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꽃나비야□ 김미란

2023-06-01 16: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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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공부에 부대끼다가 주말에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서 꼼지락꼼지락거리면서 빈둥대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깨소금맛을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이모의 방문으로 산산쪼각이 났다.

“언니, 미나가 영양실조로 비칠거려요. 보건품을 사다가 먹여야 할 것 같아요.”

이모는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엄마와 말하였다.

먹을 것이 풍족한 요즘 세상에 영양실조라니!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직 어린데 보건품보다는 하루 세끼 잘 챙겨줘라. 쌀이 막대라고 밥을 먹여야 한다. 메이퇀에서 사먹일 궁리를 하지 말고 엄마의 손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 난 너의 생활방식이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 어쩌면 해서 먹일 생각을 하지 않니!”

이모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하였다.

“언니, 나는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하는 데 신물이 난 사람이예요. 집에서까지 어떻게 가마두껑 운전을 하겠어요! 행주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고무장갑만 보면 머리가 아파요.”

미나는 이모네 외동딸인데 나와 외사촌지간이다. 우리는 14살 동갑이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고 있다. 나는 붓으로 대충 그어놓은 듯한 뱁새눈에 피부마저 까마잡잡하다. 게다가 엉덩이는 때이르게 펑퍼짐하고 배살도 뒤룩뒤룩 올라있다.

반대로 미나는 몸매도 날씬하고 우유빛 피부에 포도알같이 까만 예쁜 쌍거풀이다. 또 해쭉 웃을 때면 량볼에 보조개가 옴폭 패인다.

미나는 춤과 노래에 장끼가 있다. 은방울 같은 목소리를 가진 덕분에 창작동요제에서 해마다 상을 타군 하였다. 예술세포를 갖고 있어서인지 미나의 꿈은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옷차림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데 교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복장점에 가서 줄여입고 뽐내다가 체육시간에 터져 큰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다.

미나는 특히 나비모양의 삔을 굉장히 좋아하였다. 옷이나 머리에는 늘 보석을 박은 나비삔이 꽂혀있었다.

나는 돈이 생기면 간식을 사먹는 것으로 위장에 투자하지만 미나는 먹는 것에는 린색할 정도로 돈을 아끼고 피부관리나 옷차림에 돈을 투자했다.

미나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남자애들 속에서 인기가 높았다. 유치원 뻐스에 오를 때면 남자애들은 저마다 미나의 옆에 앉겠다고 밀치닥거리였다. 소학교에 입학해서도 미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남자아이들은 저마다 도와주지 못해 안달아했고 책상 안에 새우깡이나 요구르트 같은 간식거리들을 넣어주군 하였다.

반대로 녀자애들 속에서는 늘 왕따였다. 오손도손 모여앉아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미나가 다가가면 물방울처럼 와르르 흩어졌다.

간혹 술래잡기를 할 때 끼워준다고 하여도 미나는 늘 술래였다. 처음에는 미나가 술래잡기의 법칙을 잘 몰라서 술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나가 미처 도망치지 못한 아이의 옷깃을 잡고 의기양양하게 “나 잡았다!”라고 소리치면 녀자아이들은 반칙이라고 부득부득 우기였다. 미나는 번마다 요리조리 피해 달리는 녀자애들 속에서 고양이를 잡아보겠다고 나선 새앙쥐 꼴이 되군 하였다. 상학종이 울릴 때까지 미나는 술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미나는 녀자애들이 합세하여 자기를 놀려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로웠던 미나는 그렇게라도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반에서 나를 뺀 녀자애들은 모두 남자애들 속에서 인기짱인 미나를 질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망결에 미나가 녀자애들 속에서 왕따라는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모는 그 이튿날 즉시 제과점에 가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만든 케익을 사다가 녀자애들한테 나누어주었다.

이모한테서 케익을 받아들 때에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사이좋게 놀겠습니다.”고 골백번 말하다가도 바닥에 붙은 크림까지 날름날름 다 핥아먹고는 미나만 남겨두고 저들끼리 뿔뿔이 헤여졌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달마다 시험은 흡진기마냥 입을 쫘악 벌리고 우리가 빨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나는 시험준비에 눈이 토끼눈처럼 충혈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피부관리를 하지 않으면 어떤 날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한다면서 종이학을 접었다.

미나의 다이어트는 한달 전 진달래드라마협회에서 우리 학교로 아역배우모집을 온 후로부터 시작되였다.

배우모집을 온다는 소식을 들은 미나는 코 속에 있는 코털이 밖에 나와 바람을 쏘일 정도로 흥분에 들떠있었다.

이모를 졸라 미용원에 가서 팩을 하고 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파마까지 하였다. 또 이모부에게 비싼 나비삔을 부탁하였다.

우리들이 머리속에 공식들을 채워넣지 못해 안달을 떨 때 미나는 거울 앞에 마주서서 부산을 떨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하였지만 미나는 뽑히지 않고 왜소하고 너무 평범하게 생긴 녀자애가 감독의 눈에 들어 아역배우로 뽑히였다. 미나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은 원인이 몸매가 뚱뚱해서라고 우기였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녀자아이였다. 얼굴이 보동보동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흐르는 미나가 뽑힌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미나는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선고하였다.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철저하게 해내는 성미를 가졌는지라 먼저 밥과 빵을 끊었다. 그리고 평소 즐겨 먹던 피자와 햄버거는 전혀 먹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치킨을 먹어야 할 때에는 튀김옷을 홀랑 벗기고 먹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체중계에 올라섰다.

“와! 오늘은 1킬로 줄었어.”

한창 발육할 나이에 음식을 공제하니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에 얼굴색은 노랗게 변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너무 여위여 어깨뼈와 가슴뼈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며칠이 지난 후 미나는 들뜬 표정으로 우리 집에 찾아왔다. 입고 온 드레스는 굉장히 화려하였다. 머리에 꽂힌 나비삔이 얄궂게 내 눈을 자극하였다.

“오늘부터 틱톡에 동영상을 올리겠다. 유명 연예인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캐스팀되였단다. 나한테는 그런 행운이 없으니 틱톡을 리용하겠다. 요즘 사람들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고 있으니 감독들도 례외가 아닐 거야. 동영상을 보고 나를 캐스팅할 거다. 오늘 나랑 함께 가보자. 먼저 단골미용사를 찾아 화장해야겠다.”

단골미용사? 단골식당이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단골미용사란 말은 금시초문이다.

미나는 함께 가달라고 사정하였다. 낮잠을 만끽하려고 하였지만 미나가 온몸의 세포를 동원해 나를 향해 호소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나섰다. 샴푸냄새 대신 커피향이 감도는 머리방에서 미나는 머리를 손질하고 미용사의 도움으로 화장을 하였다.

미나는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단다, 첫인상이! 연예인이 되여 우리 반 못난이 계집애들의 코대를 납작하게 꺽어주겠다. 나를 왕따시키던 못난이들이 이제 곧 내 발밑에 엎드려 싸인해달라고 할 걸…”

미나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뻐스 안에서 미나는 동영상을 나한테 자랑하였다. 보는 순간, 나는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 번하였다. 이렇게 야한 옷은 머리에 털이 돋아 처음이였다.

배꼽을 들어낸 것은 둘째치고 치마는 천쪼가리였다. 마치 원시인들의 풀잎가리개 같았다. 미나는 포즈를 바꿔가면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얘, 학생인데 옷이 너무 튀는구나. 부끄럽지 않니?”

미나는 나를 깔보는 듯한 눈길로 찔 흘겨보았다. 나의 귀가에서는 분명 찌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면도칼에 종이가 잘려나가는 듯한 소리는 분명 미나의 눈이 나를 째려보는 소리였다. 그 눈길이 얼마나 매서웠던지 그 눈길로 상처를 낼 수 있다면 못생긴 내 얼굴에 커다란 생채기가 생겼을 것이다.

나의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미나는 인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모델은 남의 눈을 자극하는 직업이야. 넌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하겠구나.”

미나의 행동은 학생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틱톡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싶다면 시랑송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가? 동영상이 틱톡에서 뜰 때마다 어쩐지 불안하였다. 하지만 미나는 횡설수설 닭알낟가리를 쌓고 있었다. 그 어느 날엔가 유명 감독이 동영상을 보고 찾아온다고 하면서 연예인이 되여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매달리며 싸인해달라고 한다나…

무심코 신문에서 미성년자의 틱톡 방송 진행을 규제한다는 보도기사를 보았다. 나의 가슴은 참새를 품은 듯 팔딱거리였다. 여러번 권고하였지만 미나는 번마다 하늘이 낮다고 길길이 뛰였다.

“선생님들이 뭐가 상관이니! 내가 뭐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그리고 틱톡에서 춤추는 일이 왜 안되는데? 네가 뭔데 남의 사생활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참견이니!”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여느때처럼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 교실에 들어서니 교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녀자애들이 끼리끼리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겼어?”

“미나, 너의 사촌이 좀전에 보도원 선생님한테 불리워갔어. 야한 수영복 입고 춤추는 동영상을 학교 선생님이 틱톡에서 보았단다.”

“혼자 얌전한 척, 우아한 척 하더니 꼴 좋게 됐네.”

애들의 말을 듣고 나는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나른해져 걸상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내가 일찍 말렸더라면… 미나가 처분이라도 당할가 봐 겁이 났다. 나는 녀자애들의 눈길을 피해 슬그머니 복도로 나가 미나를 기다렸다. 휘청휘청…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는 교장실은 그렇게도 멀어보였다… 문가에 귀를 바짝 대고 들어보았지만 미나의 흐느낌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출입문가에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였다. 나는 도망치듯 교실을 향해 달려갔다.

미나가 혼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곧 이모도 불리워 오고… 이모부도 올 것이다. 미나가 성격이 불같은 이모부한테 맞아대면 어쩔가?

나의 눈앞에는 얄궂게 웃는 미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예인이 된다면서 너스레를 떨던 미나의 모습이…

야한 수영복을 입고 너울너울 춤추던 미나의 모습이…

이 모든 꿈들이 머리속을 스치면서 물거품처럼 언뜻언뜻 사라졌다…

  나비 한마리가, 꽃나비 한마리가 눈앞에서 가냘프게 날개를 파닥이며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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