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10월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들리는 노래이다. 노래를 듣다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몇해 전 취재로 만났던 김선생이다.
1996년 가을, 김선생은 연변에 가족을 두고 녕파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언제면 다시 돌아올지 기약없는 약속만 남긴채 그 시절 많은 이들처럼 그렇게 고향과 가족을 떠났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도착한 녕파에서 김선생은 특유의 정직과 성실을 인정받아 얼마 안 지나 한 회사에 총무로 취직했다. 김선생은 통역, 재료구매부터 전기와 물 관리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아 열심히 일했다. 몸과 마음은 피곤하고 외로웠지만 타향에 하루빨리 자리를 잡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행복한 나날을 그리며 김선생은 그 누구보다 악착같이 달렸다.
김선생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김선생은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의지할 것은 오로지 진솔함이라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인사하고 진심으로 대했다. 꾸밈없이 솔직한 인간적인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지적이고 학자적인 풍채를 보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교육사업에 종사했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름 대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김선생이라 정답게 불렀다 한다.
어느 날, 같은 지역에 있는 외국 회사 사장이 김선생을 찾아와 자신의 회사를 맡아 달라고 손잡고 부탁했다. 급한 사정으로 본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회사를 일전 한푼 받지 않고 넘겨줄터니 그냥 맡아달라는 것이였다.
어안이 벙벙한 김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무얼 믿고 그렇게 선뜻 회사를 내주냐고 물었다. 사장은 주변 여러 사람들한테 여쭤봤는데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정직한 성품의 김선생이라면 회사를 맡아 잘 이끌 수 있을거라며 돌아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회사를 넘겨받았고 종업원에서 하루아침에 회사 리더로 된 김선생은 녕파에 금방 왔을 때 겪었던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회사 운영에 최선을 다했다.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드물게 숙소와 식당을 제공해줬고 직원들의 생일이면 단설기를 사서 함께 나누며 떠나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챙겨줬고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이들이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길 바라며 항공권을 끊어주었다.
직원들은 연변에서 온 이방인의 가족 같은 사랑에 더없이 감동했고 그런 김선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회사를 제집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모두의 노력으로 회사는 전체적으로 성장을 이루었고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 자리매김했다.
취재중 김선생은 녕파에 온 뒤로 해마다 10월이면 듣는 노래가 있다고 했다. 서서히 연길역을 떠나는 파란 렬차를 쫓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안해와 어린 자식의 모습이 흐릿해 질쯤 어디선가에서 구슬프게 들려 온 노래이다.
녕파에서 힘겹게 자리를 잡아가던 그때 그 시절을 잊지 말고 정진하자고 내심 채찍질하며 듣는다고 했다. 노래는 꿈에도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에 부치는 김선생의 마음의 위안이였을지도 모른다.
취재를 마치고 연길로 돌아왔지만 타향에서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뛰는 김선생의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또렷하게 안겨왔다.
김선생의 힘든 타향살이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여줄 수는 없을가? 이리저리 궁리하다 문득 김선생이 즐겨 듣는 노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바쁜 회사 일정으로 행여 올해는 노래 듣는 자그마한 여유조차 갖지 못하지는 않는지? 계절에 잊혀진 이야기들이 노래가 되여 김선생이 아픈 추억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그때부터 해마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다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김선생한테 노래를 보내드렸다.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
“딩동.”
그날따라 휴대폰 메시지 도착음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녕파에 있는 지인이 보내온 것이였다. 이럴수가?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부고였다. 김선생이 어제 밤에 갑작스럽게 돌아갔다는 부고였다.
해마다 이 계절이면 김선생한테 노래를 보내드리고 그 누구의 칭찬 없이도 너무 뿌듯해하던 작은 가슴에 품었던 꿈이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였다. 김선생이 돌아가셨으니 이젠 누구한테 노래를 보내 드려야 한단 말인가?
문득 눈앞에 김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한채 타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또 다른 많고 많은 김선생들이 스쳐왔다. 그런 김선생들한테 이 계절은 또 어떤 이야기로 가슴에 남아 있을가?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 간밤에 내린 가을비가 내 맘을 더없이 심란하게 만든다. 가을비에 축축히 젖은 락엽 한장이 맥없이 떨어졌다. 올해도 김선생한테 보내드리려 준비한 노래가 어느새 내 귀전에 흘러들고 있다.
그러면서 타향에서 오늘 하루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달려가는 수많은 김선생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 마음속으로 애써 추억을 달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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