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병□ 백순천

2023-07-14 09:52:53

s도시 가야하 강변유보도는 언제나 산책하는 남녀로소들로 시끌벅적하다.

집이 강변유보도 부근에 있는 올해 80여세인 장할머니는 가끔씩 유보도 벤치에 나앉아 해볕 쪼임을 하다가도 나를 만나기만 하면 반갑다고 엉덩이를 들썽이며 너스레를 떨군한다.

“아이유! 춘자구나. 그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나와 장할머니는 지난해 유보도를 산책하면서 알게 되여 친숙해진 사이이다. 그 년세에 유보도 나들이를 나서는 장할머니가 공경스럽기도 했지만 인자한 모습이 꼭마치 옛날 나를 무척 귀해하던 나의 외할머니 같아보여 만날 때마다 깍듯이 인사를 올리며 친절히 대했더니 딸이 없는 할머니 또한 불혹의 나이가 된 내가 친딸처럼 마음에 든다며 나를 끔찍이 좋아해서 우리는 어느새 모녀처럼 만나기만 하면 서로 속내를 털어놓는 허물 없는 사이가 되였다.

위생국 국장까지 지내다가 퇴직한 큰아들과 같이 있다는 장할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아들이 여차여차하게 효도한다는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들어보면 장할머니가 큰아들 자랑을 할만도 했다.

자립이 힘든 로인들이 양로원을 찾거나 보모를 구하는 것이 추세로 되고 있는 현실에 이미 정년퇴직한 몸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집을 떠나 부모 신변에 와 시중을 드는 아들이 지금 얼마나 될가?

나는 여직 장할머니 큰아들을 본적은 없지만 그런 아들이 돋보이면서 내심으로 깊이 감복되였다.

늦봄에 갑자기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 도시가 전대미문의 비상사태에 처하는 바람에 나는 오래동안 장할머니를 만나보지 못했다. 한달 남짓이 지속되던 도시 봉쇄가 점차 풀리자 가야하 유보도로 산책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또다시 장할머니를  반갑게 만났다.

“춘자를 면바로 만났구나. 그렇찮아도 내 기다리던 참이였는데…”

‘나를 기다리다니?’

언제나 화기 넘치던 할머니가 어쩐지 수심에 잠겨 안색이 흐려져있는 것이 꼭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듯싶었다.

“왜 이래요?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할머니는 주밋주밋하더니 드디여 입을 열었다.

“남하고 제자식 흉을 보는 부모가 어데 있겠나. 창피하긴 하지만 춘자만 믿고 속 탄 이야기를 하는데 어데 가서 외우지는 마오.”

“할머니두, 안심하세요. 내가 어데 가서 외우겠어요.”

“내가 효자라고 크게 자랑하던 아들이였는데 같이 있어보니 믿을 만한 녀석이 못돼.”

“예에?”

“자랑 끝에 쉬 쓴다.”더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렇게 잘해주던 녀석이 말이야, 이 근래엔 무슨 귀신이 들렸는지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이 에미는 뒤전으로 하고  바깥돌이를 하는 걸 보면 내 짐작에 아마도 밖에 딴 녀자를 붙이고 있는 것 같아.”

“할머니두 무슨 말씀이세요. 코로나사태로 온 도시가 봉쇄되여 누구도 바깥출입을 못하였는데 아들이 어떻게 맘대로 나다닐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더구나 어처구니없었다.

“그나저나 내가 수십년 아껴 모은 40만원 되는 저금통장과 월급카드가 지금 모두 아들손에 쥐여있는데 그 돈을 어느 계집년한테 다 처넣고 있는지 누가 알겠나? 이걸 어쩌면 좋아?”

우선 애간장을 태우는 할머니를 안정시켜야 했다.

“할머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무렴 국장으로 있었다는 분인데 그렇게까지 허무한 처사를 하겠어요? 아직은 추측이니 너무 조급해 말고 한번 아들을 불러놓고 사실인지 잘 맞추어보세요.”

이렇게 말해놓긴 했지만 나의 심정도 할머니 못지 않게 조급하고 불안했다. 의심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였다.

할머니를 눅잦혀놓고 헤여진 후 뒤일이 어떻게 되였는지 궁금하여 나는 유보도로 나갈 때마다 할머니를 살폈지만 웬 영문인지 할머니가 종시 눈에 띄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갈마들었다.

여름도 다 가는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유보도 돌층계 한쪽 끝에 걸터앉은 왜소한 체구의 장할머니를 발견했다. 마스크까지 얼굴을 가리고 있어 겨우 알아보았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얼른 마스크를 눌러 턱밑에 걸고 다가가 큰소리로 불렀다.

“할머니!”

할머니는 마스를 벗고 나서 눈확이 푹 꺼지고  반쪽이 되여버린 얼굴을 쳐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반갑다고 갈구리 같은 두 손을 내밀어 나의 손을 잡았다.

“내 명이 하도 기니 그래도 춘자를 또 만나보는구만.”

“그간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나의 다급한 물음에 할머니 입에서 튕겨나오는 대답이 생뚱같았다.

“그사이 내가 설사를 만나 죽다 살았어.”

할머니는 그사이 설사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여놓는 것이였다.

“내가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하고 누워서 내처 쏘기만 하는데 큰아들이 이 늙은 에미를 살리겠다고 옷에 똥칠을 해가며 쉴새없이 똥오줌을 받아낸다 약을 사다 먹인다 의사를 불러 링게르주사를 놓아준다 하며 밤낮없이 분주히 서두르다가 병원에 싣고 가 입원까지 시켜 이 늙은 걸 끝내 살려냈다오.”

“천만다행이네요. 늘그막엔 그래도 자식의 효도가 제일이지요. 그래서 우리  전통미덕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으뜸으로 치는 거지요. 그런 걸 보면 큰아들의 효심이 대단하네요.”

“아들의 지극정성이 아니였더면야 내 언녕 저승으로 갔을 걸. 늙으면 의심이 많아진다더니 그 때 내가 아들을 잘못 짚었네. 괜한 의심이였더라니까. 내가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40만원을 그 채로 건사하고 있는 걸 보여주었네.”

“그것 봐요. 그런 아들이 어찌 할머니 돈을 함부로 날리겠어요. 그런데 그때 큰아들이 밤낮 어데로 나다녔대요?”

“글쎄 그건 또 여태 묻지도 않았지.”

“할머니 그때 아들이 주씨라고 하였지요?”

“그래, 주영선이지.”

성이 주씨라는 말에 나는 문뜩 할머니가 이전에 아들이 위생국에서 퇴직했다던 말이 떠오르면서 우리 아빠트단지에 자원봉사자로 있던 위생국의 주국장이 생각났다.

“주국장이 할머니 아들이 맞아요?”

“우리 아들을 알고 있었나?”

“코로나 자원봉사자로 우리 아빠트단지를 책임지고 풍막을 치고 와있으면서 밤을 패가며 수고하시던 분이였어요. 할머니두, 그렇게 고생한 아들을 바람이 났다고 의심하다니요.”

“그랬구만. 녀석두, 그러면서도 나하구는 일언반구도 없었군. 그러고 보니 아들이 환장한 게 아니라 결국은 내가 그  코로나 때문에 의심병에 걸린 거였군.”

“그 분은 참 좋은 분이였어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자 먹구름 꼈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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