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을 던지고 참군하여 전장에서 장렬히 희생한 백을화

2025-10-19 22:15:10

“먼저 적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학업을 마치겠다. 만약 전장에서 전사한다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료녕성 료양시 굉위구 석장욕촌에 위치한 백을화 생가에서 소학생들이 렬사와 같은 나이의 대추나무 옆에 둘러앉아 해설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해설사는 나라가 위태로웠던 그 시절, 항일영웅 백을화가 웨친 굳센 맹세와 그의 항일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백을화는 자가 야학이고 1911년 6월 11일 료녕성 료양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29년, 구국의 진리를 찾기 위해 그는 과감히 동북 륙군강무당 보병과 학습을 중단하고 북평중국대학에 입학했으며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9.18 사변 후, 그는 “먼저 적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학업을 마치겠다.”는 호언을 남기고 동북 고향으로 돌아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전을 펼쳤다.

백을화의 생가에 들어서면 그가 사용했던 책상, 주전자, 화총이 있는데 마치 사람들에게 보국의 꿈을 품었던 그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1939년, 백을화는 화북인민항일련군 사령원으로 임명되였고 이후 그가 이끄는 부대는 팔로군 기열차 정진군 진찰기군구 보병 제10퇀으로 개편되였으며 백을화는 퇀장을 맡았다. 개편 후 그는 즉시 부대를 이끌고 평서 항일근거지 10로에 대한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돌파하는 전투에 참가하여 여러차례 일본군에 타격을 가했고 동호림 저격전에서 적기 1대를 격추했다.

1940년 4월, ‘평서를 공고히 하고 기동을 고수하며 평북을 개척해라’는 전략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백을화는 10퇀을 이끌고 밀운 조백하 서쪽 지역에 도착하여 100여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 끝에 풍(녕)란(평)밀(운) 적후 항일근거지를 개척했다. 그는 여러 지역의 항일무장을 조직, 건설하고 지방의 당조직 설립을 지원했으며 풍란밀 항일 군민들을 이끌고 각고한 적후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백을화는 지혜와 용맹을 겸비하여 작전을 령활하게 지휘했으며 10퇀이 여러차례 승전을 거두면서 근거지가 빠르게 발전했다. 현지 대중들은 그를 매우 신뢰하고 지지하며 그를 ‘소백룡’이라고 불렀다.

풍란밀 항일련합현은 일본 괴뢰들에게 있어서 등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1941년 2월 4일, 위만도전 토벌대대가 근거지로 쳐들어왔고 밀운현 마영 서산에서 곧바로 10퇀에 의해 격파되였다. 그 과정에서 백을화는 불행히도 적의 총알에 머리를 맞았다.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설적인 항일영웅 ‘소백룡’인 그는 영원히 항일근거지에 쓰러졌다. 그해, 그는 겨우 29세였다. 백을화가 희생된 후, 팔로군 기열찰 정진군은 《전군 동지에게 알리는 편지》를 발표했고 그를 ‘훌륭한 지휘관, 민족영웅, 무산계급의 선봉’으로 찬양했다.

영웅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영웅의 정신은 여전히 전승되고 발전되고 있다. 백을화의 조카 백성량은 줄곧 백을화의 생가를 지키며 큰아버지가 남긴 유물과 그의 전투이야기를 수집해 왔다. 2015년 백을화 생가가 개방된 후 백성량은 더욱 바빠졌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이야기를 들려주군 했다.

2023년, 9.18 사변 폭발 92돐에 백을화의 항일이야기가 대형 스크린에 등장했다. 《암전 1931: 백을화》라는 영화는 백을화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였으며 9.18 사변 이후 일본군이 동북지역을 점령하고 백을화가 당조직의 위임을 받아 고향인 료양으로 돌아와 항일지사와 련락하고 료양 경찰서의 총기를 지혜롭게 빼앗아 항일무장을 조직하고 간첩과 일본 침략자를 용감하게 격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개봉 당시를 회상하며 백성량은 “큰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영웅에 대한 최고의 기념이다. 그의 웅대한 포부는 우리를 영원히 감복하게 한다.” 라고 말했다.

오늘날 백을화의 생가는 사람들이 선렬을 기리고 위대한 항전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장소로 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그의 혁명 생애를 기리며 항일영웅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

  신화사 기자 조홍남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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