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과의 백병전에서 장렬히 희생된 장령 왕갑본

2025-09-01 08:42:17

운남성 곡정시 부원현에서 왕갑본의 이야기가 가가호호에 알려져있다. 오몽산구에서 나온 이 철혈장령은 일생을 군대를 위해 복무했고 운남 륙군강무당의 열혈청년에서 고위급 장령으로 성장하여 일본침략자를 물리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왕갑본.


왕갑본은 자가 립기이며 1901년 운남 평이(지금의 부원현)에서 태여났다. 1918년, 운남륙군강무당 포병과에 입학했으며 국민혁명군 륙군 려장, 부사장을 력임했다. 그는 선후하여 송호회전, 3차 장사회전, 악서회전, 상덕전역, 형양전역에 참가했고 언제나 병사의 앞장에 서서 돌격하면서 여러차례 전공을 세웠으며 후에 79군 군장으로 승진했다.

1944년, 일본군은 패국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대륙의 교통선을 뚫기 위한 예상계전역을 발동했다. 9월, 일본군은 10여만명의 병력을 세갈래로 나누어 광서를 침공했다. 79군은 명령을 받고 호남 영릉, 동안 일선에서 일본군을 저격했다.

9월 7일, 왕갑본은 직속부대를 인솔하여 호남성 동안현 부근의 한 작은 마을에 주둔했다. 이 소식을 눈치 챈 일본군은 수천명의 병력을 집중하여 왕갑본 부대의 주둔지를 습격했다. 왕갑본은 직접 권총소대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반격했고 탄알이 다 떨어지자 적들과 백병전을 벌렸으며 격전중에서 왕갑본은 일본군의 칼에 복부를 찔려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왕갑본은 중국 항일전쟁 과정에 백병전에서 희생된 최고위급 장령이다.” 동안현 퇴역군인사무국 리지용 부국장은 이렇게 소개했다.

왕갑본이 희생된 후 부하들은 그와 부관 오진과의 시신을 수습하여 동안현 정두우진 파초촌 뒤산에 안장했다. 산 아래에 살던 촌민 류리곡은 묘지기를 자청하고 그 후 30여년간 묘를 보수하며 제사를 지냈다. 류리곡은 림종 전에 아들 류본지에게 반드시 장군의 묘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후에 류본지가 사망하면서 묘를 지키는 중임은 아들 류맹강에게 돌아갔다. 지금도 류맹강은 정기적으로 묘비를 닦고 잡초를 정리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설, 청명절이 되면 대중, 학생, 사회 각계 인사들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 장군의 묘는 전후에 두차례 보수를 했으며 지금은 영주시 시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였다.

왕갑본의 고향인 운남성 곡정시 부원현 부원승경박물관에는 팔선탁자와 차접시 몇개가 진렬되여있는데 이는 왕갑본이 고향에 남긴 몇개 안되는 물건이다. 박물관 관장 번정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부원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왕갑본이 나라를 지킨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우리 박물관은 2021년 개관 이래 년평균 30만명의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장군의 고향사랑은 항전중에도 여전했다. 고향의 학교 운영을 지지하기 위하여 왕갑본은 주머니를 모두 털어 자금을 기부해 청계중학교를 설립했으며 인재를 양성해 중화를 진흥시키려 노력했다. 수십년이 지난 후 청계중학교는 부원현제1중학교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사회를 위해 대량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다. 학생들은 왕갑본 장군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장군이 자금을 기부하여 개교한 사적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왕갑본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원현은 신도시와 구도시를 련결하는 주요 간선도로를 ‘립기대로’로 명명했다. 대로는 너비가 40메터이고 길이가 3.3킬로메터로서 부원인민이 장군을 추모하는 중요한 기념물로 되였다.

  신화사 기자 류왕민 웅헌앙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终审: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