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흑수의 철혈충혼 조상지

2025-07-02 08:46:08

흑룡강성 할빈시에 위치한 동북렬사기념관에는 총번호가 80292인 미국제 마패 권총 한자루가 진렬되여있다. 항일영웅으로 유명한 조상지 장군이 희생되기 전에 사용했던 권총이다. 기념관을 참관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멈추어 자세히 살펴보면서 녹쓴 권총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영웅의 힘을 느껴본다.

“이 권총은 기념관의 보물로서 조상지 장군의 불굴의 항일전설을 견증하고 있다.” 동북렬사기념관 관장 동국파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지


조상지는 동북항일련합군의 창건자이자 주요 지도자중의 한명이다. 1908년에 조상지는 료녕성 조양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형제자매 11명의 여섯째, 남자형제중 셋째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상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큰 뜻을 가지길 바랐다.

1925년, 17세의 조상지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나라를 구하려는 뜻을 세웠다. 9.18사변 후, 그는 혼신을 다해 항일에 뛰여들었고 후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상무위원, 군위 서기로 임명되였으며 뒤이어 동북항일련군의 창건자와 지도자중의 한명으로 되였다.

항일전장에서 ‘남양북조’라는 말이 있는데 ‘남양’은 양정우를 가리키고 ‘북조’는 바로 조상지다. 그들은 동북항일련군의 영웅적인 대오를 함께 이끌었다.

1933년 10월, 조상지는 주하(珠河)반일유격대를 조직하고 동북 항일의 봉화에 불을 지폈다. 1935년, 그는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군장을 맡았고 이듬해 부대는 동북항일련군 제3군으로 확대 편성되여 6000여명으로 발전했다.

중국 최초의 대 일본군 작전을 치른 력사가 제일 길고 조건이 가장 어려웠던 항일무장으로서 동북항일련군은 상상할 수 없는 혹한과 기아를 막아내고 수십배 강대한 일본군과 완강하게 악전고투했다.

동북의 기후는 매우 춥고 겨울은 5개월여 동안이나 지속된다. 깊은 산골짜기에 처해있다면 전쟁은 고사하고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령하 섭씨 20도의 실외에서는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극한환경 속에서 조상지는 항일련군을 인솔하여 일본군, 괴뢰군과 간고한 전투를 치르며 송눈평원을 누비며 풍찬로숙하고 100여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일본군, 괴뢰군의 ‘토벌’을 좌절시켰다.

‘조상지’라는 이 세글자는 일본 관동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39년 후, 일본군과 괴뢰군은 조상지를 지명수배하기 위해 1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1942년 2월 12일, 34세의 조상지는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으며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조상지가 희생된 후 일본군은 잔인하게 그의 머리를 베고 장춘으로 운송해 공을 축하하고 그의 몸을 송화강 얼음구덩이에 던졌다. 2008년, 조상지 장군의 탄생 100돐 때 60여년 동안 실종되였던 장군의 두개골은 고향의 조상지렬사릉원에 안장되여 충혼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웅의 고향에서 성장하여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조상지의 조카딸 조숙홍 생활의 일부분으로 되였다. “어렸을 때부터 큰아버지의 영웅전설을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상지향으로 돌아가 조상지렬사릉원에서 해설원으로 일했다. 그때의 력사적 사실자료는 한계가 있었다. 해설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나는 사처로 뛰여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큰아버지의 전우들을 방문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나의 설명을 통해 진실한 조상지를 복원하고 싶다.” 큰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조숙홍의 얼굴은 자긍심으로 차넘쳤다.

후에 다른 직장으로 전근하며 조숙홍은 조상지렬사릉원을 떠났지만 그녀의 영웅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틈만 나면 렬사릉원으로 돌아가 기념당 앞의 락엽을 쓸고 참배하러 온 사람들에게 영웅담을 들려준다.

지금, 이미 퇴직한 그녀는 늘 조상지 장군이 남긴 ‘흑수백산·만강홍 조우’를 읊는다. “자유를 추구하고 항전을 맹세한다. 대장부는 말가죽으로 시체를 감는다. 전쟁터를 바라보면 피가 끓어오른다. 동북의 광복과 개선의 그날을 기다린다.”

“영웅이야기는 큰아버지에 대한 가장 좋은 기념이다. 영웅의 웅대한 절개는 영원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조숙홍은 이렇게 말했다.

  신화사 기자 조홍남 양사기 강사니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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