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한가지 색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린시절의 기쁨 또는 슬픔? 혹은 학창시절의 우정, 성장 또는 진보? 아니면 어른이 된 후 사업과 생활에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일들? 만약 두가지, 세가지, 네가지로… 아니 좀 더 다양한 색갈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할가?
12가지 서로 다른 색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흥미진진한 12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등장했다. 바로 일본 작가 아오야마 미치코이다.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이 작품은 그의 데뷔작이다.
작은 위로가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한편의 소설에서 그 위로를 찾는다면 이 작품을 건네고 싶다. 뭔가 구질구질하고 질척한 느낌이 드는 삶, 언제쯤 내 인생에도 화창한 날이 찾아올가 막연하게 심드렁해지는 우리들 삶에 돌연 화창한 날씨를 선물하는 것이 이 소설이다.
강변의 벚나무 가로수가 막 끝나는 지점에, 큰 나무 뒤에 숨듯이 있는 자그마한 가게. 인적도 드물고 홍보하는 일도 없고 잡지사에서 취재하러 오는 일도 없다. 아는 사람만 아는 카페로 영업하고 있는 곳, 탁자 세개와 다섯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카운터 자리, 멋없는 원목 테이블과 의자, 천정에 매달린 람프, 바로 ‘마블 카페’이다.
이 카페에서 한잔의 코코아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에는 도꾜와 시드니를 배경으로 총 12편의 련작 단편이 실려있다.
첫번째 이야기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에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코코아씨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따뜻한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번째 이야기 <참담한 닭알말이>에서는 가정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 우울해하지만 곧 자신감을 되찾는 워킹맘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세번째 <자라나는 우리>에서는 관계의 따뜻함을 회복하는 유치원 교원 이야기가, 네번째 <성자의 직진>에서는 오래된 친구간의 우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다섯번째 <만남>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재능을 발견해가는 신혼부부 이야기가, 여섯번째 <반세기 로맨스>에서는 결혼 50돐을 맞은 부부의 풋풋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일곱번째 <카운트다운>에서는 ‘초록’으로부터 구원받는 아름다운 령혼의 이야기, 여덟번째 <랄프씨의 가장 좋은 하루>에서는 오렌지색을 상징하는 멋진 남성의 사랑이, 아홉번째 <돌아온 마녀>에서는 오랜지색 랄프씨의 련인인 ‘터쿼이즈 블루’ 같은 녀성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그려진다. 열번째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에서는 시드니에서 번역가로 사는 녀성의 충만한 삶의 리유가, 열한번째 <삼색기의 약속>에서는 ‘이 시대를 확실하게 살고저 하는’ 의지의 삶이 그려진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러브레터>에서는 ‘첫눈’이 아닌 ‘첫소리’에 반한 코코아씨의 반전 러브 스토리가 펼쳐진다.
실직한 청년, 워킹맘, 유치원 교원, 오래된 친구, 신혼부부, 번역가 등 도꾜와 시드니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의 12편의 이야기가 열두가지 색갈로 펼쳐진다. 한곳의 장소를 넘어 시드니, 유치원, 샌드위치 가게 등 각자의 사연이 담긴 장소들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소설은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련결되고 이어지면서 소소하게 찬란한 삶을 서로가 응원한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모든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그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지혜가 문장 곳곳에 은밀하게 잠복해있어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해진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구원한다.”
코코아를 마시는 곳은 벚나무 가로수길 끝에 있는 아담하고 정갈한 ‘마블 카페’라는 곳이다. 마블 카페의 주인인 마스터는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내여 빛을 보게 하는 모든 이의 마스터, 첫번째 화자인 마블 카페의 점원이자 점장인 와타루도 마스터가 첫눈에 알아본 인재이다. 와타루를 필두로 해 화자는 계속 바뀐다.
작가는 말한다.
“달콤쌉싸름한 코코아처럼 우리들 삶도, 사랑도 같은 맛이 아닐가!”
살짝 쓴맛이 돌지라도 삶은 결국은 달콤한 맛이다. 그것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
‘인생은 정말 매 순간 눈부신 것이구나!’
열두 빛갈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독자들은 분명 비가 그친 뒤의 물방울 같은 청아한 느낌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삶’이라는 선물을 참 절묘하게 전달하고 있다.
누군가 려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던가? 원을 그리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려행을 하는 것만 같은 작품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을 읽고 돌아와서는 다시 펼쳐보고 싶을 것이다.
짧은 분량, 재미있는 구성과 훈훈한 스토리의 삼단조합인 이 사랑스러운 아오야마의 소설이 휴대폰에 홀려서 잊고 있던 독서를 찾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나무로 만든 코코아컵으로 카페를 표현한, 웬지 책에서 커피향도 날 것 같은 그런 기발한 책표지 설계도 마음에 쏙 든다. 이 작품은 ‘일본서점대상’에서 2021년부터 2년 련속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말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목요일, 이 목요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갈등이나 위기, 그런 건 전혀 느낄 수 없는 소설이지만 소소한 반전에 반전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온전히 책 속에 몰입하게 된다. 가끔 빡빡하고 지친 현실을 피해 잠간 힐링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목요일에는 코코아 한잔 하면서 달콤하고 따뜻한,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 이 책이 딱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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