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투자로 15개 완구공장을 하나하나 일떠세우고 년간 10억원 매출액을 실현, 올해에는 15억원 매출액 실현이 가능한 기업을 이끌며 완구시장의 ‘거목’으로 성장하고 있는 조선족 기업인이 있다. 그가 바로 광동성 동관시에 있는 복도그룹의 허국재(1980년생) 회장이다.
◆고중졸업장 하나 들고 심수행 렬차에 올라
허국재 회장은 흑룡강성 밀산시의 한 조선족 교원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가 16살 되던 해에 농촌학교의 교원이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그는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결과 목단강시의 3년제 전문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그는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논밭을 팔아서라도 학비를 대줄 테니 대학공부를 하라고 간곡히 말했다.
허국재는 고민 끝에 결국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준 학비를 몸에 지니고 심수행 렬차에 올랐다. 당시 4살 년상인 그의 친형이 심수의 한 일본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허국재는 형을 믿고 무작정 떠났다. 그때가 2000년 4월 21일이였다. 허회장은 심수로 떠날 때의 날자를 지금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심수에 도착하고 보니 상황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한국기업에 입사하려고 리력서를 제출했는데 채용되지 못했다. 락심하지 않고 다시 가방과 완구를 생산하는 일본기업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무난하게 품질검사원으로 입사했다.
회사에서 향항사람이 일본어통역을 담당했는데 그것을 지켜보면서 일본어를 배우면 손님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생기니 자연 동력이 생겼다. 이렇게 허국재는 일본어와 향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퇴근해 숙소에 돌아와서는 3년 동안 3권으로 된 《표준일본어》를 열심히 독학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했다. 일본어 회화 실력을 갖추게 되니 회사에는 그를 향항으로 출장을 보내며 대 일본 수출 업무를 맡게 했다.
◆대담히 완구시장에 뛰여들어
향항과 이웃한 우월한 지리적 우세로 광동의 완구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완구 생산국이자 두번째 소비국으로서 전세계의 75% 완구는 중국에서 생산되며 광동성은 완구생산의 최대의 기지였다. 중국의 규모이상 완구기업은 6000여개에 달하여 ‘세계의 완구공장’으로 불리운다.
회사원 허국재는 근무하던 일본기업에서 퇴사하고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일본기업에서 완구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일본인 사장에게 자기의 뜻을 말하니 뜻밖으로 일본인 사장이 사업파트너를 소개해주면서 한번 잘해보라며 지지해주었다.
2007년, 허국재는 대담하게 완구사업에 뛰여들었다.
“막상 기업을 설립하고 일을 시작해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초창기에는 공장 임대료와 전기세를 낼 돈도 없었지요. 그러나 이를 악물고 견지했습니다. 점차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여기서 일본인들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 고마운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허국재 회장은 기업 초창기 시절을 회억하며 감명 깊게 말했다.
2010년부터 내륙의 기업인들이 향항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심수가 향항을 대체해 일본으로 완구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일본과의 무역왕래가 불시에 많아졌다. 이에 따라 허국재의 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허국재 사장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2021년. 허회장이 일찍 심수에 도착해 처음 출근했던, 그가 독립할 때 큰 도움을 주었던 가방공장의 일본인 사장도 어느덧 60세가 되여 경영인으로서는 로쇠한 나이가 됐다. 그런 데다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의 기업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였다. 허회장은 과거의 은인이였던 일본인 사장을 돕는 셈 치고 두말없이 500만원을 출자하여 일본회사를 인수했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지 말라’는 격언의 참뜻을 일찍 깨우친 허회장은 회사를 인수한 후 일본인 사장을 명예 리사장으로 위촉했다. 그리고는 그의 인맥을 리용하여 일본 무역시장을 크게 확장했다.
◆완구시장의 큰손으로 성장
“이 완구는 갖고 노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지능발달에도 큰 도움이 되는 제품입니다. 2020년 중국의 15세 이하 소년아동은 2억 5000만명에 달했습니다. 와이파이, 인터넷, AI 음성 상호작용 등 지능화 기술의 도입으로 지금 국내 완구업계도 거대한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제품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자주적 혁신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서부터 국내의 완구 브랜드가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허회장이 완구제품을 손에 들고 설명했다.
현재 ‘90후’나 ‘00후’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데 국내에서는 3년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이 류행했다. 하여 회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완구를 생산하고 있다. 보통 7:1 혹은 3:1 비례로 완구를 만들며 전시회에 나가는 완구는 1:1 비례로 원모양 크기로 제작한다. 회사 제품은 수출이 90%를 차지하고 내수가 10%를 차지한다. 수출 가운데서 일본 주문이 95%로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한국과 유럽이 5%를 차지한다.
허국재 회장은 앞날을 멀리 내다보고 상장 기업인 일본무역회사의 주식을 구매했다. 이로써 일본 상장기업의 주주가 됐고 주주 총회에도 참석해 결정권을 행사하며 일본 상장기업에 제품 공급을 하고 있다.
현재 복도그룹의 생산직원은 6000여명으로 증가했으며 국내 완구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순풍에 돛을 달다
허회장의 창업사를 살펴보면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순풍에 돛을 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27세에 창업했고 16년 세월이 흐른 후 회사는 산하에 15개의 회사를 둔 복도그룹으로 탄생했다. 창업한 후 한해에 하나씩 회사가 늘어난 셈이다. 현재 복도그룹에는 광동성 동관시에 8개, 고주시에 4개, 하남성 남양시에 3개의 공장이 있다. 전부 자체 투자로 일떠세운 기업들이다.
“2019년까지 공장이 5개였는데 2020년부터 공장 수가 많이 늘어났어요. 코로나 영향으로 부도난 공장을 인수했지요.”
허국재 회장은 5년 전부터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여년 전 고중졸업장을 몸에 지니고 중-로 국경 지역인 밀산시의 한 시골마을에서 ‘경제천국’ 심수로 가는 렬차에 올랐던 20세의 열혈 청년, 오늘은 규모 있는 완구기업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허국재 회장이 앞으로 더 큰 ‘거목’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해본다. 흑룡강신문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