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무르익어가는 콩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조카한테 넌지시 우스개소리를 했다.
“누구네 콩가을이 끝나면 나한테 알려주렴. 콩이삭을 줏게.”
“남의 눈치 보면서 줏지 말고 우리 밭의 콩이삭을 주으시면 돼요.”
“너의 밭의 콩이삭이야 당연히 내가 주어야지.”
국경절이 지나자 조카의 콩가을이 어떻게 되였는지 궁금해났다. 더는 참지 못하고 문의하였더니 어제 오후에 금방 가을이 끝났다고 한다. 날씨를 보면 해볕이 쨍쨍 내리쬐는 오후에 가을을 했으니 콩알들이 많이 떨어졌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더구나 기계로 가을한 밭에는 이삭이 많다고 한다. 조카의 의향을 물었더니 시간 나는 대로 아무때건 이삭을 주어도 좋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밭에서 아깝게 썩고 말 것이니.
아침해가 온누리를 비추면서 따스한 기운이 돌자 차림을 하고 콩이삭 주으러 밭으로 향했다. 어렸을 적 생산대 밭에서 콩이삭을 줏던 때를 상기하면서 무슨 이삭이 그리 많으랴 싶어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콩대를 주어서는 자루에 콩꼬투리를 훑어넣었다. 차츰차츰 앞으로 나가면서 둘러보니 콩꼬투리가 다닥다닥 매달린 콩대들이 여기저기 누워있는 것이 눈에 훤하게 띄웠다. 방법을 바꾸었다. 콩꼬투리들이 다닥다닥 열린 콩대를 하나하나 주어서는 품에 껴안으면서 줏다 보니 어느새 한아름이나 찼다. 무슨 이삭이 이렇게도 많이 널렸지? 농사 지은 성과가 많이 랑비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부지런히 주어 모아놓고 보니 퍼그나 되였다. 조카는 차로 깔아서 탈곡을 해주겠다고 했다.
이튿날에는 널려있는 콩꼬투리를 주었다. 그것도 적지 않았다. 주으면서 살펴보면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꼬투리를 주은 다음에는 콩알을 줏기 시작하였다. 콩잎을 살살 헤치면 노란 콩알들이 초롱초롱 나를 올리 쳐다보며 반겨준다.
올해의 시월은 왕년에 비해 유난히도 날씨가 따뜻했다. 날씨가 좋을 때마다 이삭 주으러 다니다 보니 콩밭이 마당 쓸기를 해놓은 격이 되였다. 까딱하면 버려질 수 있었던, 조카의 정성과 심혈이 깃들어있는 일년농사의 성과를 줏는 것도 좋았지만 만물을 익혀주던 해볕쪼임을 진종일 할 수 있었고 시원한 가을바람도 맞고 신선한 공기도 한껏 들이켤 수 있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해볕을 등지고 쪼크리고 앉아 콩알을 줏다 보면 따스한 해볕이 잔등을 내리쬐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애무해주고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데 그 감각이 참 유난했다. 건강지수가 부쩍부쩍 올라가는 느낌이였다. 더구나 날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절어 피곤한 눈도 쉬울 겸 번마다 한시간 남짓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드넓은 전야를 한껏 바라볼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그야말로 일거량득, 일거삼득을 훨씬 초과하는 일거다득이 되여 더구나 좋았다.
콩꼬투리들이 다닥다닥 열린 콩대, 콩알이 세알 네알씩 들어있는 콩꼬투리, 동글동글 노랗게 잘 여문 콩알… 이삭을 주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중얼중얼 혼자말을 했다
“아까운 콩을 줏지 않으면 그저 버리게 생겼네. 얼마나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
눈의 피로를 가시려고 재미 삼아 시작한 콩이삭 줏기가 어느 사이 임무적인 이삭줏기로 변하고 말았다. 내가 줏지 않으면 밭에서 썩을 것이라는 조바심에 더구나 일손을 다그쳤다. 조카가 봄에 씨를 뿌려서부터 가을하기까지 콩밭에 기울인 정성과 심혈이 물거품으로 되게 할 수는 없었다. 한알 한알의 통통 여문 콩알은 조카의 땀의 결실이였다.
이삭줏기는 조카의 로동성과에 대한 보답이였다. 한알 한알 주으면서 노랗게 잘 여문 콩알을 보느라면 그 콩알에 기울인 조카의 심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짠해났다.
농사일에 종사하는 조카는 옥수수농사를 주로 하는 여가에 콩농사를 곁들이고 있다. 봄파종으로부터 가을이 끝날 때까지 새벽부터 저녁 어스름히 깃들 때까지 농사에 정성과 심혈을 기울였다. 파종을 하고서는 출묘가 어떤지 살펴보고 병충해정황을 살피는 등 옥수수나 콩 자람새를 수시로 살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밭고랑에 물이 고일세라 도랑을 빼주고 바람에 쓰러진 곡식대가 있으면 하나하나 일으켜세웠다. 비가 적게 내려 가물이 들 것 같으면 곡식이 다 말라드는 것 같아 안절부절하기도 하였다. 하늘을 믿고 밭농사를 하는 농부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도움도 없으면서 괜히 나까지도 속을 끓였다. 조카의 정성과 심혈을 먹고 자라는 곡식들은 하루하루 키돋움하면서 우썩우썩 잘도 자랐고 자연이 하사하는 해볕과 바람과 수분의 영향으로 하루하루 무르익어갔다.
콩알을 주을 때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 온 정력을 쏟아부었다. 말라 비틀어진 콩잎을 손으로 살살 헤치면 밭이랑 여기저기 널려있던 노란 콩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알한알 주어 한웅큼씩 자루에 넣으면서 수량이 불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치 보물을 줏는 양 마음이 흐뭇해난다.
콩이삭을 줏는 과정은 어쩌면 인내심과의 대결이기도 하였다. 콩대를 주을 때에는 허리가 아프고 다리맥이 나른했고 콩코투리를 주어 손으로 훑을 때에는 콩코투리에 찔려 손가락이 아팠다. 콩알을 주을 때에는 진종일 머리를 수그리다 보니 뒤목이 뻐끈하고 허리가 쑤셔나며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며 가끔씩 눈앞이 희미해지기도 하였다. 여러날 줏다 보니 제일 많이 사용하는 엄지와 식지가 껍질이 일어나더니 갈라터지기까지 하였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한해 농사를 위하여 쏟아부은 조카의 정성과 심혈을 생각하면 또다시 힘을 내여 주을 수밖에 없었다.
줏자, 내 힘이 닿는 데까지, 기온이 차지기 전까지 줏자. 이렇게 시작한 콩이삭줏기는 진눈까비가 내리고 기온이 팍 떨어지면서 막을 내렸다.
이삭을 주으면서 우리 인생도 이삭줏기와 흡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태여나서부터 이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면서 살기까지 우리는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다.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공부를 하면서 책의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어문, 수학, 한어, 물리, 화학, 지리, 력사 나아가서는 전업지식까지 어느 하나 등한할 수가 없었다. 가방끈이 짧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리해하기 힘들가봐,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들가봐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하나하나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은 한알 한알 콩을 주어 모으는 과정과 같다. 한알 한알의 콩을 주어 자루에 넣듯이 하나하나의 지식을 배워 머리속에 꽁꽁 다져넣었다. 한웅큼 한웅큼의 콩알이 자루를 채워주었 듯이 한가지 한가지 열심히 배운 지식이 우리의 머리속을 채워주었고 마음의 창문을 열어주었고 시야를 넓혀주었으며 우리가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으로 되였다. 그 배움의 과정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혹자는 모든 애로를 물리치고 끝까지 배워냈고 혹자는 곤난 앞에 머리 숙이고 중도이페하기도 했다.
이삭줏기는 부지런하고 정 많은 조카한테 고마움을 느낀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알 한알의 콩알에 바친 조카의 정성이 콩알을 줏는 내 손끝을 통해 내 마음 구석구석에까지 닿는 것 같아 감격했다. 조카의 콩농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삭을 줏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랴. 또 어찌 자연이 주는 여러가지 혜택을 만끽할 수 있었으랴.
콩이삭줏기는 내 인내심을 키워주고 조카한테 고마움을 느끼게 했고 자연의 혜택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였다는 점에서 너무 의미가 깊다. 그래서 다음해의 콩이삭줏기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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