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뚫어 건설된 한갈래 수로가 60여년간 가없이 펼쳐진 논에 감로수를 대고 한수의 노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변강 아들딸들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60년 전, <붉은 해 변강 비추네>가 전국 각지에 울려퍼졌다. 이 노래는 화룡시 원봉수로 건설의 장거를 구가했으며 60년의 세월을 뛰여넘어 오늘날까지 변강 아들딸들의 분진의 동력으로 되고 있다.
쾌청한 여름날, 두만강반에 벼물결이 일렁인다. 노래소리와 수로가 만들어낸 궤적을 따라 화룡시 숭선진 대동촌을 찾아 올해 88세인 원봉수로 원로 건설자 동숙서와 그의 안해인 곽윤타를 만났다. 동숙서는 당시 수로 건설장 현장에서 곡괭이를 휘두르고 돌을 날랐고 곽윤타는 수로 건설에 뛰여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두 로인은 논두렁에 앉아 수로가 논으로 흘러드는 장면을 지켜본다. 세월이 지나도 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그때처럼 뜨겁다.
“이 물은 그 시절 우리가 어깨로 ‘메여 나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요.” 동숙서의 첫마디는 순식간에 열정이 불타던 그 시대로 시공간을 되돌리며 60년을 훌쩍 뛰여넘은 이야기의 뜨거운 서사를 펼쳤다.
◆300여명 건설자의 노력으로 황량한 산언덕을 곡창으로
시간은 지난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숭선진은 두만강을 끼고 있어 수원이 풍부했지만 가파른 산세 때문에 물사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계도 제약을 받게 되였다. 강물의 수위는 산속의 옥토보다 낮았고 드넓은 비탈밭은 해마다 관개수가 부족했다. 큰 강을 끼고도 논에 댈 물이 부족해 날씨에 기대 농사를 지어야 한 것은 지난 세기 중엽 현지 주민들이 실제로 직면한 어려움이였다.
상황을 개변시키려면 수리시설을 건설해 강물을 산너머 경작지에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렬악했다. 깊은 산속에 제대로 된 길이 없어 대형 기계설비를 들일 수 없었고 건설 자재 운반은 오로지 소수레와 인력에 의지해야 했다. 단단한 암석을 깨는 작업에 쓸 수 있는 도구는 곡괭이와 멜대 뿐이였으며 물자공급도 부족해 잡곡이 당시로서는 가장 훌륭한 식량이였다.
여건이 갖춰지면 하고 여건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해낸다! 1956년, 원봉수로 수리공사가 본격적으로 착공되였다.
동숙서는 원봉수로 건설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다. 로인은 끝없이 펼쳐진 논의 두렁에 앉아 발아래의 비옥한 흑토를 어루만지며 지난 세월을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그때는 소수레조차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지 못했소. 기계도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세멘트며 모래, 자갈, 돌을 전부 사람이 어깨에 메고 날랐지. 멜대가 어깨를 짓눌러 살가죽이 벗겨지고 또 벗겨졌지만 모두 이를 악물고 누구 하나 멈추려 하지 않았소.”
당시 곽윤타는 집에서 수로건설에 뛰여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필사적인 사투는 후대들이 쌀밥을 먹게 하려는 것”이라는 선대들의 소박한 념원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굳건한 힘으로 되였다. 300여명의 여러 민족 건설자들은 깊은 산속에서 낮에는 산을 뚫고 돌을 부수고 밤에 잠간 휴식하면서 극히 렬악한 여건에서 도전을 이어갔다.
허리에 바줄을 동인 채 공중에서 작업하고 돌을 깨고 폭약을 터뜨리고 자재를 나르고 제방을 세우는 작업은 걸음마다 위험하고 단계마다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2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1958년 원봉수로가 완공되여 물고가 트기 시작했다. 거세차게 흐르는 두만강물이 60메터 높이의 산언덕을 넘어 450헥타르의 토지를 적셨다. 이때부터 높은 산언덕은 비옥한 들로, 황무지는 곡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산천을 뒤바꾼 이 장거 속에는 가장 감동적인 민족단결의 바탕색이 깃들어있다. 건설 현장에서 주식은 대부분 수수밥과 옥수수가루로 만든 떡이였는데 식감이 거칠어 넘기기 쉽지 않았다. 이에 조선족 주민들은 집에서 담근 김치를 현장에 날라 상큼한 맛으로 고된 로동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명절 때면 한족 건설자들은 여기저기서 식재료를 구해 물만두를 빚어 나눠 먹으면서 음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깝게 이었다.
“김치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두 한입씩 나눠 게눈 감추듯 먹었지.”
“뜨끈한 물만두도 너나없이 모여 맛있게 먹었소.” 동숙서의 이야기 속 소소한 일상은 그 시대 가장 따뜻하고 심금을 울리는 단결의 화폭을 그려냈다. 산과 들이 이를 견증한다. 연변의 열토에서 여러 민족 대중은 손에 손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맨몸으로 ‘불가능’ 을 세간의 기적으로 바꾸었다.
이는 수리건설의 쾌거일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 아들딸들이 한마음으로 꿈을 이룬 생동한 실천이기도 했다.
◆수로에서 비롯된 선률에서 한결같은 초심 듣는다
산천의 격변을 이룬 분투의 서사시는 마침내 시간을 뛰여넘어 흐르는 시대의 선률로 되였다.
1966년, 원봉수로가 개통된 지 8년이 되던 해 당시 화룡현문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작곡가 김봉호는 <풍수가>를 창작주제로 삼고 화룡현에서 농민들과 함께 식사하고 생활하며 산을 뚫어 곡창을 일군 자신의 경험에 결부해 단숨에 곡을 지었다. 1968년 작사가 한윤호가 중국어로 가사를 새로 붙이면서 산을 뚫고 물을 끌어올리고 강을 막아 제방을 쌓은 건설 장면을 가사에 넣었고 <붉은 해 변강 비추네>는 이로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험산을 파헤쳐 보물을 캐고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네…” 격앙되고 랑랑한 선률과 소박하면서도 힘있는 가사는 원봉수로 건설의 웅장한 장면을 생동하게 재현하면서 열정이 불타는 그 세월 변강 아들딸들이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개척, 실천한 분투의 발자취를 선명하게 조명했다.
60년간 이 노래는 해란강반에서 전국 각지로 향하며 연변을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문화부호로 되였으며 더우기 여러 민족 대중이 감은분진하고 영원히 당을 따라 나아가는 정신적 찬가로 되였다.
2015년 7월 16일, 습근평 총서기는 연변을 시찰할 때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을 찾았다. 촌민들이 <붉은 해 변강 비추네>의 익숙한 선률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모습을 본 총서기는 수십년 전 자신이 촌당지부 서기로 있을 때 마을의 방송에서 매일 이 노래를 틀었기에 매우 귀에 익다면서 오늘 해란강반에 섰는데 노래에서 언급된 고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애정 어린 말은 경전의 선률에 새로운 시대적 빛을 더해주었다. 한수의 노래, 한갈래 수로, 하나의 열토, 한줄기 초심이 서로 어우러져 힘을 실어주면서 연변의 독특한 홍색 기억, 문화 저력과 정신적 힘으로 축적되였다.
◆활수는 끊임없이 흐르고 한마음으로 미래 향해
물은 쉼없이 흐르고 정신은 꾸준히 이어진다.
원봉수로는 ‘생명 수로’를 넘어 ‘풍작 수로’로 자리잡았으며 이제는 새시대의 ‘행복 수로’, ‘진흥 수로’로 거듭났다. 수로는 짙은 벼향기를 풍기는 벼물결을 일궈냈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전승되는 분투정신과 민족단합의 색채도 함께 가꾸어왔다.
“지금 아이들이야 언제 이런 고생을 겪었겠소,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내는 정신은 어느 시대든 잃어서는 안되오.” 년세 지긋한 동숙서와 곽윤타는 수로건설 이야기를 후대들에게 들려줄 때가 가장 즐겁다. 현재 량주의 외손자는 영광스럽게 군에 입대했고 외손녀도 대학을 졸업한 뒤 일터에서 착실하게 사업하면서 변강 건설자의 열성과 담당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전승은 한 가정에 그치지 않았으며 력사 속에 머물지 않고 숭선진의 구석구석을 적시고 화룡시 발전, 연변 진흥의 면면에 스며들고 있다.
새시대에 들어선 후 숭선진은 중화민족공동체의식 확고히 수립이라는 주선을 긴밀히 둘러싸고 ‘한마음’ 정신을 일상사업에 융합시켰다. ‘동어흥변’ 등 사업을 심화하고 ‘한마음으로 변방에 융합’ 주제활동을 전개했으며 여러 민족 녀성들을 조직해 밀가루음식을 만들며 특색농산물 장터를 마련하는 등 방식으로 민족단결의 꽃을 활짝 피웠다.
“당시 수로건설에 매진한 것이 배불리 먹기 위해서였다면 오늘날 민족단결을 깊이있게 추진하고 특색산업을 발전시키며 향촌진흥을 추동하는 것은 여러 민족 대중들의 셈평이 갈수록 펴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한방향으로 힘을 쓰는 한마음의 바탕색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숭선진당위 선전위원 리방화의 말은 변강 발전의 초심과 불변의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원봉수로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관개 기능을 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경 향촌진흥 전략의 추진과 함께 더욱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되였다.
G331 변경개방 관광대통로가 변경을 따라 굽이굽이 뻗어나가며 깊은 산의 페쇄를 타파하고 사면팔방의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고 있다. 군함산 아래에는 아름다운 논밭풍경이 펼쳐지고 향촌캠핑장과 특색장터가 자리잡으면서 명절과 휴일이면 숭선장터는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로 북적인다.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입쌀, 꿀, 조선족고추장 등 현지 특색농산물이 전자상거래생방송을 통해 심산 속에서 더 넓은 시장으로 향하면서 현지 특색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연변 대지를 바라보면 선대들의 분투정신이 새시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고속철도가 뭇산 사이를 누비고 도시의 야간경제가 활기를 띠며 화룡양수에너지저장발전소, 연길시인삼국가현대농업산업단지 등 중점대상 건설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세가지 공동 네가지 함께’ 상감식 사회구역 건설이 착실하게 추진되여 여러 민족 대중들의 왕래, 교류, 융화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원봉수로는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이 형제자매처럼 서로 아끼며 단결, 분진한 두터운 정을 견증하고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는 든든한 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석양이 질 무렵, 원봉수로 사이펀 부근에서 멀리 바라보니 금빛 노을이 산언덕을 온통 물들이고 수로는 끊임없이 논을 적시며 또 한철의 풍작을 잉태하고 있었다.
장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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