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 같은 소설 □ 신연희

2023-03-23 08:32:53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막언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 《붉은 수수》는 중편 다섯개를 엮은 련작소설이다.  막언은 1985년 해방군예술대학에서 공부할 때 첫번째 작품 《붉은 수수》를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1986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80년대 문단의 리정표적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막언은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되여 《고량주 》, 《개의 길》, 《수수 장례》, 《기이한 죽음》을 련이어 발표했다. 그리고 다섯편을 묶어 《붉은 수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1988년 이 련작의 첫번째 작품 《붉은 수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 《붉은 수수밭》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졌으며 독자들에게는 영화 제목이 더욱 익숙해졌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산동성 고밀 지방을 배경으로 일제의 만행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세심하고 돋보이는 감수성으로 그려낸 것은 력사적 사건보다는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이다. 막언이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인간’은 ‘원시적인 생명력이 충만한 인간’이며 과학기술의 발달과 제도의 제약이 커지면서 ‘퇴화’되기 이전, ‘야성’이 충만한 ‘순종’의 인간이다. 《붉은 수수》는 그런 순종의 영웅들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삶과 격렬한 사랑, 처절한 투쟁과 찬란한 죽음을 그린 선조들이 보여준 ‘원시적인 생명력’ 과 근원들을 열렬히 흠모하고 동경하면서 그린 력사이다.

《붉은 수수》는 화자인 ‘나’가 ‘이름 없는 무덤’과 단 몇줄의 기록만 남겨진 집안의 력사를 복원하여 ‘세상에 전하는’ 가족사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가족사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복원하는 가족사는 ‘종의 력사’다. 불굴의 저항정신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생명 의지의 자유로운 분출을 억압하는 봉건 례교에 과감하게 저항하던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문둥병에 걸린 양조장집 아들에게 팔리듯 시집가는 꽃 같고 달 같은 아리따운 대봉련, 봉련은 꽃가마를 메던 여점오와 사랑에 빠져 ‘나’의 아버지 두관을 잉태하고 남편과 시아버지가 살해당하자 타고난 지략과 배짱으로 일군들을 거느리며 당당하게 양조장을 꾸려간다. 여점오는 양조장 일군으로 들어오고 봉련의 옆자리를 꿰찬다.

그로부터 십여년 뒤 일제의 착취는 점점 심해지고 양조장의 큰어른인 큰할아버지가 가죽을 벗겨 죽임을 당하는 만행을 당하자 여점오는 매복전을 벌려 일본군에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이어지는 일본군의 보복 학살로 고밀현은 처참한 살육의 땅으로 변한다. 일제에 맞서기 위해 국민당, 공산당, 민병 조직 등이 생겨나지만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서로 무기쟁탈전이나 벌리는 형편이다. ‘나의 할아버지’인 여점오 사령관은 민중들을 진두지휘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

시종일관 이 작품의 중심에 자리해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는 막언이 밝히듯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막언의 고향인 고밀현은 “늘 비가 내려 해마다 여름이나 가을만 되면 홍수가 범람해 키 작은 농작물을 심으면 휩쓸려 몰사했기 때문에 오로지 키가 큰 수수만 심었다.”고 한다. 자연재해 앞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열매를 맺어 결실을 이루는 수수처럼 온갖 험난한 격랑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초들의 민족정신을 ‘붉은 수수’로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됐을 때 인물 성격이나 서사, 묘사 능력 등 이야기군으로서 장점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사와 호평을 받았으나 작품이 표방하는 가치나 륜리, 심미적 성향 등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비륜리적이고 성에 과도하게 탐닉하며 폭력을 미화하고 기이함과 추함을 과도하게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비판들은 도덕주의적 편향을 벗어나지 못한 지적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문명적 도덕의 전체주의와 억압성에 대해 던지는 저항과 질문”이라는 것이다. 앞에 언급된 사항들은 오히려 막언 문학의 진면목을 드러내주는 요소들로 재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 원로 비평가인 류재복은 막언 문학을 ‘생명이 약동’하는 ‘야성의 외침’으로 묘사했다. 막언은 교조와 개념의 포위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세대의 삶의 조건을 가장 철저하게 깨닫고 자신의 작품을 생명으로 넘치게 하여 그 ‘생명의 폭발’로 층층이 쌓여 도저히 전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교조의 견고한 성, 기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맞춰진 서사를 전복했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 역시 같은 맥락에서 막언 소설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부도덕한 면모들은 바로 이 ‘생명의 충일’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을 구속하는 정치적 굴레와 운명의 굴레를 부수기 위해 채택된 수단이며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이 작품에 드러난 사상이나 륜리는 론난이 있었으나 막언의 작가적 자질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제3의 서사 시점을 통해 주관적인 내면 묘사나 객관적인 관찰자적 묘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표현의 령역을 확장한 점이나 욕망과 정의가 혼재되여있는 복잡하고 흐릿한 인간성의 중간지대를 설정하면서 펄펄 살아있는 인물형상을 창조해낸 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세부묘사에서의 탁월성 등은 론난의 여지 없이 찬사를 받았다.

  작품은 전세계 20여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여 막언 뿐만 아니라 중국 문학을 세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