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벽에 걸고 (외 4수)□ 박장길

2024-02-23 05:06:21

묵은 달력을 벗겨내리고

그 자리에 새해를 통째로 걸었다

흰 벽에 남아있는

묵은해의 자국도 덮었다


세월도 세월 속에 파묻힌다

산뜻한 한해가 내려다보고 있다


래일은 새해, 새달, 새날

너에게 삼중의 축복을

이 해의 마지막 해살에 묶어보낸다


365개의 은빛 금빛 빵이

하늘에 배부르게 부풀어올라

꿈이 고픈 일은 없으리라


저만치에서 새해의 해살이

긴 다리를 비스듬히 하고

양걸춤 추며 천천히 걸어온다


양걸춤으로 가자

앞뒤 좌우 다지고 한발작 나가며

꿈을 굴려 열을 다하고 성을 다하자


해가 바뀌여도 바꿀 수 없는

그윽한 가슴에 액자 해 걸어둔 너

숫저운 눈매에 미소를 피우고

마음을 다문 입매를 풀면


파랑새를 찾으러 간 청춘이

파랗게 부르는 동그란 소리

음파의 치마자락 물결쳐와

가슴 한포기 시원히 펴진다


새해도 매일과 같이

하루가 갔을 뿐 하루가 왔을 뿐

한살 높여주는 수고에 감사할 수 없지만


삼가 새해를 들어올려 열고

지름길보다 바른길 걸어

명년 이때 저 달력을 내릴 때


내가 피워올린 잎들이 담아온

한잔 한잔 빛을 너의

합장하는 손바닥에 쏟아주며


헌 싹을 벗고 새싹으로 푸르러올라

계속 빛을 빛을 구하리라

새해 앞에 서서 심호흡한다.



흰 가슴    

-나는 연필로 원고지에 시를 쓴다


산에 푸르던 한그루 나무를 손에 쥐고

빈가슴을 채워간다


산에 푸르던 한그루 나무를 펼쳐놓고

무한공간을 달린다


손에 쥔 나무는 굽힘 없다

가볍고도 무거운 지팽이, 평생의 친구

앞에 펼친 나무는 비여있다

흰 가슴, 나의 활주로-


폭풍취우 이겨낸 걸작이였다

내 안에 일어서는 나무의 기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나무의 속살


순결한 살결

친정집 같은 원고지에 적으면

온 주의를 쏟게 되고

연필로 적으면 다른 생각 비켜선다

연필과 종이는 집중의 도구


령혼을 깎아 시를 쓸 때면

사과를 베여 먹는 소리가 나서 더 좋다


내 시가 잘 익은 사과 한알로

네 입안에 단물이 돌게 하면

먹어주렴, 맛있게 나의 마음 먹어주렴


사과를 익힐 해살이

나의 손에 가득 쥐여있다

나의 손에 해살을 쥐여준 님이여

나의 자리를 비워놓고 있는 흰 가슴이여!



첫눈, 하늘의 첫인사    

-닭곰집에서        


꽃바구니를 흔들며

선녀가 내려오는 것 같다

양양히 내리며

사무침처럼 내리며

펑펑 터지는 함박눈

첫 부끄러움 같은

하늘의 첫인사


신의 령혼 같이

온 하늘에 피여나서

한송이도 남기지 않고

몽땅 내려오는

차거운 꽃, 잎잎마다

하늘을 업고 왔다


아이스크림으로 서있는

나무 옆을 지나

하늘 아래 밑줄을 긋고

언덕 넘어 사라진

전기줄에 시선을 걸고

넋 놓고 혼백을 본다


구석에 처박혀

목 비탈린 한을 푸덕이던

구석이 살아서 꿈틀하던

흰닭의 원혼이


땅에서 솟구치며

휘몰아쳐 올라가

선회하며 란무하는 진혼무

전기줄이 연주하는 안혼곡

마음에 시리다


하늘을 한잎 한잎

벗어버리는 가벼운 눈꽃

잎잎이 몸에 무겁다

인간의 언어를 내려놓고

하늘의 무게에

마음을 턴다.



무념의 벽          


이마를 가로 지나 주름살이

기러기로 날아가는 나래에

헌헌장부를 실어보낸 하얀 로인이

신장에서 새벽을 꺼내 신고

미명의 어둠을 쓸어내며

새벽별 가슴에 쓸어담으며

빗질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

이 땅 한모퉁이 깨끗해진다


마음 부른 빗살무늬 토기 같은

순정한 싸리비 자국을 딛고

고무신발 같은 말씀이 걸어와

귀를 뜨고 마음을 뜬다

지순한 발자국을 신고

맨살로 땅을 숨 쉬고 싶다


한도 정이 되여버려 그리운

은빛 빛나는 머리칼 뒤로

가까이 따르는 죽음의 그림자

천하가 죽음 한벌이다


모자람으로 넉넉함에 이르러

너른 하늘을 채우고

고요한 무념의 벽을 넘어

희망의 아침을 켜고 있다

자신에게 누릴 시간 찾고 있다.



공룡박물관에서      


공룡이 긴 목을 구부려

나를 입에 물고

억년 전에다 내려놓는다

다시 나를 물어

오늘에 가져다 놓는다


억년을 그네 뛰며

찬란한 해방울을 찬다

금빛 은빛 둥근 소리

모아산을 들어올려

  온 세상에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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