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시며 ‘명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적부터 늘 명랑하게, 환하게 세상을 살아왔다.
조금 철이 들면서 어쩐지 내 이름이 너무 평범하고 촌스럽게 느껴져 아버지께 조심스레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아버지, 제 이름 좀 바꾸고 싶어요. 세련되고 예쁜 이름으로요.”
아버지는 그 말에 잠시 묵묵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명자가 무슨 뜻인지 아니? 밝을 명에 아들 자야. 네가 늘 밝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셨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단순한 글자 하나하나에 스며든 부모의 정성을,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딸을 위해 밤새 고민하며 이름을 지으셨을 그 따뜻한 마음을.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그때까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명자’라는 이름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왔다.
소학교에 입학한 첫날, 나는 똑바로 선 자세로 당당히 내 이름을 불렀다. 그 후 학교생활 내내 ‘명자’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입에서 수없이 불리며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게 하는 울림이 되였다.
특히 6학년 어느 어문시간, 선생님께서 칠판에 나의 이름을 적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빛나게 살라는 뜻이 담긴 아름다운 이름이구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깊이 다짐했다.
‘반드시 이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여야지.’
그 뒤로 나는 공부도, 친구 사이도, 하는 모든 일에 더욱 진심을 다하려 애썼다. 이름은 비록 흔할지라도 그 뜻은 내 삶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여주었다.
세월은 흘러 나는 고중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국수집에서 일하게 되였다. 사람들은 나를 ‘국수집 이모’라 불렀다. 결혼을 하고 나니 ‘누구 안해’가 되였고 아이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아이의 엄마’로 불렸다.
어느덧 내 본래 이름 ‘명자’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서른부터 쉰까지 내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물론 ‘누구 엄마’, ‘누구 안해’라는 호칭이 불편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호칭들에 담긴 사랑과 책임을 안고 뿌듯하게 하루하루 살아왔다. 그 여러 이름 속에서도 나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 후 아들이 결혼하고 손자가 태여나면서 나는 이제 ‘시어머니’와 ‘할머니’가 되였다. 여러 호칭이 더해질수록 점점 본래의 나는 뒤로 밀려나는 듯했다. 정말 ‘명자’는 어디에 두고 온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했다.
밤마다 창가에 앉아 반짝이는 별을 보며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별처럼, 내 삶을 빛내는 이름 하나쯤은 다시 가질 수 없을가?’
퇴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이름을 되찾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시조 공부방에도 발을 들이며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틈틈이 책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이름 ‘명자’가 잡지에, 신문에 실렸다. 그 순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쁨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그리고 2년 전쯤부터는 드디여 ‘리명자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생겼다. 이토록 빛나는 이름을 내가 갖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어느 문학모임에서 누군가가 ‘리명자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황혼의 인생에 이런 값진 이름을 선물해주신 모든 분들이 고마웠다.
내 안의 작은 재능을 일깨워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스승들, 그들이 계셨기에 나는 이 빛나는 이름을 다시 갖게 되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서운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황혼의 인생이지만, 부모님이 지어주신 ‘명자’라는 이름 뒤에 ‘작가’라는 이름을 당당히 걸치고 살게 되였으니 말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으로 해와 달처럼 빛을 내며 나답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돌이켜보면 내 이름은 한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삶의 크고 작은 호칭들에 가려 그 빛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국수집 이모로, 누군가의 안해로, 아이의 엄마로, 또 누군가의 할머니로 살아온 세월 속에서도 ‘명자’는 언제나 내 안 깊은 곳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그 이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시 나를 불러주기를,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가기를.
계절에 따라 산의 나무들은 온갖 빛으로 물들어도 그 안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듯 나 역시 수많은 호칭의 계절을 지나 마침내 ‘리명자’라는 나무로 다시 서게 되였다. 그리고 그 나무에 ‘작가’라는 이름의 잎이 돋아난 지금, 나는 황혼의 하늘 아래에서도 가장 환한 빛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 이름이 누군가의 입에서 다시 불릴 때, 그 울림이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부모님이 그토록 바라셨던 ‘밝고 씩씩한 삶’을, 나는 이제 나만의 방식으로 완성해가고 있다. 그 이름 하나로 나는 오늘도, 래일도, 당당히 나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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