렬사들의 피로 물들었던 대황구,홍색정신 여전하여라

2025-06-30 09:19:37

"렬사들의 피로 물들었던 대황구 일대는 당사전람관 및 현당위 탄생지, 13렬사릉원, 황구쏘베트정부유적지 등 10여곳의 혁명유적지, 기념광장 및 기념비가 련결된 종합 교양장으로 재탄생했다."

훈춘당사전람관(옛 관).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훈춘시 밀강향 대황구촌, 이곳은 중공훈춘현위 탄생지이자 동만 지역에서 가장 먼저 유격대가 조직되고 항일유격근거지가 건립된 지역중 하나이다. 당이 훈춘지역에서 홍색정권을 수립하고 발전시켜온 중요한 지역으로 풍부한 홍색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이 땅에 ‘훈춘당사전람관’이 세워진 건 당연지사였다. 72세의 퇴역군인 류국신이 40여년째 이곳을 지키며 방문객들에게 혁명렬사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훈춘당사전람관(신관).

“1933년 음력 8월, 추석이 지난 어느 새벽,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군이 이곳을 습격했습니다. 소대장 오빈은 총에 맞아 창자가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한손으로는 흘러나오는 창자를 움켜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총을 쏘면서 30여메터를 더 전진하며 전우들을 엄호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적들 손에 무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노리쇠는 빼서 멀리 던진 뒤 총은 가슴 아래 단단히 깔고 전사했습니다.”

훈춘당사전람관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류국신.

대황구당사교양기지에서 해설원 류국신은 생생한 제스처로 13렬사가 장렬히 희생한 력사를 재현했다.

1930년 10월, 중공훈춘현위가 대황구 청수동에서 설립되며 대황구는 훈춘 항일투쟁의 중심지로 되였다. 농민협회, 부녀회 등 반일단체가 결성되였고 1932년 1월에는 훈춘 최초의 항일무장대오인 ‘별동대’가 건립되였다. 같은 해 9월, 중공훈춘현위는 각지의 무장대오를 훈춘현 령남, 령북 유격대로 편성하였고 1933년초에 이들은 통합되여 훈춘항일유격총대를 이루었다. 유격대원들은 음력 8월에 흑룡강성 동녕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대황구로 귀환했으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13렬사의 비극이 펼쳐졌다.

1933년 음력 8월 18일, 반역자 배원일(당시 훈춘현당위 비서)의 밀고로 일본군 토벌대와 괴뢰군 자위단 60여명이 30명의 유격대원이 쉬고 있던 빈집으로 은밀히 접근했다.

“적이다!” 보초병 김재근의 웨침과 함께 시작된 전투에서 중대장 박진흥은 문을 박차고 나가 총알을 막아냈고 소대장 오빈은 적의 공격에 창자가 흘러나온 채로 전우들을 엄호하다 숨졌다. 이날 13명의 유격대원이 장렬히 희생되였다. 그들은 박진흥(당원), 오빈(당원)을 포함한 김룡학(당원), 박영신(당원), 량태성(당원), 김시천(당원), 주병갑(당원), 리흥국(당원), 배송림(당원), 고진준(단원), 김장협(단원), 김길룡(단원)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17세의 무명전사 랑모모(단원)이다. 13명의 전사는 이들이 희생된 곳에서 서쪽으로 30메터 좌우 떨어진 산기슭에 묻혔다. 1960년 훈춘현인민정부에서 이곳에 13렬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면서 13렬사릉원이 조성되였다.

중공훈춘현위 옛터에 복원된 사무실 초가집 모습.

1935년 3월, 동만특위의 결정에 따라 중공훈춘현위는 철수되였고 왕청현 금창에 중공훈춘특별지부가 설립되였다. 항전시기의 중공훈춘현위는 불과 4년 5개월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혁명의 핵심 지도력으로서 여러 민족 군민들이 단합하여 항일투쟁에 뛰여들도록 이끌었고 일본침략자들에게 여러차례 큰 타격을 가하며 항전승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렬사들이 목숨을 바친 걸 생각하면 편히 쉴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였다면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을가요?”

1977년 전역 후 고향으로 돌아온 류국신은 1979년 대황구촌당지부 서기로 취임한 이래 매일 삼륜차에 비자루와 낫, 삽을 싣고 13렬사릉원을 찾았다. “처음엔 무덤 13기가 초라하게 놓여있더군요.” 류국신은 1979년 당시를 떠올렸다.

13렬사릉원의 ‘의무수호원’에서 ‘의무해설원’까지 자청한 그는 력사서적을 깊이 연구하며 13렬사의 이야기를 전파했다. 학생들이 찾아오면 ‘랑모모’ 소년의 이야기를, 군인들에게는 오빈 소대장의 마지막 순간을… 각 계층에 맞춘 생동감 있는 해설로 정평이 나있다.

“매년 청명절이면 수많은 추모자가 찾아옵니다. 후손이 없는 13렬사지만 이 땅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13렬사릉원.

2004년 ‘훈춘당사전람관’ 건립을 시작으로 이곳은 대황구당사교양기지로 탈바꿈했다. 2015년 도로 포장공사가 완료되고 홍성교가 개통되였으며 현당위 기관 사무실로 사용했던 청수동의 초가집도 복원되였다.

훈춘당사전람관은 2017년에 개관한 신관으로 그때 당시 이미 10여년간 운영되여온 훈춘당사전람관 옛 관 맞은편에 건설되였다. 건축면적이 3768평방메터, 전시면적이 2400평방메터에 달하는 전람관은 당창건 초기, 항일전쟁시기 등 6개 부분으로 나뉘며 100여점의 문물, 1000여장의 사진과 6만여자의 문자설명으로 훈춘 당조직의 탄생, 발전 그리고 대중들을 이끌고 전쟁, 혁명, 건설, 개혁한 빛나는 로정을 전시하고 있다.

훈춘현당위 초대 서기를 기념하기 위한 류건장기념광장.

2020년에는 훈춘 초대 현당위 서기인 류건장 기념광장이 추가로 조성되였다. 대황구 일대는 이제 당사전람관 및 현당위 탄생지, 13렬사릉원, 황구쏘베트정부유적지 등 10여곳의 혁명유적지, 기념광장 및 기념비가 련결된 종합교양장으로 거듭났다. 국가급 청소년애국주의교양기지로 지정된 이곳에는 지금까지 60여만명이 찾아왔다.

대황구항일유격근거지 비석.

대황구당사교양기지의 수호원이자 해설원인 류국신은 “단 한명의 관람객이라도 마음을 다해 이곳의 홍색정신을 전해드린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유적지를 지키고 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한 이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후손들이 이곳에 묻힌 력사를 알 수 있게 말입니다.” 2024년, 그의 굳은 신념은 길림성 우수 퇴역군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로 이어졌다.

중공훈춘현위 탄생지 비석.

훈춘 대황구의 항일 력사와 인물은 중화민족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며 류국신 해설원의 이야기는 신념의 가치를 깨우쳐준다. 오늘날 평화로운 숲으로 우거진 대황구에는 여전히 그의 삼륜차 바퀴소리가 울려퍼진다. 홍색력사를 지키는 한 사람의 발자취가 항전 승리 80돐을 맞아 더욱 빛나고 있다.

글·사진 김은주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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