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리별은… □ 김은희

2023-12-14 08:40:20

《기나긴 리별》은 미국 추리소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변화무쌍하다.

터프한 개인탐정 필립 말로는 고급 클럽 앞에서 억만장자의 딸과 결혼한 독특한 매력의 남자 테리 레녹스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레녹스를 말로가 집에 데려다준 인연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된다. 넘쳐나는 부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어딘지 어두운 일면이 엿보이던 레녹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레녹스는 총을 들고 다급하게 말로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는 간밤 자기의 안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말하며 말로에게 한가지 도움을 요청하는데… 필립 말로는 친구의 도피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말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긴 리별 속으로 말려든다.


이 작품에서 필립 말로는 레녹스라는 인물로 인해 휘말리지 않아도 될 온갖 사건들에 휘말려들게 된다. 그러면서 말로가 발을 들이게 되는 곳은 상류층들만이 거주하는 경치 좋은 동네로부터 법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 음습하고 적라라한 폭력의 현장까지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당시 사회의 리면에 도사린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기도 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직폭력배들에게까지 온갖 협박과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말로는 적당히 물러나기보다 특유의 랭소적인 유머로 고난을 받아넘기며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나간다.

이 소설 주인공인 필립 말로는 1인칭 시점에서 문장의 속도감이나 특별한 상황에 따라 그가 독자들에게 만담을 하듯 처해진 상황과 감정의 변화를 설명해주며 심리적인 동질감을 이끌어낸다. 그는 성장과 리해의 로정을 거쳐 본질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복잡한 인생 로정과 갈등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또 인물은 단순한 탐정의 의미와 함께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이 보인다.

레녹스와의 첫 만남은 그저 술 취한 그를 말로가 련민의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런 우연성이 나중에는 인간애적인 우정으로 보인다. 무뚝뚝하지만 말 한마디에는 진심이 느껴지고 허물없는 마음으로 레녹스를 친구로 대해주는 모습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말로는 보통 신분으로 레녹스 같은 그런 수수께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 끌리고 우연한 만남에서 나아가 하나의 살인사건에 말려들며 심지어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고 거듭 시도한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퍼즐처럼 척척 맞물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많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등장인물은 저마다 이야기를 갖고 있다. 소설 속의 많은 장면들은 화면감으로 충만되여 마치 한편의 깊이 있는 추리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위트하고 시적인 문구도 적지 않다.

“테리 곁에는 어떤 녀자가 앉아있었다. 진붉은 머리가 꽤나 매력적이고 입술에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는데 어깨에 두른 파란색 밍크 목도리가 너무 화려해서 자칫하면 롤스로이스조차 평범한 자동차로 착각할 지경이다. 물론 진담은 아니다. 롤스로이스를 두고 착각할 리가 있나.”

“스스로 만든 함정보다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그따위 주먹으로는 선잠 자는 할머니도 깨우지 못할 터였다.”

“법은 정의가 아니오. 몹시 불완전한 체계란 말이오.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고 행운도 좀 따라줘야 정의가 실현될가 말가요.”

“술 한잔에 마음이 넉넉해져 인류애가 샘솟으면…”

“그레고리어스가 말을 멈추더니 갓 구운 감자도 꽁꽁 얼어버릴 만큼 차디찬 눈으로 그린을 노려보았다.”

“리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는 것…”

“날개가 너덜너덜한 벌 한마리가 나무 창턱을 따라 기여가며 지치고 가냘픈 소리로 붕붕거렸다. 그래도 소용없음을, 이제 끝장이 났음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너무 많은 의무를 수행해서 다시는 벌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미 안다는 듯이.”

책을 읽다 보면 여기저기 유머러스하면서도 적절한 비유들이 이어져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간결한 문체, 랭혹하고 비정한 현실묘사, 생생한 거리의 언어로 이루어진 거친 대사들과 시니컬한 유머 등을 특징으로 하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직접 사건현장에 뛰여들어 육탄전을 벌리기도 하며 순발력 있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말로의 활약은 이후 탄생한 수많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들의 모범이자 전설이 되였다.

저자가 병든 안해를 마지막까지 곁에서 돌보면서 쓴 이 작품에는 늘 슬픔과 리별의 기운이 서려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수수께끼이자 독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진상도 사실 나중에 말로에 의해 드러난다. 깜짝 놀랄 수도 있다. 결말을 이야기하기까지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 가운데 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촘촘하게 짜여진 스토리를 떠받드는 하나하나의 문장들은 읽을수록 맛갈난다.

챈들러는 “내가 쓴 최고의 책은 《기나긴 리별》이다.”라고 말한다. 한번 읽은 소설은 두번다시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무려 12번이나 읽었다고 호언할 만큼 최애하는 소설로 평가했다.

에어컨이 몸을 식혀준다면 머리를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추리소설이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싶을 때 읽을 책은 많다. 허나 한껏 취하고 싶을 때는 《기나긴 리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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