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첸족은 중국 동북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수민족으로 주요하게 내몽골자치구와 흑룡강성 북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자체 언어와 문자가 없다. 2021년의 통계에 의하면 인구는 9168명이다.
‘오로첸’은 ‘산 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다. ‘오로첸’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문헌에서 찾아보면 ‘어얼툰’, ‘어러춘’, ‘어루춘’ 등으로 기재되여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대다수 오로첸족의 뜻에 따라 ‘오로첸’으로 이름을 통일했다.
일찍 오로첸족 청년들은 동북항일민주련군에 참가해 일제와 용감히 싸웠다. 1945년 8월에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해방을 맞이했고 1951년 10월 1일 내몽골자치구 오로첸자치기(自治旗)가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나라에서는 오로첸족 경제와 문화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세감면, 농업과 림업 발전 권장정책을 펼쳤고 해마다 전문 자금지원을 했으며 식량보조를 해주고 사냥에 필요한 렵총을 지원했다. 또 의료비용을 나라에서 전액 정산해주고 중, 소학교들에서 조학금제도를 실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오로첸족은 정착생활을 해야만 생산을 한층 발전시키고 생활의 질을 제고할 수 있음을 알게 되였다.
정착생활 초기에 오로첸족은 여전히 수렵을 위주로 했다. 그 후 정부는 이들이 단일 수렵경제에서 다양한 경제로 전향하도록 지원했는데 점차 림업과 목축업, 농업, 부업, 양식업 등 다양한 산업들을 육성했다. 더불어 오로첸족의 생활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의식수준도 점차 시대와 함께 발전했다.
1996년 1월 23일 오로첸자치기에서는 ‘수렵금지대회’를 열고 <야생동물 수렵포획을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 실시했다. 이때부터 오로첸족은 대대손손으로 이어오던 수렵생활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었다.
오로첸족의 례의는 로인 존중을 중심으로 한다. 주요한 례절로는 무릎을 굽혀 안부인사를 하는 방법과 절을 하는 두가지가 있다. 웃어른을 만나면 꼭 문안인사를 전하며 동년배끼리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외출 혹은 사냥중에 웃어른을 만나면 먼발치에서 말에서 내려 보행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며 웃어른이 멀리 간 후에야 다시 말에 올라 길을 재촉한다.
오로첸족은 손님을 열정적으로 맞이하고 진솔하게 대하며 반드시 맛난 음식으로 손님을 초대한다. 남자손님은 주인집 며느리와 딸의 침대에 앉아서는 안되고 녀자손님은 주인집 남자들의 침대에 앉아서도 안된다.
오로첸족의 전통적인 혼인은 부모들이 주관한다. 통상 남자측이 중매인을 보내 구혼을 하는데 세번 구혼하는 것이 풍습이다. 여기서 세번째 구혼이 특히 중요하다. 구혼이 성사되면 사돈보기와 례물전달 날자를 정한다. 사돈보기를 하기까지 남자는 녀자집에 머물며 그 시간은 20일에서 한달 정도이다. 녀자측은 미래의 신랑에게 새 옷을 내주며 예비신부는 머리를 두갈래로 땋아 올리는데 이는 약혼을 했다는 징표이다.
오로첸족의 매장방식은 풍장과 토장, 화장이 주를 이루며 수장을 했다가 다시 토장을 하는 2차 매장법도 있다.
출가한 딸이 친정에 돌아올 경우 솥을 가시면 친정집의 재물운이 다 달아난다고도 여긴다.
이들은 말과 개가 사냥군의 좋은 친구라 여겨 개고기와 말고기를 먹지 않는다.
웃어른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으며 웃어른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서도 안되며 이를 어기게 되면 태여난 자식이 뼈마디가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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