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 푸른 백양나무□ 남옥란

2024-03-22 07:14:08

지구에는 각종 나무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무난하게 잘 자라고 가지가 많이 뻗으며 몸체가 우중충한, 도처에 흔하디흔한 백양나무는 내가 그토록 우러러 보고 경의를 품고 숭배하는 우상이며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신단수다.

장춘시고급중학의 학교 대문 옆에 바로 하늘을 떠받치듯 우중충 서있는 백양나무가 유표하게 내 눈에 안겨온다.  5층 높이는 착실히 되는 나무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들의 년륜은 백년도 넘는다고 한다. 백여년 동안 한곳에 자리매김하고 서서 사거리 변화와 한패 또 한패의 아이들을 대학으로 보내는 기쁨을 인간들과 함께 공유한 백양나무는 해마다 아이들 수자의 몇십배 만큼 부푼 가지에 잎새가 다닥다닥 열린다. 가관이다.

투명한 유리창너머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라볼 수 있는 백양나무, 낮이면 손녀를 학교에 보내고 고독이 엄습할 때 나는 일방적으로 백양나무에 정을 붙이고 속삭이면서 대화하고 고독을 풀고 희망을 털어놓으면서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듯 뚫어지게 바라보면 나무는 무시로 사라락사라락 솨솨 바람소리를 내면서 귀맛 좋게 화답한다. 먼 친척보다도 이웃사촌이라는데 낯선 고장에서 이웃사촌도 없는지라 나는 백양나무에 감성을 쏟아부으면서 사계절을 느끼며 살아간다. 말할 줄 모르는 백양나무는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여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벗으로 사귀면서 사는 게 인류의 명지한 선택이라면 식물인 나무도 역시 인류의 벗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봄이 오면 겨울 동안 들썼던 먼지를 떨치고 고기비늘 같은 터덜터덜한 껍질을 헤집은 채 파란 눈을 빠끔히 뜨고서 밖의 세상을 구경하는 백양나무의 봉이눈이 그처럼 귀엽다. 잎새는 인간세상에 대한 무한한 기대와 믿음 사랑과 련민을 품고 왕림한다. 하지만 천진하고 단순한 기대와는 달리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조화 많은 천지기후를 감안하면서도 백양나무 엄마는 잎새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무지 많이 열리도록 백방으로 부추기고 보호한다. 봄, 여름, 가을까지 엄마의 몸체를 덮은 잎새는 엄마를 아름다운 이팔청춘 미녀로 치장하여주고 세인들에게 자랑한다. 겨우내 깡말랐던, 단벌옷도 입지 못하였던 엄마는 봄이 오자 몸체가 부풀면서 풍성한, 푸른색 실크 불라우스를 떨쳐 입은 귀티 나는 마님으로 되였다. 잔잔한 봄비가 잎새에 스며들면서 시원한 랭수욕까지 마치고 해빛의 강렬한 빛을 몸 전체로 받아안은 엄마는 청춘의 정열과 기백이 차넘쳐서 그토록 청신하고 싱싱하게 보인다.

백세 년륜을 바라본다고는 하지만 인류는 단산이 빠르게 찾아오고 늦은 나이가 되면 생육이 어려워지는데 백양나무는 백년이든 천년이든 관계 없이 생명의 상징인 잎새들을 무한정 많이도 피워올린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밑둥으로부터 하늘을 떠인 가장 웃쪽 가지에 파란색 기발처럼 날리는 잎새가 정확하게 내 눈에 안겨온다. 보기에 창공과 가까운 거리, 태양의 따스함을 가장 많이 향수할 수 있는 자리이다. 하지만 밑둥 잎이든 제일 웃쪽 가지에 붙은 잎이든 색갈이나 크기의 차이가 별반 차이가 없다. 백양나무 엄마는 못난 자식, 잘난 자식, 먼저 난 자식, 후에 난 자식 쪽을 가르지 않는다. 골고루 영양분을 공급하고 키워준다. 중심을 위주로 자기만 뽐내려고 곁가지들을 쳐버리지도 않는다. 하기에 높낮이와 좌우가 골고루 퍼져 웅위롭고 매력 있게 위력을 과시한다.

나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이리저리 춤을 추는 잎새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동쪽 바람을 등지고 서쪽으로 잎들이 기울 때면 해빛의 반사에 무수한 은빛 붕어가 말랑말랑 뛰노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동쪽으로 기울 때면 무수한 잔별 아기들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몸으로 백여년간 그렇게도 많은 생명을 탄생시킨 모체의 위대함을 나는 백양나무를 통하여 느꼈다. 모체는 그토록 신기하고 성스럽다. 천둥번개 불어치는 바람에도 가지에 잎새가 달린 채로 꺾이워서 땅에 떨어질지언정 잎새만 달랑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잎은 모체에 든든히 매달리기 위하여 고무줄 같은 끈질긴 줄기로 가지에 접착되여있다.

여름이면 비물에 씻기고 바람에 부대끼고 겨울이면 추위에 떨고 세월에 삭혀져서 뿌리둥지 밑둥은 승냥이가 파먹은 양의 창자처럼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되였다고 백양나무가 위태롭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백양나무는 땅속 깊숙이 사면팔방으로 뿌리를 내렸다. 지신과 천신의 보호를 받으며 그 중간에 태연자약하게 하늘을 떠이고 떳떳하게 서있다. 굴처럼 된 밑둥에 나는 귀여운 강아지가 비바람을 피하느라고 엎드려있는 것을 보았으며 삐약 병아리를 품어안은 암탉이 뜨거운 삼복볕을 피하여 낮잠을 자는 것도 보았다. 와글와글 끓고 있는 개미네 집도 보았다. 생령들은 백년 된 백양나무 뿌리 둥지를 제 집으로 삼고 비바람을 피하고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생태환경의 수호천사들이다.

백양나무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처럼 세월을 등에 지고 새별 같은 애어린 잎새를 한해 또 한해 키워내느라고 등이 휘여서 하늘을 향한 것도 있고 또 엄마가지와 아빠가지 옆에 찰싹 들어붙어서 자라고 있는 한가정 울타리 같은 것도 보인다.

자식을 품어안았던 모체와 잎새들의 동행과 상봉의 나날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가을추위가 살금살금 나무 전체를 휘감으면 나무잎이 말라 비틀어지고 락하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가을 녀인의 눈길로 가을의 한 정경인 백양나무를 관찰한다.

9월말부터 10월말까지 한달 동안 날마다 무수한 잎새들이 빙글빙들 돌다가도 가로세로 꼰지면서 지면 우에 떨어진다. 세상에서 사유가 능란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만 감성을 느끼고 희로애락을 감수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식물과 동물들도 아픔을 인지하고 비애를 느낀다. 다만 인간처럼 상봉하는 기쁨과 사별하는 과정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고 속심이 깊은 녀인처럼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바람의 방향과 강약에 따라서 어떤 때에는 수많은 참새떼들이 날개를 파닥이면서 날아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밤이면 현란한 가로등 불빛의 조화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나비들이 땅에 헤딩하면서 꼰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무는 무가내로 지켜볼 뿐이다. 마치 이쁘게 단장한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는 대견하게 느끼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여 눈굽을 찍는 내 엄마처럼 말이다. 잎새들도 봄부터 가을까지 지켜주고 살펴주고 먹여주던 모체를 떠나기 아쉬워서 발버둥을 치면서 아츠러운 소리를 낸다. 모체는 모진 마음을 먹고 자식들을 빨리 뛰여내리라고 응원한다. 강추위가 들이닥치는 겨울이 오면 갸냘픈 잎새도 어차피 살아남을 희망도 조건도 없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봄에 다시 만나기 위하여서는 꼭 떨어져내려야만 하는 리유로 설복한다. 갈라지는 것은 재상봉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 떨어진 나무잎들이 꼭 새봄에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들은 사명을 완수하고 새잎 동생들이 태여나도록 릴레이 봉을 엄마에게 남겨놓았다.

백양나무는 이렇듯 한세기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백번도 더 되는 다산의 아픔과 고통을 겪었고 자식을 끌어안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으며 리별의 아픔도 맛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짠하고 그 위대한 모성애에 머리가 숙여지고 경의로움을 느낀다. 사람도 저 나무처럼 묵묵히 사명을 지니고 사계절의 순리 대로 살아야 하는 게 정답이다.

백양나무에 비하면 그 옆에 무더기로 피여난 이름 모를 풀꽃들은 애잔하고 아름답다. 꽃을 바라보노라면 속으로부터 꿀맛보다 진한 향수와 감성이 올롱볼롱 괴여오른다. 갸냘픈 빨간 꽃잎, 하얀 꽃잎들이 어느 날인가 뢰성과 비바람에 피를 토하고 쓰러질 것만 같아서 눈물이 울컥 치민다. 꽃잎처럼 여려진 내 마음의 발로다. 나는 리성을 찾으려고 다시 아름드리 백양나무를 쳐다본다. 애잔하던 감성은 대뜸 숭엄하게 변한다. 여린 꽃나무와 꽃잎에 비하여 터실터실 갈라터진 백양나무 모체와 파란 하트모양의 잎새가 내 마음에 무한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까치는 광선이 제일 좋은 웃가지에다가 아예 집을 지어놓고 백양나무와 동행하였다. 세대를 내려오면서 그렇게 살아갔다. 참새와 까치의 휴식터이자 먹이를 찾는 원천이기도 한 백양나무, 누가 가꾸지 않아도 무난하게 잘 자라는 백양나무, 나는 자식들도 저 백양나무처럼 한곳에 꾸준히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뿌리를 대지에 튼튼하게 박으면 쉽게 뽑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락조가 곱게 물든 저녁녘 은회색의 청아한 하늘, 우중충 창공높이 걸려있는 백양나무와의 삼위일체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일부분이 아닐가. 이렇듯 경관인 자연의 모든 것을 나는 그토록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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