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가 날개짓하며 큰뜻을 펼치고 강변 도시에서 세상의 비바람 소리를 듣고 싶어 하네.” 장강기슭에 위치한 안휘성 무호시제2중학교 교정에서 기자는 이런 교가를 들었다. 이 노래는 ‘강변 도시’에서 나온 항일전쟁 명장 대안란을 기리며 부른 노래였다.

대안란은 스스로를 ‘갈매기’라고 부르며 무호 무위 출신으로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벌전쟁에 참가했다. 항일전쟁기간에 그는 대아장전역, 무한회전, 곤륜관전역에서 여러차례 전공을 세웠다.
1942년초, 중국 원정군은 미얀마로 진군했다. 대안란은 제200사를 거느리고 중국 원정군의 선두부대로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였으며 몇배나 많은 일본군과 동고에서 혈전을 벌렸다. 그는 앞장에 서서 “한명의 병사가 남아있어도 끝까지 사수할 것이며 만약 내가 전사하면 부사장이 내 자리를 대신하고 부사장이 전사하면 참모장이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라고 직접 유서를 썼으며 전 사의 각급 지휘관들도 차례로 유서를 작성하며 동고와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맹세했다.
12일 동안 진행된 동고보위전에서 제200사는 800명의 희생을 치르며 일본군의 20여차례에 걸친 돌격을 격퇴하고 적군 4000여명을 섬멸했으며 400여명을 생포하는 등 일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이를 통해 국가의 위엄과 위상을 떨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가 적의 기습을 받아 대안란은 중상을 입었고 조국으로부터 불과 100여킬로메터 떨어진 모방촌에서 38세의 ‘갈매기’는 힘겹게 조국을 바라보다가 “반격하라! 반격하라! 조국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대안란 장군의 추도식은 광서 전주에서 거행되였으며 모주석이 친필로 추도사를 써주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대안란의 령구는 무호로 이장되였다. 무호시제2중학교 당위 서기 모홍은 “대안란 장군과 함께 ‘돌아온’ 것은 우리 학교의 전신인 안란공업직업학교이다. 학교는 ‘안란중학교’라는 이름도 있다.”고 말했다.
무위시 홍항진 련계사회구역회 풍화촌에 들어서면 푸른 벽돌과 검은 기와의 민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대안란 장군의 옛집으로 현재 그의 생애사적, 사진과 일부 훈장 등이 전시되여있다.
홍항진의 간부 대무표는 장군의 후손으로 기자에게 “1904년 이곳에서 태여난 대안란은 그 후 끊임없이 학습하고 성장하며 고향과 나라를 지키는 길을 걸었다. 대안란은 원래 몸이 여위고 허약하여 군관학교 입학에서 떨어졌으나 그 후 혹독한 단련을 통해 마침내 황포군관학교의 3기 학생이 되였다. 대안란으로 개명하고 스스로 ‘갈매기’라는 호를 지었다. 이는 이름으로 뜻을 밝히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힘을 쓰며 어려움과 도전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옛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잎이 무성한 오래된 단풍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전하는 데 따르면 대안란이 이 나무 아래로 지나 혁명의 길로 나아갔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방문객들의 추모장소로 되였다.
촌민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안란은 교과서 속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고향사람들에게 친근한 인물이였다. 그는 경극을 부르기 좋아하고 녀성역할을 특히 잘했다. 그는 교육을 중시하여 친척이 고향에 인천소학교를 설립할 때 앞장서서 돈을 기부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복동’, ‘정동’, ‘징동’, ‘번리’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동방의 평화와 가정과 조국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신식 결혼을 제창했으며 부인과 금슬이 좋았지만 집에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지금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모든 희생을 치르고 국가의 양육에 보답하겠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도 인천소학교는 여전히 책소리가 랑랑하고 오래된 단풍나무가 학교휘장에 새겨졌으며 학생들의 가슴에는 갈매기들이 수놓아져있고 안란의 이름은 도서관에 걸려있다. 한 학생이 “갈매기는 장군이자 바로 우리들이다.”라고 말했다.
무호시의 풍경이 아름다운 자산에는 대안란의 유골이 안장되여있고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종종 생화를 바치며 영렬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강변 도시’의 곳곳에서 갈매기와 안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안란이라는 이름의 도로에는 차들이 끊이지 않았고 안란이라는 이름의 다리는 장강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무호시제2중학교 조각벽에는 갈매기가 새겨져있고 학교 력사관 지붕에도 갈매기가 걸려있다. 모홍은 “학교는 대안란의 사적을 보여주는 학교력사관을 건설하고 대안란의 정신을 교훈에 융합시켰으며 학생들은 각종 동아리를 세우고 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각색하여 청춘의 방식으로 영렬들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다.”말했다.
무호시제2중학교 2학년 학생 조목림은 “우리는 갈매기 장군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며 큰뜻을 품는 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무호 시민들의 눈에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날아올랐던 그 ‘갈매기’가 이미 수많은 형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 도로, 학교, 물새… 이것들이 바로 영웅의 가장 영원한 생명이다.
신화사 기자 진낙 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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