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례찬□ 리련화

2023-04-28 08:55:57

나의 위챗친구중에는 책장수들이 꽤 된다. 책을 사기 위해 책을 파는 사람들을 꽤 많이 추가했다. 중고책을 파는 사람들도 많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나 해서 심심하면 뒤적여보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은 좀처럼 물건이 나지지 않는다.

거의 90%가 령혼치유를 위한 ‘닭고기수프’와 같은 자기계발서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기 싫어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독서취향도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편식쟁이다.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중 함금량이 높은 책은 극히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생각보다 높다. 베스트셀러 랭킹에는 늘 자기계발서가 버젓이 서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이란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묶어진다. 그로 인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천편일률적으로 ‘죽지 않으면 살 소리’를 하는 훈계식, 권유식의 ‘닭고기수프’를 나는 거절한다.

반면 나는 소설책을 편애한다.

생각이 없이 그냥 스토리만을 따라가면 또 어때서, 영국 작가 아서헬프스는 “독서는 생각하지 않기 위한 기발한 수단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책을 읽는 그 순간 만큼은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 머리속에 소설을 씨나리오로 한 영화를 찍고 있다. 제작비가 필요없는 영화, 내가 감독이 된 이 영화는 나의 생각에 따라 주인공의 생김생김이며 삶의 정경이 결정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서 이딸리아 피렌체도 려행하기도 하고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의 으슥한 골목에서 비를 맞으면서 형사들과 함께 추격전을 벌리기도 하며 일본의 어떤 타락한 녀자의 혐오스러운 일생을 살아보는가 하면 스웨덴의 어떤 까칠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기도 한다.

소설에 완전히 빠져있는 시간은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다. 나는 보통 심야에 독서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 나에게 생긴 습관이다. 심야에는 읽는 도중 방해받을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렸을 땐 독서를 전혀 못했다. 잠간잠간 독서의 흐름을 끊는 요소들 때문에 같은 글밥을 서너번씩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용에 몰입할 수가 없었으며 소설을 읽는 묘미를 누릴 수가 없었다.

삼라만상이 고요히 잠에 든 시간이라야 조용히 단숨에 마지막장까지 완독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면 마치 깊은 꿈을 꾸다가 깨여난 듯하다. 사우나를 한듯 후련할 때도, 폭풍이 핥고 지나간 수림처럼 만신창이가 될 때도 있다. 독서필기를 하거나 굳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머리 아프게 생각을 굴리지 않는다. 그저 한편의 영화를 클리어한 듯한 보람감에 사로잡힐 뿐이다. 탄생과 죽음, 역경과 성취, 고난과 행복이 공존하는 소설이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의 세례를 자꾸 받다보면 인생에 대한 해답은 자연히 잠재의식 속에 생길 것이 아닌가.

어떤 선배가 나에게 소설만 읽지 말고 철학, 경제학, 인문학 등 도서를 골고루 읽으라고 조언해준 적이 있다. ‘편식’이 심하면 영양실조가 오기 마련이다. 나는 승인한다. 독서가들과 비하면 나는 그저 단순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일 뿐이라고. 그러면 또 어때서, 어떤 강박과 허례에 쫓겨 넘기기 싫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것보다 취향 대로 골라 먹는 책이 나에겐 충분히 자양분이 되고 힐링이 된다.

독서의 ‘편식’에 대처하는 방법은 있다. 내가 느긋이 시간을 할애해서 보기 싫은 면의 책들은 그런 지식들의 알맹이를 쏙쏙 뽑아서 보여주는 또 다른 경로들을 통해서 보충하면 된다. 종합비타민으로 모자란 영양을 보충하듯이.

요즘은 독서를 위한 환경이며 수단이 상상할 수도 없이 구전하다. 도서관, 서점, 북까페, 독서모임, 그리고 중고서적 거래도 활발하다. 온라인서점에서는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까지 구매가 가능하고 도서전문앱도 부지기수이니 정말 원한다면 아무때, 아무 데서나 독서가 가능하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오락의 불모지였던 어린시절 유일하게 동년을 살찌우고 달래주었던 것이 책이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에는 보물같았던 아동문학총서 《별나라》에서 김영금의 <바래진 꽃대궐>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얼마 전 연변도서관에서 <바래진 꽃대궐>책을 찾아내고 울컥했던 적도 있다. 《방방이와 톰》, 《한 락제생의 이야기》, 《몽떼크리스도백작》, 《서유기》, 《나타》, 《삼국연의》와 같은 우리 말 도서들은 지금도 명장면들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명장면이라 함은 그때 내가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그렸던 장면들이다. 그것은 분명 책의 마법이였다.

과외독물이 적던 어린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도서과잉시대인 요즘 읽은 책들보다 훨씬 또렷이 기억나서 20~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구절은 그대로 외울 수 있다.

그 시절을 살아왔던 수많은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성장에도 수많은 그늘과 좌절이 있었지만, 발랄하고 락천적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독서가 준 영향의 덕분이 아닐가 생각된다. 책은 따뜻한 시선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고, 숨돌릴 틈 없는 새로운 풍경을 눈앞에 펼쳐주었으며 나를 무서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었다. 독서하는 순간 만큼은 나는 내 왕국의 왕이였다.

마음에 드는 책을 샀을 때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었을 때 비슷한 쾌락을 느끼지 않는가? 아무리 틱톡과 같은 영상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나의 식성은 가끔씩 독서를 원한다.

이렇게 책이 고플 때면 모든 일을 미리 다 처리해두고 식구가 다 자는 깊은 밤, 아껴두었던 간식을 꺼내듯 소설책을 펼쳐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즐기는 시간, 나는 신비한 마법의 문을 열고 소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고집스러운 소설례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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