하게 잡아내며 안해의 목소리가 지닌 최상의 결을 찾아낸다. 최려령은 남편의 든든한 지원과 깊은 리해가 없었다면 오늘날 ‘연기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소리에 힘을 실어주며 나란히 걸어가는 소리군 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편의 아름다운 창극이자 가장 진실한 전통의 전승현장이였다.


◆우리 소리의 참맛을 알리다

최려령이 판소리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유년시절 스승 강신자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음악학원을 놀이터처럼 넘나들던 어린 소녀는 스승의 손에 이끌려 운명처럼 판소리의 아득한 미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판소리 기예를 갈고닦아 강신자 선생님의 창법과 부채발림, 몸사위, 고법장단을 온전히 재현하였으며 중국조선족 토착 판소리 창법의 핵심을 지키면서 예술의 뿌리를 굳게 지켰다. 창법에서 그녀는 강신자 선생님 특유의 힘차고 깊은 바탕을 이어받은 동시에 한층 섬세한 감정 처리를 더하고 연변 향토민속과 대중의 미적 취향에 맞는 창법과 운률을 개량하여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표현방식을 이뤄나갔다. 연변예술학교 8년 과정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판소리실기전공 석사연구생 공부를 마치기까지 그녀는 오로지 소리 하나만을 바라보며 치렬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다.

2011년, 연변가무단에 들어간 후에는 조선족창극 《심청전》과 《춘향전》에서 주연은 물론 각색과 소리지도를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소수민족곡예전시공연을 비롯해 제6회 해협량안곡예환락회, 중국무형문화재곡예주간, 제4회 전국소수민족문예전시공연 개막식야회, 제5회와 제6회 전국소수민족곡예전시공연, 중국곡예백전축제 등 주목받는 무대에서도 자신의 소리를 알리며 자타가 공인하는 탄탄한 실력을 쌓았다. 또한 중국곡예가협회 회원, 길림성곡예가협회 리사 및 연변곡예가협회 부주석 등 사회적 직무를 두루 맡으며 곡예 예술의 전승과 혁신을 위해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예술기금의 지원을 받으며 현대적 감각을 더한 《평범한 행복》으로 창작 령역을 꾸준히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판소리를 지키는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화려한 리력의 배후에는 전통예술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고독과 편견이 늘 뒤따랐다. “판소리는 고루하고 지루하다.”, “듣기 어렵고 따분하다.”는 시선은 소리군의 길을 선택한 그녀의 어깨를 늘 무겁게 눌렀다.

최려령은 대중과 판소리의 거리를 좁히고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을 모색해냈다. 요즘 추세를 따라 틱톡에 판소리 영상을 올리며 대중과 전통음악을 잇는 가교 역할을 기꺼이 자처한 것이다. 판소리의 경쾌한 대목, 해학적인 이야기, 소리군의 풍부한 표정연기를 짧은 영상에 담아 틱톡에 공유하자 단번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루적 ‘좋아요’ 수 72만회, 팔로워가 7만명을 넘어서며 많은 이들이 젊은 소리군이 전하는 한과 흥의 울림에 심심히 매료되였다. 이 작은 화면은 그녀에게 대중과 교감하는 또 하나의 력동적인 현대판 ‘소리판’이 되여준 셈이다.

“노래가 아닌 ‘소리’라고 부르는 데는 리유가 있습니다. 노래가 음률을 전달한다면 소리는 인생의 희로애락 그 자체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이 평온했을지라도 소리군이 되는 순간 한과 흥이 온몸을 감싸며 소리로 승화됩니다. 좋은 소리군은 관객을 소리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녀는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에 매료되여 무대 아래에서 “얼씨구!”, “좋지!” 하고 추임새를 넣어줄 때 소리군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판소리의 대중화에 누구보다 진심인 그녀에게 판소리의 현시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녀는 “젊은층들이 많이 들어주긴 하지만 아직도 관중의 관심에 갈증을 느낍니다. 최근 전통음악계에서는 형식적 확장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는 령역까지 범위가 넓혀진다면 판소리가 우리 삶에 더 풍성하게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가 싶습니다.”고 대답했다.


◆후대를 위한 유산 정립을 꿈꾸며

옛것을 우리 정서에 맞게 보존하고 그 우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인, 정통을 바탕으로 다시 태여난 전통을 전승하고 그 안에 담긴 본질적 구조에 기반해 우리 음악의 생명력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최려령은 전통음악의 깊이를 날마다 새롭게 느끼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단단한 공력과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소리를 추구했다면 지금은 인생의 굴곡과 깊은 서정이 배여있는 ‘무르익은 소리’를 지향한다.

그녀는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소리만이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젊은 소리군들은 지금 자신의 소리를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소비’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봐야 합니다. 삶을 담아낸 진짜 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판소리 전승인인 그녀는 연변의 중소학교들과 련계하여 판소리 무형문화유산 동아리를 창설하고 청소년 전승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있다. 최려령은 정기적으로 제자들을 인솔하여 연변민속축제, 문화혜민공연 등에 참가하면서 제자들에게 실전무대를 마련해주는 등 판소리 보급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제자들의 손을 잡고 소리의 길을 안내하며 그녀는 스승에게서 배웠던 그 뜨거운 열정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감동을 느끼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꿈을 묻자 그녀의 눈빛은 무대 우의 조명보다 더 환하게 반짝였다. 여섯번의 도전끝에 예술인으로서 값진 상을 받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무대 너머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한 공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동안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져온 조선족 판소리와 전통음악의 력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구전으로만 전해져 문자기록이 없던 공백을 메움으로써 후학들이 학술적 리정표로 삼을 수 있도록 완성도 높은 작품집과 음반을 제작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의 소리가 한 민족의 얼굴이 되고 한 사람의 열정이 문화의 맥을 지키는 힘이 된다.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붙잡고 있는 최려령의 모습에서 조선족 예술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진다.

 신연희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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