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 허계월

2023-09-01 08:58:51

몇해 전, 결혼식을 마치고 량가 친척들을 돌려 보내고 난 후에야 시집에서 어머님과 잠간이나마 얘기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일 나가시는 거 힘들지 않냐고 묻는 나에게 어머님은 웃으시면서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하시면서,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환자의 정신 건강을 케어하는 방법과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하셨다.

직장암으로 5년 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님을 홀로 간호해온 어머님이셨다. 가장으로 서의 몫을 다 하려고 타국에서 힘들게 일하다 병든 아버님을, 타인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던 어머님이셨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질 때 사람은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사지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 아버님은 모든 식음을 전페했고 자식들 손에 몸을 맡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자식들에게 치욕스러운 면을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지키고 싶었겠지만 자신의 의지와 달리 자기 손으로 음식을 먹을 기력조차 없어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청결은 물론 지극히 사적인 용변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자식들의 손길을 불편해하며 살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아버님은, 어머님의 보살핌 속에서 점차 삶의 의욕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병상에 누운 아버님은 “이렇게 딱 1년 만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어머님의 보살핌 속에서 비교적 편하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늙고 아픈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이 아닌, 몸으로 자식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얘야, 너도 아프면 아프다고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늙고 병든 몸이 일회용 상품처럼 버림받는 사회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에 무척이나 가치를 느낀다고 하였다. 나는 넓고 어두운 결혼식장에 홀로 앉아 계시던 어머님을 바라보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잘 살아!”라는 어머님의 덕담을 뒤로 하고 하객들을 향해 축가를 불러야 할 신랑이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울음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례식장에서 신부가 우는 모습은 종종 볼 법도 한데, 구척이나 되는 남자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정도를 넘어 소리 없이 오열하듯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생방송되면서 끄억이는 울음이 스피커를 통해 하객들의 마음을 침식하고 있었다. 축하하러 와준 하객은 물론, 례식장 최초로 스텝들까지 련달아 우는 모습들이 비디오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비바람을 막아준 작고 왜소한 뒤모습이 가슴 아팠던 것은 어찌 신랑 뿐이였을가.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모두가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은 품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남편은 자신의 환자들에게 늘 다정했다. 하루에 많게는 몇십명을 진찰해야 되는 고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온 로인들에게는 늘 다정하고 침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것은 장씨 할머니가, 이건 오씨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것이라며 바나나 쪼각과 유자같은 제철 과일들을 내놓으며 환자들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모두가 자식들을 해외에 보내고 외롭게 사는 로인들이였다. 그런 그들이 남편을 스스럼없이 대하며 진찰을 받는 동안에도 버릇처럼 자식들 자랑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녕 자식과 함께 진료받으러 오는 로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사회적기준에서의 성공을 거둘 인재로 키웠지만 결국 곁에 둘 수 없어 아쉽고 보고 싶어 간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가 싶다.

그날 밤, 우리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9평 남짓한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큰 일을 치르고 쉽게 잠들지 못하던 어머님의 고단한 몸을 남편이 두 손으로 꾹꾹 만져주었다. 결혼식 때, 눈에 담아두었던 어머니의 작고 왜소한 등을 주무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은근히 시집 하나는 잘 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집안에 시집 와, 가문의 분위기를 조금씩 느껴가는 것도 새로웠다.

늙고 병들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나의 생각과는 상반된 얘기지만, 돌이켜 보면 누구에게도 페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생각이란, 역으로 누구도 내게 페를 끼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리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고 병든 몸에 대해서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으나,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고 최소한의 효용가치조자 없게 된다면, 타인에게 짐으로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어머니, 우리 래일 다 함께 건강검진 가요.”

한사코 거절하던 어머님은 남편이 함께 거들어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이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남편의 뒤모습이 쓸쓸해보여서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젠 결혼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휘여진 부모의 등이, 더 작고 왜소해지기 전에 자주 련락을 하며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보려고 노력한다. 젊고 건강하며 효용가치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혹시 타인에게 부담이 될가 두려워 말 한번 하지 못하는 나약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이미 중년이 되여버린 내가, 미래의 나에게 묻는 바른 목소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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