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번째 교원절을 맞아 주교육국에서 '연변을 감동시킨 가장 아름다운 교원' 13명을 선정해 표창했는데 이 13명 교원들은 시종 당의 교육방침을 관철하고 인민이 만족하는 교육을 위한 책임과 사명을 오롯이 실천하면서 '덕지체미로'가 전면 발전한 사회주의 건설자와 후계자를 육성하는 데 정열을 불태우고있다. 본지는 그중 4명 교원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특집을 만들어 '교원을 존경,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짙게 하는 데 일조하고저 한다. -편집자
향촌 아이들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되여

돈화시 액목진중학교의 강학의 교원은 대학 졸업 후 고향에 돌아와 20여년간 향촌교육 일선에서 꾸준히 분투하면서 향촌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자기의 청춘을 바쳤다.
지난 8일 강학의 교원과 련락이 닿아 그의 향촌교육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향촌에서 나서 자란 사람으로서 향촌 아이들의 간절함을 너무 잘알고 있고 또 향촌에서 고생을 경험해본 저로서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 특히는 생활형편이 어렵지만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더 힘을 내 그들을 잘 이끌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군 합니다.”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해주고저 강학의 교원은 항상 교재를 깊이 연구하고 수업이 끝나면 수업내용을 일일이 총화하면서 자기의 부족점을 찾아내 보완한다. 수업 효과를 더한층 향상시키고저 여러가지 면에서 혁신을 거듭하면서 학생들의 실제 상황에 맞는 흥미로운 교수방법을 찾으려 힘썼다. 그의 꾸준한 노력하에 수학시간을 따분하게만 생각했던 학생들이 점차 수학에 흥취를 가지기 시작했고 학습성적도 눈에 띄는 진보를 가져왔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련속으로 3학년의 수학교수를 맡았을 때 학생들의 수학성적은 계속하여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09년, 당시 향촌 중학교에서 평균 10명 좌우의 학생이 중점고중에 붙는 상황이였는데 액목진중학교에서는 25명의 학생을 중점고중에 보내 학교의 기록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학업을 포기하려는 학생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설득, 지도했다. 2019년, 웃학년에 다니던 한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치면서 그의 학급으로 재편입되였는데 이 학생은 사고의 타격으로 학업까지 소홀히 하면서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렀다. 강학의 교원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학생과 교류하면서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 학생이 좌절을 겪을 때마다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여주었다. 결과 이 학생은 학업에 다시 열중해 돈화시의 중점고중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액목진중학교에서 강학의 교원은 훌륭한 교원인 동시에 ‘만능’으로 불리우는 후근 보장 사업일군이기도 하다. 2012년, 학교 사업상의 수요로 강학의 교원은 학교의 총무 사업을 책임지게 되였는데 그때부터 시작해 학급관리, 학과교수, 총무관리 등 업무를 병행한 지도 어언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량의 업무로 인해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무슨 일 하나 소홀히 대한 적이 없는 그다.
그는 항상 전기수리, 환경정돈, 기초시설보완 같은 후근보장사업에 직접 참여하거나 일일이 감독, 검사하면서 모든 일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보장하고 학생들의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기의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면서 후근보장 임무를 완수하군 했다. 2018년 겨울, 가뭄과 강추위가 겹쳐지면서 액목진은 여러 구역의 수도관이 얼어붙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 학교도 례외가 아니였다. 강학의 교원은 학생들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덜 미치게 하고저 직접 지하에 내려가 작업일군들과 함께 얼음을 캐냈다. 춥고 습한 지하 도관에서 12시간 동안 작업을 이어온 탓에 몸이 피로한 것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혼미해졌지만 ‘드디여 물이 왔다’고 기뻐하는 사생들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먼저였다는 그이다.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헌신이라면 영원히 달갑고 후회가 없다.” 강학의 교원은 오늘도 향촌 학교의 발전을 위해, 향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있는 힘껏 등불을 밝히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전해연 기자
“학생들이 꿈을 향해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연길시제12중학교 부교장 은염령은 교육사업에 몸을 담은 지난 28년간 세심한 관찰과 엄격한 지도, 아낌없는 헌신과 따뜻한 관심으로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었다.
“중학생들은 학습과 생활에서 정서 파동이 많은 편입니다. 하여 그들의 정서 변화에 주의를 돌리고 그들이 부딪친 어려움을 제때에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지난 11일에 만난 은염령 교원은 학생과의 교류 중요성에 대해 재삼 강조하면서 자기의 경험들을 터놓았다.

은염령 교원이 가르쳤던 학급의 학생들은 ‘주간 기록노트’를 쓰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 노트에 그들의 일상과 고민, 어려움을 글로 적어두는데 그는 거기에서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읽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 의견을 제때에 평어로 적어주군 했다. 때로는 교원으로서의 가르침이, 때로는 친구 같은 따끔한 충고가, 때로는 학생들에 대한 격려와 위로의 말이 적혀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이를 통해 신심을 얻고 고민을 해결했으며 ‘주간 기록노트’는 그가 맡은 학급의 효과적인 교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되였다.
세심한 관찰로 학생들에 대한 료해를 깊이 했다면 끈질긴 실천은 그녀의 문제해결 방법이다. 구급차 요청번호 ‘120’은 그가 맡은 학급 학생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의 이름 한자 발음이 ‘120’과 비슷한 리유도 있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그가 학생들의 문제점을 제때에 발견하고 옳바른 길로 잘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전에 담임했던 학급에 최모 학생이 있었는데 학년에서도 소문난 문제아였다. 사회청년들과 휩쓸리면서 싸움, 련애 문제로 말썽을 피우는가 하면 걸핏하면 가출을 하고 학교 수업도 빼먹기가 일쑤였다. 주변 사람들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지만 은염령 교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최모가 있을 만한 PC방들을 전부 찾아다니는가 하면 심지어 그와 어울리는 사회청년들의 ‘아지트’까지 찾아가 최모를 학교에 데려오군 했다. 처음에는 귀찮게만 여기던 최모 학생도 그녀의 끈질긴 타이름 끝에 다시금 학교에 돌아왔고 나중에는 좋은 성적으로 고중에도 입학했다. 최모 학생은 마지막으로 ‘주간 기록노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 대한 존중과 믿음, 격려와 충고 덕분에 신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은염령 교원은 문제아 뿐만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관심을 많이 쏟았다.학급의 한 학생이 부모를 잃고 여든이 넘은 할머니와 함께 힘든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인츰 이 학생이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모든 생활비용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학기초마다 새 학용품들을 장만해주고 환절기마다 새 옷을 사입혔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자기 집에 데려와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고 공부를 지도해주면서 부모의 빈자리를 메꿔주려 애썼다. 졸업을 앞두고 그 학생은 “선생님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선생님이 베푼 따뜻한 사랑으로 생활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밝은 미래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지금도 은염령 교원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교육은 학생들의 꿈을 밝게 비춰주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자기의 꿈을 향해 돛을 달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옳바르게 인도해주고 부지런히 밀어주는 것이 교원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28년간 그래왔듯이 은염령 교원은 지금도 따뜻한 관심과 아낌없는 사랑으로 학생들의 미래에 더 큰 신심을 불어넣고 있다.
전해연 기자
힘이 닿는 데까지 기층 교육사업을 이어갈 터
도문시장안중학교 수학교원 왕계지는 교육사업에 대한 두터운 감정과 열정, 기꺼이 봉사하는 정신으로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의 청춘을 기층 교육사업에 이바지해왔다.

지난 10일에 있은 인터뷰에서 왕계지 교원은 기층 교육사업에서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도 농촌 출신이기에 이 아이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저는 이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고 배움을 이어가도록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는 가정형편이 특히 어렵거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더 관심하면서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주었다. 몇해 전, 그의 학급에는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는 학생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학생의 어머니가 질병으로 앓아누워 거액의 치료비가 가정형편을 더욱 궁지에로 몰아넣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계지 교원은 힘이 닿는 데까지 이 학생을 지원해주고 또 사회 각계에 도움을 청하는 등 지원활동에 앞장섰다. 후에 주 및 시 적십자협회의 장기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서 그 학생의 가정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건강상 문제로 학습에 뒤쳐진 학생을 개별수업을 해주면서 끝까지 책임지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자기 돈으로 학습용품 및 일상용품을 마련해주는 등 그는 교단에서 많은 감동이야기를 써냈다.
지금은 학급담임이 아니고 수학교수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고 교육사업에 림하고 있다. 학습토대가 박약하고 과외학습 여건도 마땅치 않다 보니 향촌학교 수학교수는 품이 많이 들지만 왕계지 교원은 온갖 노력을 들여 늘 ‘기적’을 창조하군 한다. 2012년 고중입시 수학성적이 ‘향진조 1등’, 2015년 7월 전 시 수학통일시험 ‘전 시 우수률 1등’, ‘전 시 평균점수 3등’을, 2020년 학기말시험 수학성적 평균 79.9점으로 ‘전 시 1등’을, 2021년 학기말시험 수학성적 평균 84.5점으로 ‘전 시 2등’을 따냈다.
35년간 쉼없이 교육사업을 이어온 로교원이지만 그의 열정과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아이들에게 보다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교재를 깊이 파고들고 새로운 교수방법 연구에 몰두하며 동료 교원이나 기타 학교의 선진적인 교육방법을 적극 학습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기의 노하우나 경험은 젊은 교원들과 남김없이 공유하고 그들과의 소통, 교류를 통해 재빠른 성장을 도모하기도 한다.
시 우수교원, 우수 담임교원, 우수교원 기준병, 우수공산당원, 로력모범, 주우수교원, 성사덕기준병 등 무게 있는 상들을 수차 수상하면서 그는 당과 인민이 인정하는 우수한 향진교원으로 35년을 빛냈다.
정년퇴직이 눈앞이지만 아직도 교단에 서는 것이 가장 설레이고 보람찬 일이라는 왕계지 교원은 힘이 닿는 데까지 향진 교육사업에 여열을 아낌없이 쏟을 것을 다짐했다.
김선 기자
인민이 만족하는 새시대 교원으로 거듭날 터
교원이 되는 것은 제가 오매불망 꿈꿔왔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꿈을 마음껏 펼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처음 교단에 서서 다짐했던 그때가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지난 10일 연변1중 3학년 실험 2학급 담임 박룡길 교원은 이같이 말문을 열면서 자기의 30년 교원생애를 들려주었다.

1994년 북경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훈춘시제2고급중학교에 와서 화학교원으로 교원생애를 시작한 그는 새내기 교원이였던 때부터 드높은 책임감과 남다른 교수능력으로 교내에서 인정을 받았고 인차 담임교원과 우수학급의 담임까지 맡게 되였다.
그 후 연변1중으로 전근된 그는 새로운 일터에서도 열심히 사업했고 2003년부터 근 20년간 학급담임사업을 맡아 총 6기의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2018년의 대학입시에서 그의 학급은 청화대학, 북경대학, 상해교통대학, 동제대학 등 중점대학생이 수두룩이 나오는 기꺼운 성적을 거두었다.
“고중생이라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저는 심리건강을 각별히 중시합니다.” 박룡길 교원은 심리건강을 거듭 강조했다.
몇해 전 그가 맡은 학급에는 때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는 물론 여러 교원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학생’이 있었다. 반항심이 갈수록 강해지고 무단결석, 지각을 밥 먹듯이 했으며 지어 학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볼 생각까지 했다. 담임으로서 박룡길 교원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기에 노력했고 상당기간 일대일 소통, 심리상담을 진행하면서 그 학생의 마음을 열었다. 결국 그 학생은 마음을 돌리고 그 다음 학기부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매사에 적극적이였고 학습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여 나중에는 중점대학에 입학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저의 인생관은 줄곧 18살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제가 성장할 수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그 학생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한 말이다.
박룡길 교원은 교수임무 뿐만 아니라 여러면에서 성과를 냈다. 그는 2009년부터 6년간 학교 화학교연실 주임과 주교육학회 화학전문위원회 리사를 맡아했다. 그는 학기마다 성심성의껏 교연실활동을 조직하고 교연실의 교원들을 이끌고 학교에서 포치한 제반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으며 새 과정개혁 교수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어 화학조는 우수교연실로 평의되기도 했다.
박룡길 교원은 선후하여 성교수신예, 성골간교원, 주 골간교원, 학과선줄군, 명교원 칭호를 수여받았고 중국교육학회 화학교수전문위원회로부터 새 과정 실천 선진개인 등 여러가지 묵직한 영예들을 받아안았다.
“앞으로도 당의 교육방침을 깊이있게 관철하고 자기의 교육교수 수준을 부단히 제고해 인민이 만족하는 새시대 교육자로 거듭나겠습니다.” 그의 포부는 여전히 당찼다.
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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