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의 간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위로해온 일본의 소설가 오가와 이또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33세 나이에 말기암 판정을 받고 따뜻한 곳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남은 나날을 보내기 위해 주인공 시즈꾸가 매주 일요일, 특별한 간식시간이 열리는 ‘라이온의 집’에 도착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소설은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또우치 바다가의 그림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선량하고 다정한 사람들 곁에서 건강했던 시절의 마음을 되찾아가는 시즈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의지 또한 솟아오르는 기분이 든다.
소설은 시즈꾸가 크리마스날, 바다 건너 ‘라이온의 집’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려정에서 시작한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물론 아이도 없고 부모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시즈꾸는 33살 나이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암환자이다.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를 받는 대신 따뜻한 곳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남은 나날을 보내리라고 결심한 그녀는 세또우치 지방의 어느 조용한 섬에 도착한다. 옛날에 레몬 나무를 많이 재배하던 곳이여서 륙지 사람들은 ‘레몬섬’이라 부르는 곳이다.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낼 장소에 다다른 소감을 시즈꾸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대로 바람에 녹아들고 싶다. 집을 나올 때부터 쓰고 있던 마스크를 과감히 벗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이다. 신선한 공기가 페 깊은 곳까지 밀려들 듯 기세좋게 흘러들어왔다. 이 느낌을 맛본 것만으로도 레몬섬까지 온 보람이 있다. 페 안쪽이 깨끗한 공기로 빡빡 씻겨나가는 기분이였다.”
세상을 떠날 때 입을 수의마저 직접 골라 챙겨넣은 캐리어 하나만 들고 ‘라이온의 집’에 도착한 시즈꾸, 말로만 듣던 료양원 입소가 아직 낯설기만 한 그녀는 라이온의 집에 실제로 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부드러운 빛으로 싸여있을 것 같은 누에고치 속, 혹은 친구가 출산한 아기를 보러 갔던 조산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머물게 될 방으로 안내해주는 라이온의 집 관리인 ‘마돈나’에게서 알쏭달쏭한 말을 듣는다.
“태여나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니까요. 어느 쪽 문을 여느냐의 차이일뿐이죠. 이쪽에서는 출구여도 저쪽에서 보면 입구입니다.”
라이온의 집에는 식사시간 외에도 한가지 독특한 이벤트가 있다. 라이온의 집에서 여생을 함께 보내게 된 게스트들은 일요일 오후 3시, 특별한 간식시간에 초대된다. 매주 누군가의 마음속 깊이 각인된 추억을 재현한 간식을 만들어 모두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 먹었고 무엇을 느꼈던 간식인지 주문편지에 사연을 써내면 마돈나가 추첨하는 방식으로 그날의 간식이 결정된다.
늘 동생에게만 다정했던 엄마가 딱 한번 나를 위해 만들어준 간식,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빠리 려행에서 처음 맛본 간식, 하루아침에 가난한 이민자 신분으로 전락한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간식, 리혼으로 헤여진 안해가 병문안을 와서 건넨 간식 등 맛도 모양도 다른 간식들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간식 시간마다 손님들의 정체가 하나 둘 밝혀지는 한편 시즈꾸는 다시 먹고 싶은 추억의 간식을 고르기가 힘들고 예상치 못한 리별의 순간도 찾아온다.
일요일 오후 세시의 간식시간은 라이온의 집 게스트들에게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해주는 일정이자 ‘기다리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유일한 이벤트다. 설령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이 예정돼있다 해도 살아있는 한, 다음 간식시간에 참석할 기회는 주어지기에.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가지만 라이온의 집에 머무는 동안 시즈꾸는 어느 때보다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필사적으로 밤하늘을 찾으면 나를 보아주고 있는 별이 분명 있다. 의미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자신의 지나온 삶이, 때로는 지독히도 외로웠던 날이, 말기암에 걸려 라이온의 집까지 오게 된 일이 절대 헛되거나 무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고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것, 어차피 인생은 끝나니 자포자기할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마음껏 인생을 음미하는 것.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크림이 잔뜩 든 소라빵처럼 마지막까지 알차게 사는 것이 지금 내 목표였다.”
사람들이 죽는 순간 가장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가.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은 묻는다.
이 작품의 저자 이또는 어머니의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성인이 된 후로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지낸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였다. 그때 어머니가 남긴 한마디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되였다고 밝힌 이또는 집필 후기에 이런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머니처럼 죽음을 알 수 없는 공포로 느끼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지도 모른다. 읽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 작품은 2021년 NHK방영 드라마 원작소설로, 오가와 이또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와 감각적인 자연묘사,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많은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어디선가 흘러오는 빵 굽는 냄새, 사랑하는 반려견과의 산책길, 한적한 바다가 파도소리처럼 기분 좋은 치유의 마음이 한가득 전해진다.
《라이온의 간식》은 오가와 이또 표 밝은 위로와 함께 가슴속을 파고드는 한줄기 맑은 바람과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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