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련가 □ 박영옥

2023-10-27 08:16:21

저녁에 친구생일파티에 간 봉구는 오늘따라 술맛이 없어서 두잔만 마시고는 집에 돌아갔다. 주방에서 서성대던 안해 미려가 머리를 피끗 돌리더니 그냥 하던 일에 열중한다. 다른 때 같으면 해맑은 얼굴로 현관에 다가와서는 살뜰한 어조로 “돌아오셨어요?”하고 맞이해주는데 오늘은 일언반구도 없다.

오후에 말다툼한 것이 아마도 속이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다. 봉구도 옷을 갈아입은 후 아무 말 없이 방에 쑥 들어갔다. 원래 말다툼을 하고나면 봉구가 언제 그런 일 있었나싶게 먼저 말을 거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노여운 모양이다.

침대에 몸을 던진 봉구는 또 줄어드는 저축통장이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미려가 참 괘씸해났다. 아무리 지력상수가 높아도 어쩌면 이런 수법을 쓴단 말인가? 이제는 천원밖에 남지 않은 통장을 차라리 미려 앞에 활 던지고 싶었다.

봉구는 5년 전에 미려와 재혼했다. 갓 만났을 때 미려는 금방 퇴직비를 타게 되였는데 기업단위라서 낮았고 세멘트공장에서 일하던 봉구는 삼십대부터 더 큰 돈을 번다면서 로씨야 보따리장사를 하느라고 사직해버리다 보니 그후부터 림시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무슨 운을 타고났는지 봉구한테 부지런하고 살뜰한 미려가 다가왔다. 첫눈에 눈에 불꽃이 툭툭 튈만한 매력을 가진 미려의 모습을 보고 운명의 신은 이런 녀자를 어디가 꽁꽁 숨겼다가 뒤늦게야 내놓은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한번 미려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여보, 나의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려서 나를 선택했소?”

“중매군이 하는 말이 당신이 녀자를 특별히 아낀다고 했고 또 제대군인이란 말에 마음이 쏠렸어요. 이만한 답복이면 만족이죠?”

미려가 군인에 대한 호감이 생기게 된 것은 열여덟살에 어느 한번 밤기차로 장춘에 갈 때였다. 밤이 깊어가자 미려가 걸상에 앉은 채로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여나 보니 몸에 군복이 덮혀있었다. 맞은켠에 앉은 군인아저씨의 옷이였다. 그 군인은 조금은 한기를 느끼는지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낯모를 자기에게 옷을 덮어준 데 대해 깊은 감동과 숭배감이 생겨나면서 그때로부터 속으로 군인의 안해가 되길 소망했다. 그러나 운명은 사람의 의사 대로 따라주는 것이 아니였다. 미려는 동창생의 소개로 어느 기업에 출근하는 총각과 만났는데 15년 후 병으로 돌아갈 줄이야. 아기자기하게 살던 사람이 떠난 뒤에 남은 건 슬픔이였다. 그 슬픔 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한 미려는 친구들 앞에서도 쩍하면 눈물샘을 터치워 ‘울보’란 별명까지 달게 되였다. 그래서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라했던가?

깜찍한 체형에 하얀 살결, 그리고 오관도 비례에 맞게 박힌 미려가 홀로 난 낌새를 챈 많은 남자들이 어떨궁이 비친 눈길을 보내왔다. 때론 마음이 동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내들 틈에서 시들고 싶지 않아서 다 물리쳐버렸다. 속담에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지만 미려는 백번 찍혀도 넘어가지 않을 준비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다가 봉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자식부담이 없거니와 제대군인이란 말에 잠자던 세포들이 다 깨여나 손벽치듯했다.

제대군인과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의 생활을 둘러보면 안해들이 호강스러워보였다. 군인생활에 각 잡힌 남편들이 옷차림도 산뜻하게 척척, 행동도 질서있게 척척하는 군인다운 성격이였고 빨래도 절로, 물건정리도 깔끔해서 녀자 손이 가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특히 봉구는 전처와 살 때 식당도 경영했던 경험이 있어서 주방일도 흠잡을 데 없었고 또 무슨 손인지 그 손에서 태여나는 음식은 별맛이였다. 그래서 봉구가 주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감동이 많고 사리가 밝은 미려는 칭찬을 앞세워서 봉구의 입가에는 늘 미소가 달려있었다.

미려는 돈관리를 물이 못 나게 할 뿐만 아니라 깜짝쇼도 잘 마련하고 랑만도 잘 만들어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너무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부부간의 행복지수가 아주 높아서 뭇사람들의 부러움 자아내기도 했다. 가끔 단거리 려행도 다니고 주요한 기념일이면 서로 선물을 챙겨주고 산책도 쇼핑도 함께 나서는 그들 부부, 말 그대로 삶의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중시도를 높이는 것이였다.

해마다 새해 첫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랑만의 축복이 오간다.

“여보, 새해에도 그냥 많이 사랑해줄게.”

봉구가 눈 뜨자마자 하는 첫 말이다.

“나도 새해에 더 많이많이 칭찬해드릴게요.”

아직 잠결에서 눈도 바로 뜨지 못하는 안해도 질세라 이런말로 아침을 열어가면서 행복의 탑을 열심히 올리쌓아가고 있다.

매달마다 봉구에게 차례지는 건 고작 오백원의 용돈이였지만 봉구는 만족이였다. 친구들은 로임이 4, 5천원 정도인지라 달마다 천원의 용돈이 차례지지만 자기는 겨우 천원 좀 넘는 로임이라 오백원이라도 만족했다. 봉구는 용돈을 허투로 쓰지 않고 한번쯤 아버지노릇을 하고 싶었다.

봉구에게는 늘 한가지 속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전처에게 맡긴 아들애가 대학공부한지 4년이 되도록 생활비를 한번도 주지 못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또 연구생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옷가게를 차린 전처가 돈이 넉넉하여 혼자서 아들애를 공부시키겠으니 아예 삐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도 있겠지만 봉구는 아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여줄 상황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일찍 로씨야에 가서 돈을 벌었건만 전처의 삼촌에게 꿔주었다가 그 삼촌의 온집식구가 다 가스중독으로 사망하면서 돈은 바람에 날린 격이 되였다. 전처는 봉구에게 늘 빚진 마음인지라 리혼 후 혼자서 아들을 대학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그런 봉구였지만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미려를 만난 것이 참 행운이였다. 미려에게는 집도 있었고 살림도 모자람이 없었다. 거기에다 부지런한 미려는 매일 시장음식점에서 두시간씩 일했다. 그렇게 번 돈을 저축하는데 봉구이름으로 저축하라고 한다.

“아니, 내가 번 돈이 아닌데 어째서…”

“당신이 세대주니까요.”

“내 이름이지만 돈이야 내 돈이 아닌 걸 알고 있소.”

“아니, 이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당신에게 권리가 있어요. 그간 당신이 앞치마 두르고 자주 주방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워 드리는 장례에요.”

언제봐도 유머가 넘치고 해님처럼 따스한 기분을 주는 미려 앞에서 봉구의 너부죽한 얼굴도 어느새 벙글써해진다. 번마다 은행으로 달려가는 봉구는 월등감에 도취되였고 미려의 몸에서 한웅큼의 체온을 읽었다.

사실 봉구의 수입이 안해보다 낮아서 때론 기가 죽을 때가 있었다. 창문으로 멍하니 하늘을 내다보면서 봉구는 큰 돈벌이를 위해 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사십대에 오토바이사고로 허리를 다친 후로 힘든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조금씩 벌고 있었던 것이다.

봉구는 늘 속으로 안해에게 고마운 마음이였다. 안해가 뭐 계산이 령리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였다. 세대주 기품을 세워주기 위해 남편이름으로 저축해주는 그 갸륵한 마음에서 안해복이란 바로 이런거구나하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미 9천원을 모았으니 만원이 되면 아들에게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미중부족이라 할가 봉구는 성격이 좀 다혈질이라 자그마한 일에도 발끈할 때가 있었다. 처음에 미려는 이 성격을 군대성격이라고 우점으로 봐주더니 어느때부터인지 허물상자를 만들어놓고는 반년 전부터 봉구에게 이런 규칙을 세웠다.

첫째, 한번 성을 작게 내면 저축에서 오백원 찾아서 안해에게 바쳐야 한다.

둘째, 한번 성을 크게 내면 저축에서 천원을 찾아서 안해에게 바쳐야 한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단 말인가? 정말 소웃다가 꾸러기 터질 일이고 입이 벌려질 일이지만 봉구는 반기를 내들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큰 일이 아니고는 될수록 참을 인자로 자신의 성격을 잠재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미 굳어진 성격인지 몇번이나 하찮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남자노라고 자존심을 잔뜩 세워대는바람에 저축이 거의 거덜나게 되였다. 이제 다시 그만한 돈을 모으자면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일이다. 한번씩 천원돈이 줄어들 때마다 입 속으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맹세를 거듭했지만 왜서 안되는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봉구는 천원밖에 남지 않은 저축통장을 다시 생각하노라니 조급정서가 앞섰다. 물론 안해보고 실토정하면 사리밝은 안해는 돈을 이붓아들에게 주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미안해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장미꽃 한송이 숨어있었네, 그대 같은 사람 보질 못했네…”

문득 봉구의 폰이 울렸다. 전화에 ‘준석’이란 이름이 떴다. 아들이였다. 혹시 돈이 모자라서 전화오는 걸가? 어쩌지? 봉구의 얼굴에 구름장이 떴다.

“준석이구나. 공부에 힘들지? 어쩌지? 돈은 겨우 만원을 모으긴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써버렸다. 좀 기다려줘.”

이렇게 말하는 봉구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오후에 보내주신 돈 2만원 이미 받았습니다. 구좌에 아버지 이름으로 입금되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또 무슨 감투끈이람? 주방에서 일하던 안해가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 오리무중에 빠진 봉구를 쳐다보며 살짝 웃는다.

봉구는 얼굴에 한아름 번지는 미소를 담고 제꺽 주방에 들어가서 안해를 꽉 껴안았다. 어디선가 장미꽃향기가 풍겨오더니 코를 찌른다. 사흘 전에 안해의 생일이라고 사다놓은 장미꽃이 창문턱에서 한창 향기를 물씬물씬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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