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의 서재 □ 구호준

2023-10-13 08:42:59

“책 읽는 개만.”

중고서점 문 앞에 붙은 안내문이다.

어쩌다가 서울에 일 보러 가면 리유를 불문하고 신림역 부근에 있는 중고서점을 찾는다.

“책 읽는 개만.”

중고서점에 반려동물은 출입금지란 말을 사장님이 재치로 만들어낸 아이디어였겠지만 내게는 출입금지로 보이지 않는다. 서점에 들어가기 전이면 문 앞에 머물면서 씹고 또 씹는다.

“책 읽는 개만.”

한참을 서서 같은 말을 씹고 있으면 그 글은 책 읽는 개들이 다니는 서점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개가 책을 읽고 그 개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서점, 그보다 더 환상적인 풍경이 세상에 또 있을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이 있었다면 지하철을 타면 늘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 뭘 하러 가나 늘 가방에 책 한권은 챙겨갖고 다니는 습관이 있는 내게는 지하철에서 책 읽는 환경 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서울에 가면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타는 것을 선호했다. 버스를 타면 금방 인 것을 지하철을 타고 한참씩 돌아가는 일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책을 읽으면 그 거리나 시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책 속에는 언제나 세상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내가 살아야 할 세상만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나만의 세상과 내게 필요한 세상들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는 것, 그 길의 지루함과 따분함을 잊게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빠져서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일은 없었다.

삶도 하나의 려정이라면 그 려정에도 즐거움과 행복들 있지만, 힘들고 고달프고 아픈 상처들이 동반하지만 책 속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인생은 늘 즐거움만 가득했다.

허나 내 주변의 그 아름다운 풍경도 잠간이였다. 노을빛 풍경이 아닌 순간만을 존재하는 무지개처럼 어느 순간에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하루종일 지하철을 타도 책을 보는 사람을 만나기는 망망한 우주에서 또 다른 생명체를 찾기다. 아이들부터 시작하여 백발의 어르신들까지도 손에 든 것은 책이 아닌 스마트폰이다. 지하철만이 아니다. 커피숍에 련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주앉아 서로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찮게 본다. 련인과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면 휴대폰과 대화를 나누는지 ‘핸맹’이란 소리를 달고 살아가는 내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운전을 하다가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보행자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도 이젠 일상으로 되여가고 있다.

보행자만이 아니다. 교통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검사가 음주측정과 휴대폰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모든 것이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지구가 하나의 촌이 되였고 원하는 모든 것이 그 속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하나에 어쩌면 인간이 원하는 욕심과 욕망이 전부 담겨있는 것은 아닐가? 인간의 그 욕심이 결국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몰라 혼란스럽다.

스마트폰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 하나가 빠졌다.

감정.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인 ‘감정’이 존재하지 않으니 결국 그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감정이 없기에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중독에 걸리면 심각하면 환청이 보이거나 환각이 보이기도 하고 분노 조절이 되지 않고 인내나 사회성도 운운하지 못한다. 요즘은 세계심리학계에서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도 병으로 치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마트폰, 그건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 만든 기계가 아닐가?

필요로 만든 도구, 그 도구에 중독되여 스마트폰의 지배를 받고 모시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은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감정에서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책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독서하는 개가 나오고 있다.

“책 읽는 개만.”

중고서점에 붙은 그 한줄, 그건 독서하는 개가 있고 그 개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서점이란 이야기다.

“책 읽는 개만.”

서점 문 앞에 서서 그 글귀를 씹으면서 내 로년을 찾아본다.

젊은 날부터 내가 꿈꾸던 나의 로후는 시골에 집 한채 장만하고 개 한마리를 키우면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이였다.

“책 읽는 개만.”

씹을수록 내 로년에 단맛이 느껴지려고 한다. 젊은 날에 로후에 대한 꿈은 변함이 없지만 이젠 수정은 해야 할 것 같다. 시골에 집 한채 마련하고 책 읽는 개 한마리와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기.

참, 그리고 내 동반자가 될 개 아니, 책 읽는 견공을 위해서 견공의 서재도 하나 마련해야 하겠다.

그 서재 문에는 이런 글귀도 새겨넣어야 할 듯싶다.

  “책 읽지 않는 개와 무식한 인간은 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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