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밥, 걸인의 찬□ 조홍매

2023-03-03 09:09:17

“엄마, 왜 내 먹을 게 없어?”

막 밥상에 마주앉으려던 딸애가 식탁을 빛의 속도로 스캔하더니 내뱉은 한마디에 신경이 도사려진다.

“저녁엔 머 먹을가?”

밥술을 놓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저녁타령을 해대는 남편의 한마디에 움츠렸던 버럭이 목구멍을 튀여나가기 일보직전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딸애가 온라인수업을 시작해서부터 방학까지 내 하루중 많은 시간은 주방에 할애하였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딸애가 반찬투정을 해와도 남편의 음식평에도 나는 고슴도치마냥 예리하게 날을 세웠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삼시세끼는 늘 끝나지 않은 숙제 같다. 늘 다음끼는? 래일 아침은? 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날 ‘밥 한끼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던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오래도록 내 머리속을 배회했다.

어떤 음식이든지 함께 나누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이야기도 달라지는 법이다. 우리는 잘 안다. 어떠한 식탁에서도 우리가 먹는 것은 그릇에 소복이 담긴 음식 이상의 감정나눔임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철가마 김치볶음밥에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고 그 시절 소중한 추억이 떠오르군 한다. 친구와 먹는 한끼는 밥이 아닌 우정이 듯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가족과의 단란한 밥상문화를 바쁜 일상으로 많이 ‘포기’한 상태이다.

언젠가 배우자들의 상호간 소통을 알려주는 책으로 유명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읽으면서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였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었다. 특히 남편은 내가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면 사랑 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끼니에 집착하고 먹는 것에 올인하는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리해할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느끼는 순간 감사함도 함께 느낀다. 평소 출근이 바쁜 나를 대신해 남편은 집안일을 많이 거드는편이다. 아이의 등하교를 전부 책임지고 채소를 사들이고 퇴근시간이 늦은 날이면 저녁밥을 차려주거나 청소기를 돌려주는 등등.

불현듯 알뜰하게 랭동실에 조목조목 썰어놓은 돼지고기를 보면서 행복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랭장실에 한가득한 채소를 보면서 나는 부모님들을 떠올렸다. 량가 부모님들이 다 시골에 계신 터라 우리는 제철따라 싱싱한 채소들을 날라다 먹는다. 늘 더 얹어주지 못해서 안달하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느라 아껴두시는 부모님을 마주할 때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볼멘 소리로, 퉁명스런 태도로 환불하듯 돈봉투로 돌려드리지만 내 안에는 늘 사랑으로, 감사함으로 한가득이였음을 뒤늦게 고백해본다.

문득 고중 조선어문 교과서에 실렸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 속 어느 가난한 신혼부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쌀이 없어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안해를 위해 실직한 남편이 마련한 초라한 점심 밥상에는 하얀 쌀밥 한그릇과 간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쪽지를 보고 안해는 남편의 그 사랑에 왕후가 된 것보다 더 가슴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있었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다.

주말이라 오랜만에 딸애가 좋아하는 게란말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세 식구가 단란하게 식탁에 마주앉아 점심밥을 먹으면서 내가 그랬다.

  “자기야, 예전에 어떤 가난한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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