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세계 □ 신연희

2023-06-28 14:46:22

예민한 감성으로 정교하게 수놓은 세계를 담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첫 소설집이다. 소설은 카나다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화려한 찬사를 받았다.

앨리스 먼로는 단편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장편소설 작가들이 평생을 공들여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와 정밀성을 작품마다 성취해 냈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표제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포함하여  <작업실>,  <나비의 나날>,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태워줘서 고마워>, <일요일 오후>, <어떤 바다가 려행> 등 총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여 있다.

하나의 단편 안에 삶 전체를 재현해 온 앨리스 먼로는 ‘우리 시대의 체호브’로 일컬어지군 한다. 평생 단편 창작에 몰두해 온 그녀는 각각의 짧은 이야기 속에 삶의 복잡한 무늬들을 섬세한 관찰력과 탁월한 구성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인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이 말했듯이 먼로는 삶에서 마주치는 직관의 순간들을 풀어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우리들 일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소설집은 요란한 수사와 복잡한 기교 없이 삶 전체를 껴안으며 작가 특유의 감미롭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업실> 은 어느날 불현듯 작업실을 얻겠다고 선언한 한 녀성이 주인공이다. 쾌적하고 널찍하며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놔두고 굳이 작업실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 길만이 자기의 현재 삶을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품 안에서 보호를 받았지만 숱한 시간을 시달렸고 그들과 정을 나눴지만 줄곧 얽매여 살았음을 자각한 녀성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숨 쉬고 사유할 사적인 공간이였다. 아직은 습작을 하는 단계이지만 그녀는 집에서 해방되여 가족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그녀는 타자기와 노란 머그잔 하나를 들고 빈 사무실을 구하지만 건물주는 그녀의 공간을 침해하고 위협하며 그녀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두 소녀 사이의 아릿한 예감을 그려놓은 한편의 동화인 <나비의 나날>,  어느 겨울날 아침 너무 일찍 등교해 버린 헬렌은 앞서 가는 마이라에게 큰맘 먹고 말을 건넨다. 학교에 와서도 항상 오줌싸개 남동생을 돌보는 마이라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이다. 헬렌이 평상시에는 말도 안 해본 마이라에게 과자를 권하며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것은 마이라가 자기를 동경하고 있을 거라는 치기 어린 마음 때문이다. 함께 나눠 먹던 과자 상자 안에서 나비 브로치가 상품으로 나오자 헬렌은 마이라에게 선뜻 선물로 준다. 헬렌이 막상 그 브로치를 자기의 예쁜 원피스에 꽂고 오겠다며 기뻐하자 헬렌은 마이라가 나비 브로치를 꽂지 않기를, 아이들 앞에서 자기가 주었다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헬렌이 자기와 친구가 된 것처럼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후 결석하기 시작한 마이라가 병으로 입원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담임선생의 지시에 따라 반 아이들 몇몇과 함께 문병을 간 헬렌은 깊은 우정을 나누기라도 하는 듯 자기에게만 특별한 미소와 약속을 속삭이는 마이라가 불편하다.

표제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마살레스 선생님이 주최한 파티의 하루를 담았다. 그 파티는 교습반의 학생들과 학부모를 초대하여 학생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정기적인 연주회이다. 아이들의 엄마들도 마살레스 할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을 만큼 파티는 여느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진행된다. 음식, 장식, 선물 등 모든 게 너무나 똑같아서 엄마들이나 아이들에게나 조금은 성가시고 특별할 것 없이 의례적으로 느껴지는 그날 파티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참석한다. 마살레스 선생님의 또 다른 학생들, 그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엄마들은 입을 다물었고 마살레스 선생님만이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의 연주를 감상한다.

앨리스 먼로는 작품 대부분의 무대를 자기의 고향인 온타리오주의 마을을 중심으로 삼아왔다. 이 책 역시 카나다 온타리오 지방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다. 또한 먼로의 단편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 특히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녀자들을 화자로 삼는다.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일정한 삶의 궤도 안에서 잔잔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듯한 시간 속에 문득 슬픔을 느끼거나 사랑을 만나고 때론 절망하다가도 기쁨을 찾아낸다. 그것이 설령 실패와 씁쓸함이 남겨진 결말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눈을 떠보면 본래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왔을지라도 과거보다 희망적인 미래와 오늘의 행복을 스스로 찾아내였기에 위안이 된다.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첨예한 현실의 문제들을 마주하여 복잡한 기교 없이도 실오라기 하나가 풀려나듯 자연스럽게 해결해 나가는 작가의 필력은, 정교한 보석 세공사의 작업을 련상시킨다. 녀성의 섬세한 자의식과 내면의 풍경을 담담하게 수놓듯 보여 주는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어디 한군데라도 모나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투영한 듯,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주는 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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