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을 키우면서□ 최진옥

2024-03-08 07:04:09

십여년 전 새로 산 집에 이사를 오면서 원래 집에서 키우던 화분을 그대로 가져다가 객실 창턱에 놓았다. 화분이래야 알로에와 란초에 불과하다.

원래 집에 있을 때에는 창턱에 놓은 화분이 아무 탈 없이 너무 잘 자랐다. 유리를 뚫고 비쳐드는 해볕과 통풍을 시키느라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마음대로 나들었다. 일년 사계절 집 안 공기가 청신하다 보니 화분이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이였는지 모른다. 상처가 났을 때 즙이 뚝뚝 떨어지는 알로에 잎사귀를 따서 상처에 바르면 금방 씻은 듯이 나았고 란초는 봄이 오면 시간 간격을 두고 두번씩 꽃을 피웠다. 칼에 베인 자리, 뜨거운 기름이 튄 자리, 뜨거운 남비에 덴 자리, 입안이 헐거나 여드름이 생긴 자리, 모기나 벌레에 물리운 자리에 알로에즙을 바른다. 심지어 배설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알로에를 먹다 보니 알로에는 우리 집 만능 만병통치 약이였다.

딸애의 생일이 5월인데 5월은 란초라 해서 남달리 애착이 가는 화분이다. 화분을 키우는 데 별다른 재간이 없는 나는 다른 화분에는 자신 없지만 정성 하나로 알로에와 란초 키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알로에는 우리 집 만능약이요, 란초는 딸애의 꽃이라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성을 몰부었다. 화분의 흙을 갈아주고, 쌀 씻은 물을 가라앉혔다가 뿌려주고, 콩을 삶아 흙에 묻어주고, 바나나 껍질을 파묻어주고, 닭알 껍질을 부셔서 파묻어주고… 하지만 새집으로 이사온 후로 화분은 내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라는 양이 눈에 띄지도 않은 채 항상 고만고만하다. 키가 클 줄도, 잎사귀가 넓어질 줄도, 줄기가 굵어질 줄도 모른다. 예전에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던 화분과는 영 딴판이다. 죽었는가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오히려 줄기가 가냘퍼지기 시작하면서 시들시들해지는데 슬그머니 내 애간장을 태웠다.

이사를 한 이듬해 겨울 지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창턱에 놓인 한 화분통을 얼핏 보니 흙만 남아있다. 웬일인지 여쭈어보았더니 란초라고 한다. 이듬해 봄에 피는 꽃망울에 영양분을 충족하게 공급해주기 위하여 겨울철에는 무성한 잎사귀를 잘라버린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한테서 들은 대로 칼로 부추를 베여내듯 란초 잎사귀를 흙 속에서 베여냈다. 이듬해 봄에 건실한 새싹이 돋아나고 소담한 꽃봉오리가 피여나기를 한껏 기대하였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꽃은 고사하고 잎사귀가 겨우 두잎 정도 돋아났는데 그나마 논밭의 돌피 잎사귀만 하다고나 할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너무 컸다.

이렇게 3년 정도 애를 쓰고 키웠어도 알로에나 란초는 죽지도 않고 크게 자라지도 못하고 갓 이사왔을 때에 비해 오히려 더 가냘파졌다. 꼿꼿하게 서있어야 할 알로에줄기는 비스듬하게 겨우 버티고 서있고 넙죽한 줄기가 무성하고 꽃이 활짝 펴야 할 란초는 가느다란 잎사귀만 두잎 정도 가냘프게 자랐다. 나의 정성이 모자랐나? 영양분이 모라랐나? 수분이 제대로 공급이 안되나? 그토록 마음 쓰면서 키워도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일년치고 입안이 아물 새 없는 남편에게는 알로에가 만능약이다. 2~3일 정도 알로에 잎사귀를 씹어 삼키면 금방 입안이 낫는다. 하지만 화분을 키우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어느날인가 창턱에 놓여있는 알로에 잎사귀를 따던 남편이 갑자기 “이 화분이 왜 이 모양이요. 당신의 체격을 전혀 닮지 않았구만”이라고 놀려준다. 붙는 불에 키질이라고나 할가. 더구나 속상했다.

“안해 잘못 만난 당신 닮았나 봐요.”

왕벌이 쏘듯 톡 쏘아붙였다.

하도 속상하고 답답하여 올케와 하소연한 적이 있다.

“올케, 새집에 이사를 한 후 화분이 전혀 자라주지 않아요. 내 정성이 모자라는 건지? 집안 공기가 좋지 않은 건지?”

“시누이는 원래 화분을 잘 키우는 스타일인데 정성이야 모자라겠소. 화분을 객실 창턱에 놓지 않았소? ”

“그래요. 객실 창턱에 놓았지요.”

“객실 창턱에 놓인 화분이 바람을 쏘일 틈이 없고 해볕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가? 화분통을 해볕이 잘 드는 자리로 옮겨놓으면 변화가 있지 않을가?”

이튿날 아침에 올케의 말 대로 딸애가 쓰고 있는 남쪽 침실칸 창턱으로 화분통을 옮겼다. 해볕이 창문을 뚫고 따스하게 비춘다. 나시시하게 한 뼘 정도 자란 갸날픈 란초 잎사귀를 칼로 베여버리고 흙으로 살짝 덮었다. 창문을 경상적으로 열어놓아 통풍도 자주 시키고 시간 간격을 두고 꼬박꼬박 물도 주었다.

젖먹이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이라 할가? 저도 모르게 눈길이 화분에 자꾸 간다.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보름정도 관찰하면서 살펴볼라니 화분통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알로에 줄기가 꼿꼿하게 일어서는가 싶더니만 한달 남짓이 시간이 흐르자 잎사귀가 굵어지는 것이 눈에 띄였다. 알로에 제일 끝에는 연한 새잎이 돋아오르고 있었다. 란초도 그전보다는 굵은 잎사귀가 흙을 뚫고 얼굴을 빠끔히 내밀었다.

시간이 석달 남짓이 흐르면서 알로에나 란초는 원래의 정상적인 자람새를 회복했다. 이 몇년 사이 란초꽃은 해마다 곱게 피여 새봄을 알려주었고 알로에는 우리 집 만병통치 약 역할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성이 모자라거나 영양분이 모자랐던 것보다는 바람의 애무와 직접 비춰주는 따스한 해볕이 모자랐던 것 같다. 객실 앞에 지은 한메터 너비의 베란다가 객실 창턱에 직접 불어드는 바람과 비쳐드는 광선을 방해했던 것이다.

바람과 해볕은 화분이 건실하게 자라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화분이 자라는 데는 사람의 정성과 심혈이 중요하지만 거름과 수분과 바람과 해볕도 중요하다. 여러가지 요소의 공동한 작용하에서 화분은 건실하게 자라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따스한 해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화분을 키우면서 안해와 떨어져 사는 남편들이 어쩌면 우리 집 객실 창턱에 놓인 화분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가족이 떨어져 살게 될 경우, 아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친척친우나 전탁원 등 곳에 맡기다 보니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챙겨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 먹고 입고 자고 키 크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남편은 맡길 곳이 없다. 어른이라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안해가 곁에 없는 남편들의 일상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우리 사회는 심심하게 느껴가고 있다.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수분도 영양분도 충족하지만 바람의 애무와 따스한 해볕이 모자라서 제대로 기를 펴고 자라지 못하는 우리 집 객실의 화분처럼 집도 있고 돈도 있지만 안해의 따뜻한 손길과 잔소리가 모자라서 쉽게 병들고 몸이 망가지면서 마음까지 허탈해진 나머지 생기를 잃고 시들해져가는 남편들이 기수부지이다.

옛날에는 남편을 잃은 안해가 불쌍한 세상이였는데 지금은 안해가 곁에 없는 남편이 불쌍한 세상으로 바뀌였다. 안해가 없는 집에는 밥향기 대신 술냄새가 코를 찌르고 밥 짓는 연기 대신 담배 연기만 자욱하다. 텔레비죤이나 라지오의 음악소리 대신 마작소리가 귀전을 때리고 웃음소리 대신 한숨소리만 높아간다. 초췌해진 그 모습들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차겁게 얼어들게 한다.

남편은 한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지만 또한 객실 창턱에 놓인 가냘픈 화분이기도 하다. 바람의 애무도 받아야 하고 따스한 해볕도 받아야 한다. 안해는 집안의 해라고 한다. 그 해가 화분에 따스한 손길을 쪼여줄 때만이 화분도 건실하게 자랄 수 있고 한 가정의 기둥 역할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안해의 속삭임, 안해의 웃음소리, 안해의 따스한 손길, 안해가 정성 들여 갖춘 둥근 밥상은 쓰러져가는 남편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주는 봄바람이다. 맞아도 맞아도 흥이 나는 봄바람이다. 또 쓰러져가는 남편의 기를 살리는 사랑의 해볕이고 쪼여도 쪼여도 싫증 나지 않는 사랑의 해볕이고 온 집안에 사랑 가득, 웃음 가득, 화기 가득 채워주는 따스한 해볕이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한집 식구가 한 지붕 아래 한밥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식사를 했었다. 비록 산해진미는 아니여도 엄마의 손맛이 배인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였기에 한집 식구가 맛있는 식사를 했었다. 자식농사가 제일 어려운 농사라고 믿었다. 현재는 밥상에 산해진미가 넘쳐나도 함께 먹어줄 안해가 곁에 없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쓸 것도 넘쳐나지만 자식농사가 그 전보다 더 어렵게 되였다. 그보다도 집안의 기둥인 남편 지키기가 더 어렵게 되였다. 해볕이 들지 않는 음달진 곳에서는 푸른 이끼가 돋아나고 어느 구석진 곳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겨오고 있다. 그 곰팡이 냄새가 집안 가득 넘칠가 저어된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려행길을 안해 없이 떠나야 하는 남편의 길이 얼마나 쓸쓸할지 서산에 걸린 저 해는 알 수 있을가?

박달나무에도 좀이 들 때가 있고 락수물이 돌을 뚫는다고 한다. 온집안의 기둥이였던 남편이 안해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부터 어느 날부터인가 생기를 잃으면서 날이 감에 따라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객실창턱에 놓인 화분은 물도, 밑거름도, 공기도 충족했지만 바람의 애무와 따스한 해볕이 모자랐다. 안해가 곁에 없는 남편들은 바람의 애무와 따스한 해볕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물도, 밑거름도, 공기마저도 모자란다.

자료에 의하면 잔소리하는 안해가 있는 남편의 수명이 혼자 사는 남자의 수명보다 더 길다고 한다. 회집에서는 고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수조에 작은 상어를 넣는다고 한다. 상어한테 잡히우지 않으려고 고기는 늘 긴장상태에 있고 또 늘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보람은 일이나 성공보다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이 든든해야 모든 일에 보람이 있다.

  이제는 화분에 물을 주고 밑거름을 주고 해볕을 쪼여줄 원예사 뿐만 아니라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바람과 해볕이 필요한 시기이다. 안해의 따스한 손길이 남편의 어깨를 추슬러 줄 수 있고 시들해진 기를 펴줄 것이다. 안해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라태한 남편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몰몰 피여오르는 구수한 밥향기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곱돌장맛이 어울리는 둥근 밥상에 마주앉아 있는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인가? 거기에 춘심을 불러일으키는 솔솔 바람과 해볕까지 따스하게 비쳐든다면 그 밥상에는 금상첨화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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