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는 밤과 낮의 경계에 있는 시간이다. 정상적이라면 잠들어있는 시간대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축구경기 때문에 모처럼 3시에 알람을 맞췄다. 래일 할 일이 태산이지만 그건 래일의 내가 알아서 해줄 거라 믿는다. 침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안해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늦으면 항상 걱정하던 안해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어쩌다 한번 축구경기를 보겠다고 설쳐대는 내 모습이 안스러운가 보다.
안해를 침대에 고이 모셔놓은 뒤, 쏘파에 가로누워 작은 담요를 대충 걸쳤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동영상과 커뮤니티에 들락거리다 보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디선가 기침소리가 들렸다. 기침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내 기침소리이다. 목이 얼얼했다. 나는 어수선한 머리를 들어 주위를 확인한다. 어둠밖에 없다. 아니다. 저 앞에 뭔가 있다. 쏘파 앞에 있는 컴퓨터 걸상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보인다. 나는 심장이 덜컥했다. 확인해야 한다는 호기심과 그대로 멈추라는 두려움, 그리고 다 귀찮다는 게으름까지 하나씩 갈마들었다. 나는 다시한번 눈에 힘을 줬다. 카텐 사이로 흘러드는 미세한 불빛에 그 머리로 보이는 형체가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은 패딩이였다. 모자가 우로 솟구쳐있어서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였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해대면서 의자로 걸어갔다. 패딩을 쥐여박듯이 거칠게 한번 웅그려놓은 뒤 다시 쏘파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3시가 다 되여가고 있었다. 경기 시작까지 아직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건조한 탓인지, 자면서 기침을 너무 한 탓인지 목이 말랐다. 불을 켜지 않고 슬렁슬렁 정수기로 다가가 물을 받으려고 버튼을 꾹 눌렀다. 이런 젠장. 생수통이 비여있다. 제때에 생수통을 채워놓지 않는다면 아침에 또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생수통을 살며시 꺼내들고 현관으로 향한다.
도어락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난다. 박명 전이라 작은 소리도 굉장히 소란스럽다. 정말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 같다. 나만 빼고. 이른봄의 공기는 모든 색상이 빠진 듯 창백하다. 으시시한 기분이다. 그래서 새벽 3시를 악마의 시간, 데드 아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머리 우에서 고장 난 센서등이 가물거린다. 거기에 따라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사라진다. 나는 속으로 이젠 어른이니까, 다 큰 남자니까, 아빠트 복도 따위에 겁먹을 것 없다고 되뇌지만, 비상계단에서 뭔가가 확 덮쳐올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난다. 오래전부터 밤중에 현관문을 열면 저 앞쪽에서 시커멓게 생긴 뭔가가 네 발로 기여올 것만 같았다. 또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일상이 너무 지루했나 보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잽싸게 빈 생수통을 내려놓고 새 생수통을 들었다. 생각보다 무겁다. 흐읍! 팔근육이 빳빳하게 경직된다. 나는 새 생수통을 무사히 정수기에 넣어두고 물을 따랐다. 조르륵, 조르륵. 잔에 차오르는 물줄기가 거실의 고요를 롱락한다. 나는 서둘러 버튼에서 손을 뗐다. 잘못이라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불을 켜지 않은 채, 잔을 들고 쏘파에 앉는다. 금방의 상상이 다시 달려든다. 어릴적, 아직 세상에 호기심이 남아있던 시절엔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책에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쏘파 밑에서 누가 발을 잡는다던가 하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다리를 움츠려 쏘파 우로 올리고 두 팔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악마와 죽음의 시간. 새벽 3시. 강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칠흑으로 빚은 밤에, 시골 오두막 앞 퇴마루에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실없는 괴담으로 서로를 놀래키던 밤이 생각난다.
그때부터 한동안 나는 겁쟁이가 되였다. 몸을 낮추면 구식 가구의 가느다란 밑공간에는 흰 눈자위가 나를 주시하고 열어놓은 옷장 속에는 비쩍 마른 남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불을 끄면 쏘파 아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외다리 녀자의 본거지였다. 그런 악몽들중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어떤 로파였다.
그 로파는 ‘행운의 편지’(“이 편지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여…”로 서두를 떼는 편지인데 대략 27명에게 같은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9년의 불행이, 보내면 3년의 행운이 찾아온다는 바이럴 장난이다)에 나오는 로파처럼 영국 출신이였다. 얼굴 생김은 애들을 솥에 끓이는 마녀 로파를 닮았다.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는 망또를 쓰고 다닌다. 왜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냐면 그 로파를 본 모든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어느 병원에서 시작된다.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지만 제임스라는 남자가 또 다른 환우와 함께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였다. 아마 새벽 3시쯤이였을 것이다. 불쾌한 어둠 속에서 제임스는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땅에 옷감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어온 것이다. 제임스는 머리카락이 바늘처럼 쭈뼛해졌다. 서늘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실눈으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어떤 로파가 옆 침대로 다가가고 있었다.
로파는 옆 침대 환자의 이불을 스윽 걷어냈다. 환자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도 없다. 망또 사이로 로파의 손이 뱀처럼 흘러나왔다. 거칠고 마른 나무가지 같은 손이다. 그 손은 환자의 머리부터 아래로 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님처럼 더듬더듬. 하지만 멈추지 않는 손길. 이윽고 발끝까지 훑어 내려가고 로파는 멈췄다. 손은 다시 망또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로파는 몸을 돌려 천천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때 제임스는 몸이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웬지 모를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아침이 되자 옆 침대 환자는 죽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 병원에서 죽는 환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소문이 있다. 로파가 죽이고 다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제임스는 빠르게 친구를 불러 병원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련락을 두절한 채 아무도 모르는 교외 저택, 철문이 달린 깊숙한 지하실에 머물렀다. 하지만 병을 앓고 있던 그는 빠르게 몸이 축났다. 밤이면 항상 걸쭉한 기침과 함께 철문 쪽을 바라봤을 불쌍한 제임스. 그는 자신의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제임스는 자신의 유언을 친구한테 남겼다. 자신의 전부 재산으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어느 탐정이라도 좋으니 그 로파의 비밀을 푸는 사람한테는 재산 전부를 주겠다는 것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는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로파의 얼굴을 봤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 때문에 한동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써도 누군가 확 제쳐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분 나쁘게 어루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른들한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두려움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따위 헛소리는 믿지 말라고 할 것이다. 어른들은 그렇다.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은 대단치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뜬눈으로 아득한 밤을 지새도 어른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런 공포들은 술을 알게 되면서 점점 사라졌다. 술을 마시면 간이 붓는다. 배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여갔다.
시계를 보니 이제 3시 28분이다. 나는 씩 웃고 컴퓨터 부팅버튼을 꾹 눌렀다. 분명한 것들만 좇는 어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긴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오늘 밤 다시 잠이 들 때는 온갖 괴물들에 쫓기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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