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춘이 지나고 제법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날씨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여서 그런지 긴 구정련휴로 라태해졌던 몸과 마음을 춰세워야 하고, 또 곧바로 새로운 한해 이루어 갈 계획과 목표를 세워야 하기에 더없이 초조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2022년 한해 동안은 코로나사태로 중국 내지 각 시험장마다 토픽시험이 취소가 되여 큰애는 시험을 보지 못했다. 12월에 봉쇄가 해제된 이후에 한국에서 시험을 보기로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PCR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 어쩔 수 없이 또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였다. 올해 9월에 대학에 보내자면 일정은 빡빡한데 격리 때문에 그 모든 걸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 오자 부글부글 괴여오르는 화를 도저히 삭힐 수가 없었다.
해당 기관이나 대학에 문의를 해봐도 개인 상황으로 인해 시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4월에 가서 다시 시험을 보라는 랭정한 답이 돌아올 뿐이였다. 토픽시험을 4월에 보게 되면 올해 9월 대학에 입학할 수가 없고 이듬해 3월이 돼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인데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아이엘츠시험 성적이 6점으로 나와서 토픽시험 성적 없이도 각 대학에 지원서를 넣을 수 있게 되였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6점은 너무 낮으니 시험을 더 보게 해달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하는 수 없이 2월 중순쯤 해변도시에서 가까운 시험장에 가서 두번째로 아이엘츠시험을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개인 일을 다 접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몇시간의 기차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했건만 이번에는 또 회화시험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수험일정을 샅샅이 살펴보고서야 귀퉁이에 작게 씌여진 회화시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필기시험을 보기로 한 이틀 전이였다. 회화시험을 치지 않았으니 필기시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냥 털썩 주저앉고만 싶었다.
코로나로 뒤숭숭해진 상황에서 바삐 돌아치던 우리 부부가 하던 일을 다 접고 오로지 큰애 승학문제로 오래동안 준비를 해왔는데 그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다리 맥이 확 풀렸다. 시험을 다 보고 난 뒤 알차게 계획했던 가족려행도, 가족 친구들과의 만남도, 일정 안에 포함되여있던 모임도 다 귀찮아지는 순간이였다.
헌데 놀라운 것은 아들애의 반응이였다. 생각 밖으로 아들애는 시험이 미루어진 그 몇달 사이 토픽시험도 아이엘츠시험도 더 충분히 준비해서 훨씬 좋은 성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서를 넣을 수 있지 않냐면서 배포유하게 현재 상황을 즐기는 것이였다.
“어차피 일찍 가나 더디 가나 가야 할 길은 똑같이 그 길인데 왜 자꾸 재촉하냐고요.”
아들애의 애원 비슷한 투정에도 저도 몰래 자꾸만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해졌다.
아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실내막을 알고 있던 친구가 반갑게 련락을 해와서 만나서 토크타임을 가지게 되였다. 그녀는 내가 무척이나 기분이 다운되여보였던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내내 위로를 해주는 것이였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목적 없이 주어진 일을 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너무 급하게 다그칠 필요는 없어. 힘들지 않니?”
세웠던 계획이 생각과 달리 어긋나서 고민하고 있던 차라 친구와 나눴던 그 말들은 마음이 복잡해서 방황하고 있던 내게 큰 힘이 되여주었다. 또 다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은 간단하게 세가지 내용으로 나뉘는데 그게 바로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것이라고 개괄해내기까지 했다. 그러게, 들어보면 쉽게 쉽게 살아갈 수 있는데 내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을 한 건 아니였을가… 그 순간, 소탈한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앉아 내 뇌리에 리모델링을 떠올리는 걸 보면 나는 참 지독히도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편인가 보다.
리모델링이란 기존의 낡고 불편한 건축물을 증축, 개축, 대수선 등을 통하여 건축물의 기능 향상 및 수명 연장으로 부동산의 경제효과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주로 실내 디자인으로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꾸미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
39살을 마무리하던 그해에야 나는 인생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꿈을 꾸었다. 왜 일찍부터 깐지게 내 인생을 리모델링하지 못했을가를 후회하면서 무언가는 바꾸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홀로 운전하여 산 가운데를 가로질러가는 도로를 톺아오르면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낡은 집’과 내 나름 대로의 그럴듯한 고별의식까지 치렀다. 속도에만 신경 쓰지 않고 초조해지지 않으리라, 다그치지 않으리라, 온유하며 절제하며 의심치 아니하며 욕심을 버리고 사랑하겠노라고…
허나 그 모든 결심이 그 뒤에 현실과 부딪치면서 수도 없이 긁히고 상처가 생기고 볼썽사납게 뒹굴거릴 때에야 인생의 리모델링은 내 의지로는 안될 때가 있다는 것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제한성에 대하여 심심히 느끼게 되였다. 특히 다그치는 그런 특성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더욱더 유표하게 드러났는데 분명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가며 절로 꼼꼼히 리모델링을 하게끔 가만히 지켜보고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으면서도 아이들의 진로문제에만 맞닥뜨리면 도루묵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이 대로 반학기 늦더라도 원하는 대학에 갈 테니 내버려두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나는 나 대로 토픽시험과 아이엘츠시험을 다 놓쳤으니 이제 한달 후 돌아오는 아이엘츠시험이라도 한방에 합격하여 9월에 지망하던 대학중 어느 대학이든 입학하는 걸로 결정을 짓자고 독촉을 하다 보니 애매한 건 그 사이에 끼여있는 남편의 립장이였다.
또다시 다가온 노곤한 점심이다. 집에 돌아 온 뒤 그 길로 출근을 한 지 이틀이란 시간이 지났다. 뒤숭숭한 기분은 도저히 가셔질 념을 하지 않고 두통이 스멀스멀 기여올랐다. 11층 작업실에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식사를 한 뒤 오피스텔로 속속히 돌아오는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차량이 촘촘히 드나들던 거리가 확 비여있는 걸 보니 이맘때쯤이면 직장인들은 점심을 먹고 커피타임을 가지고 있을 테고 가정주부들은 피곤이 서려있는 얼굴로 쏘파에서 조용히 낮잠을 청할 수도 있겠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부지런히 자기만의 ‘집’을 부지런히 짓고 있는중이다. 또한 친구가 말 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왠지 시원치 않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느라 지하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차를 빼내여 시동을 걸고 또다시 작업실과 몇킬로메터 떨어진 산중턱을 향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쭉쭉 뻗은 도로를 10킬로메터 정도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굽어들 수 있는 비좁은 길이 생길 테고 거기서부터는 차량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 키워놓고 즐기면서 달릴 수 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몇초간 기다리는 사이, 오른쪽에 갓 짓기 시작한 새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다 지어진 건물 외곽에 페인트공들이 허공에 매달려 부지런히 꼼꼼하게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중이였다. 신호등의 왼쪽에는 낡은 건물 한채에 한창 건물을 허물어버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건물은 아는 지인이 매입을 한 것인데 1층의 기존 주거공간을 카페로 꾸미기 위해 벽을 허물고 보강작업을 한 뒤 주택에서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바꾼다고 했다. 건물에 대해 대수선과 용도 변경을 한 것이다. 2층은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공간이 좁아 면적을 넓힌 것이라고 한다.
그 과정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무언가를 버리고 허물고 보강작업을 한 뒤 리모델링을 할 순간이 다가오는가 보다. 마치 낡은 건물과 갓 지은 건물처럼 내 자신이나 아들이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시기가 다를 뿐이지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다그쳐서도 조급해서도 안되는 그런 적절한 순간… 리모델링을 시작하기 위해서라면 그 전에 것을 버리거나 없애고 허무는 작업이 필시 필요한 법이다. 그 뿐만 아니라 튼튼한 건물을 구축을 하자면 기존의 것을 깐깐하게 훑어보고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속도보다는 질에 집중을 하며 천천히 작업을 펼쳐나가는 것이 더욱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 전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의지와 생각들을 세멘트처럼 땅땅 굳혀 쉽게 버리지 못하고 허물지도 못했을뿐더러 고집을 꺾지 못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다른 사람의 립장은 리해하려 하지 않은 채 비좁은 시야로 세상만물을 바라보았고, 쉬이 판단을 하는 어떤 사람을 바라보면서 꼰대라고 쉽게 내뱉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과연 인생에서 버려야 할 부풀어오르는 욕망과 쓰잘데기 없는 편견들을 고스란히 안고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속도에만 연연했고 버리고저 하지 않았기에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환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두자. 8월이면 성인이야. 어떤 길을 택하고 인생을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할 나이니까.”
드라이브를 하는 사이, 위챗으로 날아온 남편의 음성메세지였다. 컴퓨터에 저장되여있는 계획서를 봤는데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어떤 식으로 자아소개서를 쓰고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서 지원서를 넣을 건지 상세하게 메모되여있더라는 것이였다. 그 순간, 어차피 똑같은 종점을 향하여 다다르고 있는데 왜 굳이 가야 할 길을 급히 재촉하냐고 내게 볼멘소리를 하던 아들의 모습이 남편의 모습과 겹치면서 순간 꽉 막혔던 속이 약간은 후련해진 느낌이다.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어차피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즐기면서 새로운 방법을 물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리모델링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더 완전해지는 모습으로 거듭나자면 매 순간 각성을 하고 뒤돌아보고 고치고 허물고 버리고 다시 재건축을 하는 그런 과정이 분명 필요한 법이다.
닥치는 대로 살자 주의를 찬성하지는 않지만 너무 급하게 목표만 향하여 가기보다, 또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투정을 부리고 불만하기보다는 새로운 한해부터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좀 더 느긋하게 바라보며 그 어떤 일들이 닥쳐오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낡아서 도움이 되지 않거나 또 필요 없는 편견과 고민의 벽을 허물고 생각의 쓰레기를 버린 뒤 다시 인생을 재부팅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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