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줏는 녀인 □ 남옥란

2023-09-01 08:58:51

지난해 가을에 이사 와서야 나는 옆집에 살고있는 그녀를 알게 되였다. 얼굴은 늘쌍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아주 건강해보였고 맞춤한 체형에 꽤나 이쁘게 생긴 60대 초반의 중년 녀인이였다. 항상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였고 인사성도 밝았다.

무엇을 하면서 사는 녀인일가?

궁금증은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올랐지만 구태여 물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복도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녀인들의 말소리에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척 하면서 문을 열었다.

하느님 맙소사.

그 긴 복도에 분리 수거해온 옷 견지들이 산더미를 이루었다. 옆집 녀인은 낯선 두 녀인과 한창 거래를 하고 있는 판이였다.

나를 일별하던 옆집 녀자가 흠칫 놀라더니 금방 얼굴에 배시시 웃음을 띠웠다.

“언니 미안해요. 부끄러워요. 이 낡은 옷에서 곰팽이 냄새가 많이 나죠?”

나는 손사래를 쳤다.

“동생, 괜찮아요. 볼일을 보세요. 나를 관계치 말아요.”

그때에야 빠끔히 열린 출입문으로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40평 남짓한 단칸방에 낡은 자전거와 헬스 기자재, 낡은 옷이 산더미를 이룬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저 준대도 가지고 싶지 않는 ‘쓰레기’지만 그 녀인에게는 아마도 둘도 없는 보배겠지.

어느 날 손군들에게 작아져서 입을 수 없는 옷들을 골라 알뜰하게 세탁하고 꽁꽁 이쁘게 개인 다음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옆집 방도문을 노크하였다.

“언니 왔어요? 우리 집 뒤죽박죽이예요. 괜찮겠어요?”

미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 녀인에게 먼저 내 마음을 털어놓기로 하고 나의 성장과정을 들려주었다.

네 아이를 남겨두고 나중에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떠나셨던 부모님은 종무소식이였다. 강 하나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무정의 심연으로 된 것이다.

그때 오빠가 열두살, 내가 아홉살, 그 아래 남동생이 여섯살, 막내 녀동생이 세살이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환갑이 넘으신 조모님이 우리를 돌봐주셨는데 한때를 먹으면 그 다음 때시걱이 걱정이였다. 우물물을 길어서 먹는 판이라 긴긴 겨울 동안 옷은 물맛을 볼 수가 없어서 이가 바글바글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서 그런대로 살았다.

동지섣달 강추위에 서북풍이 몰아칠 때 아침에 눈을 뜨면 서리가 눈섭에 뽀얗게 끼고 가마뚜껑이 얼어붙었으며 막내동생의 손은 얼어서 퉁퉁 부었다. 더 한심한 것은 쥐들이 살판 쳐서 동생들의 발가락을 뜯어놓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열어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옆집 동생은 눈물을 흘렸고 나도 울었다.

“그런데 언니 지금은 완전히 신세를 개변했잖아요. 언니는 귀티가 나고 돈도 많을 것 같아요.”

“아, 저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퇴직했고요. 남편도 개체로 진료소를 꾸리다가 지금은 집에서 휴식해요. 돈은 쓸 만큼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속심말을 나누는 딱친구로 되고 점차 허물없는 사이로 되였다.

“언니, 나는 와이파이를 설치 못해서 핸드폰이 무용지물이 되였어요.”

“아, 그래요? 그럼 우리 집 와이파이를 쓰세요.”

벽을 하나 사이 둔 옆집이라서 녀인은 마음 대로 우리 집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방도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주고 평소에 드나들라고 말했다.

방도문은 사실은 도적을 방지하는 문이 아니고 마음을 격리하는 ‘격리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그렇게 하였다.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집 앞에 180센치가 되는 기골이 장대하고 부리부리한 눈을 소유한 군인 총각과 명배우 탕유가 울고 갈 아릿다운 처녀가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총각이 알은 체를 하였다.

“이모 안녕하세요? 우리 엄마가 어디로 가셨는지 아세요?”

“엄마라니? 나는 종래로 그 동생이 아들이 있다고 말하는 걸 못들었는데?”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집이 비좁은 걸 알기에 나는 아들 부부를 우리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럼 언니는요?”

“나는 무지개다리 너머에 있는 딸집이 비였으니 거기 가서 있겠어요.”

저녁에 아들며느리가 랭면집에서 한턱 낸다고 하기에 우리 두집의 다섯 사람이 원탁상에 모여앉았다. 녀인은 아들이 돌아온 기쁨에 입을 헤벌리고 벙글거리기만 하였다.

맥주가 몇순배 돌자 그 아들은 신화 같은 이야기- 이 세상에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어이없고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소설 같은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모,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한 적이 없어요.”

“아니, 그럼 자네는 어디에서 왔나? 하늘에서 떨어졌어?”

“나는 엄마가 새벽에 넝마주이를 나갔다가 주어온 아이예요.”

“뭐라고?”

나는 와뜰 놀라서 쥐고 있던 저가락을 짤라당하고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또 어느 해인가 새벽에 쓰레기통에서 검은 비닐주머니에 담은 십만원의 현금을 주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파출소 문 앞에서 일군들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푼도 오차 없이 바쳤고 그리하여 ‘좋은 사람 좋은 일’ 표창대회에서 상장과 상금을 받은 적도 있다.

찬탄이 튀여나갔다.

“이모. 하기에 사람들은 엄마를 새벽별을 줏는 녀인이라고 말해요. 난 이런 엄마가 대단히 자랑스러워요.”

나는 옆집 동생이 넝마주이에 집착하는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출근할 때에는 새벽마다 나가서 넝마를 주었단다.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서 수시로 장래 시어머니에게 맛있는 반찬을 얹어주는 이쁜 며느리까지, 이것이 바로 인생의 최대의 복이 아닐가.

총각은 즉석 요청장을 나에게 전한다면서 얼마 후 한집에서 오랍누이로 자라던 저 ‘소복’이 하고 결혼식을 한단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동생을 얻어주느라고 녀인은 엄마를 잃은 녀자아이를 입양했는데 두 애가 장성해서 청실홍실 연분으로 결혼까지 한단다.

“참, 미중부족이야!”

“뭐가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어요. 우리가 결혼하는 날부터 소복이 아빠가 우리 아빠로 된대요.”

“와!”

얼떨결에 나는 소리높이 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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